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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변경 지대 - 과학과 비과학의 경계에서 과학의 본질을 탐구한다
마이클 셔머 지음, 김희봉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5년 2월
평점 :
절판
‘과학과 비과학의 경계에서 과학의 본질을 탐구한다’는 부제를 단 <과학의 변경지대>에서 미국의 대표적인 회의론(Skeptic) 학자 마이클 셔머교수는 과학과 비과학, 과학과 의사과학을 구분하는 방법을 다루고 있습니다.
지리학적으로는 산 혹은 강과 같은 지표상에 존재하는 것들을 도움을 받아 어느 정도 경계선을 그을 수 있습니다.(과학이 발달한 요즘은 GPS의 도움으로 보다 정확하게 선을 그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지식의 세계는 가장자리가 모호할 수 있어서 항상 명료한 경계선을 그릴 수 없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입니다. 어제까지 과학적으로 인정받았던 사실이 새로 나온 증거에 의하여 전면 부정되는 사례가 다반사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경계가 모호한 경우에는 퍼지논리(1)를 적용하면 경계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셔머교수는 주장하고 있습니다.
셔머교수가 경계탐지장치라고 부르는 검증시스템은 ‘어떤 과학적 주장'의 타당성을 판단할 때 유용한 열 가지의 질문을 사용한다고 하는데, 대표적인 것을 들어보면, 주장하는 사람이 얼마나 신뢰성이 있는가?, 다른 사람에 의하여 입증된 바 있는가?,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와 어떻게 맞아 들어가며, 어떻게 작동하는가? 대안을 제시하는가 아니면 기존 설명을 반박만 하는가? 등이 있습니다. 그의 기준에 따르면 태양중심설, 진화론, 양자역학, 대폭발 우주론, 판구조론 등은 정상과학으로 분류되며, 창조론, 원격투시, 점성술, 프로이트 정신분석이론, 기억회복 등은 비과학으로 분류됩니다. 한편 초끈이론, 의식이론, 최면, 척추지압, 침술 등은 정상과학과 비과학의 경계에 걸쳐있는 변경지대과학이라고 합니다(2).
셔머교수는 전작 <왜 사람은 이상한 것을 믿는가; http://blog.joinsmsn.com/yang412/9606250>에서 그가 사이비과학 혹은 미신으로 치부하고 있는 임사체험, 외계인, 마녀사냥 등을 비롯하여 진화론과 창조론, 2차 세계대전 기간 중에 벌어졌던 홀로코스트의 진위문제 등을 냉철하게 비판한 바 있습니다. 인간이 이성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것들을 믿는 이유를 그는 진화론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인간은 우연하고 불확실한 것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패턴을 추적하고 인과관계를 찾을 수 있도록 진화한 것인데, 불행하게도 인간의 뇌가 의미있는 패턴 이외에 덤으로 찾아낸 의미없는 패턴도 믿게 된다는 것입니다. 과학적 사고방식의 역사가 아직 짧은 탓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상한 것을 믿게 만드는 사고의 오류 25가지를 설명하여 이를 경계하고 있습니다.
<과학의 변경지대>는 세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부 변경지대의 과학」에서는 과학적 진리를 찾아내는 기준으로 사용하는 ‘지식필터’를 비롯하여 변경지대과학에서 많이 사용되는 ‘만물이론’을 설명하고, 과거 변경지대과학에 속했던 유전학이 정상과학인 유전공학으로 발전하게 되는 과정 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2부 변경지대의 사람들」에서는 생존당시 과학계의 변경지대 사람으로 분류되었던 천문학자 코페르니쿠스, 진화론의 다윈과 월리스, 정신분석학의 프로이트, 그리고 우리시대의 과학자 세이건 등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들이 살던 시대의 사회적 배경을 살펴 과학적, 문화적 이동이 어떻게 일어나게 되었는지 뒤쫓고 있습니다. 「3부 변경지대의 역시」에서는 역사과학의 일종인 우주론, 역사지질학, 고생물학, 고고학 등에서 채택하는 과학적 방법을 설명하고 있으며, 진화론의 창시에 관하여 다윈과 월리스의 관계를 분석하고 있습니다.
셔머교수의 지식필터에 관하여 조금 상세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셔머교수는 “주어진 아이디어의 진위를 판별하는 정신 모듈을 지식필터라고 하면, 지식필터는 새로운 사실과 생각을 경험에 비추어 판단한다.(61쪽)”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특히 의학이나 과학 영역에서의 대표적인 지식필터는 전문가동료들에 의한 심사제도(peer review system)이라 할 것입니다. 새로운 학설을 담은 논문을 학술지 등에 발표하려면 관련 분야의 전문가가 익명으로 심사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오류가 제거되고 잘못된 추론이 드러나며 부적절한 결론이 걸러지게 됩니다. 하지만 최근 인터넷의 발달은 이렇게 엄격하게 적용돼왔던 지식필터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은 채로 엄청난 속도로 확산되는 상황을 맞고 있습니다.
