창선감의록 우리고전 다시읽기 3
구인환 엮음 / 신원문화사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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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의 난쏘공 활동기간 중에 많은 인문학 서적들을 읽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평소 읽어온 책들과는 다른 분야였던 탓에 정독을 하다보면 리뷰를 작성해야 하는 1달이 훌쩍 가곤했습니다. 특히 부피가 있는 책을 읽을 때는 리뷰로 요약하는 일조차 힘겹다는 생각을 하기 마련입니다. 그런 책 가운데 간호윤교수님의 <아름다운 우리 고소설; http://blog.joinsmsn.com/yang412/11888212>이 있었습니다. 현대적 문체로 풀어 소개한 책들은 대부분 읽어 알고 있지만, 알지 못하던 우리 고소설이 그렇게나 많이 있었다는데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언젠가 말씀을 드렸던 것처럼 가끔은 아이들 책장을 살펴보는데, 그 이유는 아이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힌트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2002년에 나온 책이니 오래된 책입니다만, <창선감의록>도 작은 아이의 책장에서 발견한 것입니다. 아내에게 듣기로는 어느 해 수능시험에 <창선감의록>이 인용되었다 해서 입시준비용으로 읽은 책이라는 것입니다. 참 대단한 대한민국입니다.

 

<창선감의록>은 해제한 분에 따라 차이가 있습니다만, 간호윤교수님에 따르면 이본이 무려 351편이라고 하니 요즘으로 치면 꿈의 시청률 50%를 넘어 고공비행한 인기소설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읽은 구인환교수님이 엮은 책이나 가장 최근에 나온 이지영교수님이 엮은 책에서도 작가 미상이라 표기하고 있습니다만, 간호윤교수님은 17세기 후반에 활동한 조선 19대 숙종때 유학자 조성기를 작가로 보고 있습니다. 당시의 사회적 윤리였던 충효사상과 권선징악을 핵심으로 하고 있고, 작가가 명문 사대부였으며, 집필동기가 ‘어머니’의 시름을 위로하기 위해서였다는 점이 대중적 인기몰이를 한 까닭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야기의 배경은 우리나라의 관직 등이 등장하여 조금 헷갈리기는 합니다만, 중국의 명나라입니다. 지금도 가보지 못한 이국에 대한 막연한 동경같은 것을 가진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그 시대에 살던 대부분의 사람들 역시 가보지 못하였지만 구전으로 듣는 중국에 대한 막연한 동경같은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무대를 중국으로 하는 경향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당대의 권력자 엄숭이 조자룡 헌칼 쓰듯 마구 휘두르는 권력으로 무너지는 나라기강을 바로 잡기에 한계를 느낀 도어사 화욱이 낙향하여 세 부인과의 사이에서 얻은 자녀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화욱의 아들 정진이 과거에 급제하여 한림학사가 되고 다시 향리로 물러나있는 중에 셋째부인 심씨와 그 소생 화춘, 그리고 그의 후처 조녀의 등장으로 맞은 멸문의 위기를 화진의 지고한 윤리적 성정이 빛을 발해서 만사가 해결된다는 해피엔딩에 이르는 소설입니다. 딱 요즘 말로 바꿔 말하면 영어로는 soap drama의 범주에 넣고 있기는 하지만, 우리나라 특유의 장르라고 할 막장드라마라고 하면 적당할 것 같습니다. 당연히 읽는 이의 눈물로 범벅이 되고 주인공이 위기에 몰리면 악역을 한 심씨와 조녀, 화춘이 독자의 지탄을 받고, 핍박받는 남녀 주인공에게 애절한 마음이 쏠렸을 것입니다. 다시 생각해보니 요즈음의 시청자들이 막장드라마라고 비난을 하면서도 채널을 돌리지 못하는 이유가 막장에 대한 성향이 유전자에 녹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창선감의록>을 엮은 구인환교수님에 따르면 조정에서 일어나는 권력싸움이나 변경에서 일어나는 전쟁도 등장하지만 화욱의 가솔들 사이에 벌어지는 갈등을 다루고 있고 결국은 선한 이가 승리한다는 도덕소설로 보고 있습니다. ‘인생은 남녀와 귀천을 막론하고 충효로서 근본을 삼고 여타의 다른 덕행은 모두 이에서 나온다’고 작가가 모두에 밝히고 있는 점을 그대로 인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간호윤교수님의 경우는 이 작품이 나올 무렵의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여 치열하던 당쟁에서 밀린 서인(조성기는 서인이었다고 합니다)을 윤리적으로 우위에 두려는 의도가 녹아 있지 않겠나 추정하기도 합니다.

 

이 작품에는 불교와 도가적 사상까지도 등장하여 읽기에 지나치게 비현실적인 측면도 없지 않습니다만, 그저 읽는데 흥미를 더한다 생각하면 별 무리는 없어 보입니다. 다만, 계모 심씨와 그 아들 춘의 계략에 말려 그들을 살해하려 했다는 모함을 받은 주인공 화진이 변명하지 않고 경우에 따라서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형을 받기로 한 배경이 요즘 사람들은 이해할 수 있을까요? 즉 자기가 변명하여 진실이 밝혀지게 되면 모함을 한 계모 심씨와 형인 화춘이 화를 당하게 되는 것보다는 차라리 자신이 누명을 쓰는 쪽을 택한 주인공을 저 역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작가는 독자의 이런 걱정을 배려하여 주인공의 이런 선택이 오히려 자신의 목숨을 구하고 결국든 자신을 모함한 계모와 형님이 개과천선하는 계기로 이끌고 있으니 독자들의 환호성을 받게 되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현대문으로 옮겼습니다만 고어체가 많이 남아있어 읽는 호흡을 맞추기가 여전히 쉬운 일은 아닙니다만, 우리 선조들의 생각의 단편을 읽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보니 학생시절에 <홍루몽>을 읽고 그런 세상의 주인공이 되는 판타지를 가졌던 기억도 되살아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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