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카메라를 들고 떠나다
이미지프레스 지음 / 청어람미디어 / 2004년 4월
평점 :
품절


 

요즈음 유행하고 있다는 버킷리스트를 제가 준비한다고 하면, 아마도 ‘좋은 사진 찍기’를 꼭 윗 순위에 넣을 것 같습니다. 관심은 많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감을 잡지 못하고 그저 셔터만 눌러대 왔다는 것입니다. 요즈음에야 디지털카메라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직성이 풀릴 때까지 셔터를 눌러서 찍은 사진들을 나중에 살펴보고 좋은 사진을 고르는데, 그야말로 가뭄에 콩나듯 건진다는 것입니다.(당연히 제 눈의 안경으로 고르는 편이라는 것입니다.) 신혼여행을 떠나면서 두 대의 카메라에 36컷 컬러필름을 열통인가를 준비해가서 2박3일에 모두 찍어왔다는 것입니다.

다큐멘터리 웹진 이미지프레스를 중심으로 활동하시는 이상염님, 임재천님, 강제욱님, 노순택님 등 네분이 ‘나의 아름다운 클래식 카메라’라는 주제로 클래식 카메라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와 그 카메라가 함께한 취재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낡은 카메라를 들고 떠나다>는 이분들이 찍은 프로다운 사진들을 감상하는 즐거움 뿐 아니라 사진촬영과 관련된 뒷이야기 그리고 쉽게 접할 수 없는 클래식 카메라에 얽힌 이야기를 잘 버무려 내고 있어 읽는 재미와 보는 재미가 시너지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다만 이야기의 경계가 애매해서 글을 쓰신 분의 의도가 어디에 있는지 헷갈리는 점이 있었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글을 쓰신 분들이 네 분이나 되는 것처럼 취재여행기로부터 카메라와 관련이 있는 분의 인터뷰 그리고 네분이 카메라와 인연을 맺게 된 이야기들이 섞여 다양한 읽을거리를 만들고 있습니다.

비운의 코비카 카메라를 위로하는 글을 읽으면서 제 소유의 카메라로 처음 샀던 카메라가 삼성이 미놀타와 합작하여 만들었던 삼성 미놀타 반자동 카메라로 오랫동안 추억을 담아오다가 미국에 공부하러 갔을 때 슬라이드자료를 카피할 목적으로 미놀타 카메라를 적지 않은 비용으로 구입했고 이 카메라로 미국생활을 많이 담았구나 하는 추억이 떠오릅니다. 그런데 이 카메라는 저온에서 작동을 하지 않는 불편함이 있어서 크리스마스 야경을 찍으러 갔다가 실패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클래식 카메라와 함께하는 여행의 첫 번째 이야기가 제 고향 군산에서 시작하고 있어 반가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군산은 일본 강점기동안 곡창 호남지역에서 나는 쌀을 일본으로 실어 나르는 항구로서 번영을 누리던 곳이었는데 해방과 함께 급속하게 쇠락의 길을 걸어온 탓에 아직도 당시의 흔적들이 많이 남아 있어 옛날 풍경을 찾는 분들의 발길을 끌어당기는 묘한 매력이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쇠락한 모습의 ‘째보선창’에 대한 안타까운 심정이 느껴지는데 째보선창은 경암천이 금강으로 흘러드는 지형적 특징을 나타내는 이름입니다. 월명공원 아래 있는 월명터널에서 청량한 느낌을 얻었다고 하셨는데, 이 터널이 6.25동란 당시 퇴각하던 북한군이 양민들을 학살하여 처박아두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는 비극의 장소로 알고 있습니다.

저자들의 사진은 당연히 프로다움을 절로 느낄 수 있습니다만, 더욱 놀라운 것은 저자들의 글 역시 참 아름답고 유려하다는 점입니다. “세상에 변치 않는 것들이 있을까? 시간과 공간도 절대적이지 않으면, 하물며 질량도 에너지로 변화한다. 오직 우주에서 변치 않는 것이 있다면 ‘빛의 속도’일 것이다. 태양에서 출발한 빛이 고색창연한 부하라의 흙벽돌 건축물에 부딪혀, 내 렌즈 안으로 들어온 순간부터 공간과 시간은 고정되고 만다.(88쪽)” 이상엽님의 우즈베키스탄 부하라의 취재여행기입니다.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이 분들이 클래식 카메라를 사랑하는 이유라면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우아한 자태와 완벽한 기능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는 클래식 카메라들은 20세기 기계공학과 광학기술이 빚어낸, 인류가 만든 가장 아름다운 공업 예술품으로, 디지털 카메라시대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장인의 숨결이 느껴지기 때문이라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앞에 설명한 비운의 국산 카메라 1호를 설명하다가 갑자기 이라크전쟁을 인요하고 전투병과의 참전을 결정한 정부의 결정을 ‘탄식을 넘어 분노를 자아내는 사건’으로 규정한 부분(251쪽)을 비롯하여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독일을 분할한 소련과 연합군이 취한 전쟁 뒤처리과정에서 칼 자이스의 카메라 생산설비를 뜯어 우크라이나로 실어갔다가 되돌린 사건과 칼 자이스 임원진이 소련군 점령지에서 카메라 기술자를 탈출시켜 슈투트가르트와 오버코헨에 정착시켜 공장을 새로 건립하는 과정은 미국이 뒤에서 사주했다는 식으로 설명하고 있는 부분 등은 아닌 밤에 홍두깨 같은 느낌이 들었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우아한 사진과 아름다운 설명을 읽던 흐름이 갑작스럽게 무너지는 사족이 아니었나 싶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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