셔머교수는 특히 의학분야에서 드러나고 있는 문제의 심각성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일부를 인용해보면, “제도권의 의학 논쟁이 지식필터를 안개처럼 흐려놓는다면, 대체의학의 주장들은 지식필터를 모호한 구름으로 감싼다. 대체의학운동의 중심지를 보고 싶다면, 홀 라이크 엑스포(Whole Life EXPO)에 가보라. 에이즈와 암에서부터 대머리와 발기불능까지 모든 병을 고친다는 치료법이 여기에 다 있다. 마사지, 척추지압, 오라 해독, 동종요법, 최면, 약초, 향기요법, 산소요법, 전생퇴행, 심지어 후생을 미리보는 치료법도 있다.(65쪽)” 등입니다.
셔머교수는 “내가 이제까지 조사해 본 모든 대체의학은 완전히 헛소리였다. 그러나 의료체계의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들과 시한부 인생이라는 선고를 받은 사람들이 이런 현혹적인 제안에 매달리는 것을 나는 이해한다.(67쪽)”고 단호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근거중심의학(Evidence Based Medicine; EBM)이 부상하고 있습니다. 의료계에서도 근거가 미약한 대체의학 치료법에 환자들이 피해를 받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이해시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를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1부에서 의학과 관련된 재미있는 주제가 있습니다. 바로 ‘3장 신만이 할 수 있다’는 제목으로 된 인간복제에 관한 내용입니다. 저 역시 인간복제는 윤리적 문제가 제기되는 등 민감한 부분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복제를 통하여 생명을 얻은 인간은 세포 제공자와 쌍둥이인가 하는 문제를 두고, 셔머교수는 “유전체가 완전히 동일하다고 해도, 우발적으로 일어나는 모든 이력이 같아야 동일한 개성이 보장된다.(113쪽)”고 잘라 말하고 있습니다. 동일한 일란성 쌍둥이의 경우에도 성장환경의 차이에 따라서 유사한 점도 있지만 분명 차이를 보인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습니다. 생명의 탄생과 죽음이 신의 영역이라는 전통적 사고와 맞물려 인간의 복제 역시 신의 영역을 침입하는 것이라는 주장에 대하여 과학은 과학일 뿐이므로 과학자들에게 맡기라는 셔머교수의 주장은 충분히 타당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학의 변경지대>에는 다윈과 월리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다루고 있습니다. 셔머교수가 월리스에 대하여 깊이 연구해왔기 때문인지 월리스의 영성주의에 대한 비판과 진화론에서 다윈과 월리스의 관계 등에 관한 내용은 다소 생소한 정보라는 느낌이 듭니다. 당시 유럽에서는 박물학이 인기가 있었는데, 다양한 생물종의 표본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고 합니다. 가난했던 월리스도 아마존과 말레이 지역으로 채집여행을 떠나 학문적 기반을 쌓게 되었다고 하는데, 월리스는 말레이에서 채집을 하면서 연구를 계속하여 “모든 종은 기존의 밀접한 관련이 있는 종들과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면서 나타난다.(380쪽)”는 결론을 <새로운 종의 형성을 조절하는 법칙에 관하여>에 담아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진화론의 핵심이 되는 내용이라 하겠습니다. 이로서 진화론의 핵심이론은 누가 먼저인가 하는 논쟁이 일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과학분야는 1947년 수학자 요한 폰 노이만의 제로섬 모형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분야라는 것입니다. 제로섬게임은 한 쪽이 승자가 되면 다른 쪽은 패자가 된다는 개념입니다. 하지만 과학은 상호의존적이며 때로는 협력적이고 항상 사회적일 수밖에 없는 특수성이 있습니다. 물론 미분의 발명을 두고 뉴턴과 라이프니츠의 분쟁에서는 서로 상대방을 깍아내리는 것이 이득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만, 다윈과 월리스의 경우는 제로섬 모형을 거부하고 협력적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서로에게 유리한 국면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합니다. 셔머교수는 다윈과 월리스가 윈-윈게임을 하게 되는 과정을 많은 자료를 가지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제로섬게임을 통하여 진력을 쏟아 붓기보다는 플러스게임을 통하여 아낀 힘을 다른 영역에 사용하는 현명함을 배울 수 있겠다 싶습니다.
의학을 포함한 과학영역에서 새로 나오는 엄청난 정보에 더하여 사이비과학이 쏟아내는 정보는 과학적 소양을 갖춘 사람들까지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습니다. 특히 근거가 미약한 대체의학이 범람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우리가 더욱 과학을 더 많이 그리고 더 잘 알아야 하는 이유는 우리의 지식필터가 사실여부를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도록 갈고 닦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마이클 셔머교수의 <과학의 변경지대>는 우리의 지식필터가 보다 정교하게 작동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으로 생각합니다.
주:
(1) 1960년대 중반에 로프티 자데(Lofti Zadeh)가 처음으로 기술한 퍼지논리는 퍼지 집합의 개념에 바탕한 수학의 논리 형태로서 퍼지집합의 구성요소는 확률이나 참의 정도로, 즉 0에서 1 사이에 분포하는 연속적인 값들로 표현된다. 퍼지논리 시스템에서는 사건 발생 가능성을 다양한 참 또는 거짓의 정도(즉, 일어날 것이다, 필시 일어날 것이다, 일어날 수 있다,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등등)로 나눔으로써 사건의 결과를 확률로 나타낼 수 있다.(다음백과사전)
(2) 변경지대과학은 원저의 제목이기도 한 <The Borderlands of science>를 과학 중심의 시각으로 옮긴 것으로 보이는데, 중립적 시각에서 본다면 ‘회색지대과학’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습니다.
-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작성된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