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놀이터 - 엄마, 아빠와 함께 떠난 보름간의 유럽여행기
박지원.정보금 지음, 박성현 사진 / 이담북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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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3 아들과 함께 유럽을 42일씩 돌아볼 생각을 했다는 것도 충격이었지만, 여행을 준비하면서, 여행 중에 그리고 여행을 마치고서 아들과의 사이에서 벌어졌던 일들을 시시콜콜 적어 제게 큰 충격을 주었던 <아빠의 자격; http://blog.joinsmsn.com/yang412/12327788>을 읽은 감동에서 미처 깨어나기도 전에 이담북스에서 받은 <세상의 놀이터>는 제가 구식 아버지의 전형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결정타가 되고 말았습니다.

미국에서 공부하던 2년여 동안 초등학교 저학년인 큰아이와 네 살 터울의 작은 아이에게 미국을 보여줄 기회가 언제 오겠느냐는 생각에 참 열심히도 돌아다녔습니다. 옐로우 스톤, 그랜드 캐년, 나이아가라폭포, 요세미티공원, 디즈니월드, 뉴욕-워싱턴-LA, 주로 미국의 국립공원을 중심으로 여행지를 연결하다보니 남들이 잘 가지 않는 아리조나의 화이트 샌드, 사우스 다코타주의 침니락 등등.. 한번 떠나면 열흘씩은 걸리는 코스 말고도 주말이면 2박3일로 살고 있는 미네소타 주변까지.. 드라마 <초원의 집>, 영화 <파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배경, 등등 이제는 기억에서 가물거릴 정도입니다.

<아빠의 자격>을 읽고서 아이들에게 물었습니다. “너희들 미국에서 어디어디에 갔던 기억이 나니?” 그렇습니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이럴줄 알고 증명사진은 왕창 찍어두었다네”라고 들이밀었습니다. 조금은 섭섭하기도 하면서 고형욱님처럼 확실한 증거를 준비했어야 하는구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박성현 정보금님은 한술 더 뜨고 있어 고영욱님으로부터 받은 상처를 쓰라리게까지 만들고 말았습니다. 박성현 정보금님은 초등학교 3학년에 다니는 외동아들과 함께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3국을 15일간 돌아보면서 아이가 돌아본 것을 기억에 남길 수 있도록 <세상의 놀이터>라는 제목으로 책을 꾸몄답니다.

아빠는 취미로 즐기는 사진솜씨를 발휘하고 디자이너로 일하는 엄마는 맛깔나는 글솜씨를 부렸네요. 아들 성현이는 초등학생다운 글솜씨로 양념을 더했습니다. 아무래도 아빠의 시선은 유명관광지의 경치보다는 사랑스런 아내와 아들에게 더 많이 갔던 모양입니다. 다른 문화 속에서도 늠름한 아들의 모습과 이런 아들이 예뻐서 죽는 엄마의 모습이 참 자연스럽게 사진에 담겨있습니다.

제가 클 때만 해도 보기 어려웠지만, 요즘은 박물관이나 전시장 등에서 쉽게 눈에 띄는 광경입니다만, 조그만 공책을 들고 감상한 혹은 관찰한 내용을 꼼꼼히 적어 넣는 아이들의 모습 말입니다. 교과과정이 바뀌면서 초등학교 때부터 보고 적는 습관이 몸에 배어있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마종기 시인님께서도 추천의 글을 통해서 “스테인드 글라스의 빛이 보석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그것이 태양의 힘을 뿜어내고 있기 때문”이라는 구절이나 “두오모라고 불리는 성당이 있는 광장에 들어서니 그간 골목 깊숙이까지 내리지 못했던 햇살들이 모두 여기에 모여 있는 듯 갑자기 눈부시게 환했다”는 표현이 정말 보석같이 빛나는 것은 가족들의 사랑이 하나가 되는 여행을 통해서 느끼는 감정이 오롯이 살아나고 있다고 말씀하였습니다. 그리고 “대영박물관이 좋은 이유는 영국이 다른 나라에서 유물들을 안 가져왔으면 우린 유물들을 못 봤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쁜 점은 다른 나라의 유물들을 빼앗았다는 것이다. 그것도 많고 큰 것을 말이다. 그것 좀 화가 난다.(65쪽)”고 적은 지원의 거칠 것없는 느낌의 표현이 참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거침없음을 잘 가꾸어 미래의 우리나라를 잘 가꾸어가는 힘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다만 영국이 유물을 지금까지 잘 보관했다는 논리는 그들의 것이라는 점, 그리고 그 유물들을 원래 빼앗아온 곳이 제대로 관리할 수 있다면 되돌려주는 일에도 앞장서야 할 것이라는 점을 일깨워주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여행을 나서면 군소리없이 따라나서지만 이동하는 동안 티격태격 싸우는 바람에 신경을 곤두서게 만들었던 제 두 아들과는 달리 속깊은 지원이를 보여주는 대목에서는 부럽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연이은 박물관 미술관 관람에 엄청나게 피곤할 텐데도 오르세 미술관을 보지 못한 엄마를 배려해서 오르세미술관에 가봐야 한다고 재촉하는 지원의 모습이나, 카타콤베의 칠흑같이 어둡고 차가운 미로 속에서 고통을 받았을 사람들을 생각하며 현기증을 느꼈다는 정보금님이 걱정스러웠던지 “엄마, 근데 왜 울어?”라고 묻는 지원의 마음이 정말 예쁘지 않습니까?

그런 지원을 지켜보면서 “잊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자꾸 잊게 되는 것. ‘너만의 속도’로 걸어갈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하는데, 네 손을 잡고 재촉하게 될 때가 많구나(257쪽)”라고 자책하는 정보금씨의 애틋한 마음을 읽으면서 저 스스로를 되돌아보았습니다. “나는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배려했었지?”

-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작성된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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