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3 동문선 현대신서 119
피에르 쌍소 지음, 김주경 옮김 / 동문선 / 2002년 7월
평점 :
절판


 

프랑스 철학자 피에르 상소의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시리즈의 세 번째 이야기에는 ‘적은 것으로 살 줄 아는 사람들’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습니다. 우리가 오가며 쉽게 만나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만, 안타깝게도 프랑스의 평범한 시민들이 사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런 탓인지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http://blog.yes24.com/document/4460181),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2(http://blog.yes24.com/document/4636207) 등의 전작들에 비하면 공감의 파워가 다소 떨어진다고 할까요? 

상소는 뛰어난 학자들보다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만나는 평범한 인생들에 더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물론 그가 위대한 학자들의 영광을 폄훼하려는 생각은 아니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만, 한국의 독자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에 적은 다음 글은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거대한 지식의 지도 위에서 한 개인의 지식은 하찮은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그런 지식 때문에 교만해질 이유가 없겠지요. 반면 설익은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해주는 설명은 우리를 제대로 이해시키지 못합니다. 오히려 당혹감만 더해 줄 수 있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해서 자신의 우월감을 나타내고, 당황해하는 우리의 모습을 즐깁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들의 그런 계략을 꿰뚫게 되면, 이번엔 그들이 당황하고 혼란스러워할 것입니다.(9쪽)”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3>에 담긴 내용은 아마도 그의 전작들 <감각적인 프랑스>, <가난한 사람들>, <적은 것으로 살 줄 아는 사람들>, <공원>, <민감한 프랑스> 등에 담긴 철학들을 정리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자는 ‘적은 것으로 살 줄 아는’ 소박한 사람들이 가지는 미덕을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소박함에서 나오는 일련의 태도들, 곧 거만하게 보이지 않는 것, 과도한 주장을 하지 않는 것, 다른 사람들에 대해 난폭한 경쟁심을 갖지 않는 것, 삶의 소박한 것들을 기뻐하는 것 등은 근본적으로 말하자면 ‘자신을 잊어버리는 태도,’ 흔적을 남기기 않는 태도이다.(25쪽)”이라고 정리하고 있습니다.

그는 평범한 사람들이 만나는 치유자, 나이든 사람들이 찾아오면 길건너는 것을 도와주는 동네빵집의 여주인, 아마추어 수리공, 그리고 유럽축구를 휘젓는 꿈을 품고 시작하는 길거리축구 등등 소박한 동네에서 일상적으로 만나는 사람들을 서정적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의 글은 한폭의 그림을 떠오르게 합니다. 실내 분위기를 그려내는 글은 마치 정물화를 보는 듯하고 교외의 풍경을 서술하는 글은 한폭의 풍경화를 만나는 느낌이 듭니다.

“연못 위로 솟은 언덕 위에는 사람의 노동이 가해지지 않은 황무지나 방목지가 펼쳐진다. 그곳에서 피우는 불은 낮에서 밤으로 넘어가는 길목을 지켜 준다. 불 그림자 속에서 밤은 점점 길어지고..... 청춘의 뜨거운 피가 넘치는 젊은이들은 불빛 앞에서 포도주 잔을 기울이면서, 포도주란 것이 따뜻한 열기를 주면서도 가볍고(적포도주) 신선하며(백포도주) 젊음을 느끼게 하는(분홍색의 로제포도주) 음료라는 것을 알게 된다.(148쪽)” 뿐만 아니라 그는 정물에 냄새까지도 곁들여 현장감을 느낄 수 있게 합니다. “주방이 풍기는 냄새는, 어른이 되어 훗날 정서적인 기억들을 떠올릴 때 반드시 따라오는 냄새라는 점이 다르다. 그것은 아침에 갈아 마시는 커피의 향기이며, 다갈색이 될 때까지 자글자글 졸이는 캐러멜의 냄새이고, 튀김 재료를 넣고  튀기는 고소한 기름 냄새요, 럼주를 약간 넣어서 마시는(아이들 때문에 너무 많이 넣으면 안된다) 달콤한 영국식 크림 냄새에다. 포도주를 넣은 소스가 제격인 부르기뇽 쇠고기찜 냄새이다. (151쪽)”

소박한 사람들의 삶에도 빠지지 않는 부부싸움은 슬며시 웃음이 떠오르게 만듭니다. 그것은 다른 동네에서 보는 부부싸움과는 다른 점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늘 되풀이되는 부부의 낡은 언쟁은 어느덧 닮은꼴이 되어버린 일상적인 그들의 삶의 한 부분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서로의 곁에서 살아온 덕분에, 그리고 꼭 뜨거운 열정을 지닌 채 살아왔다고는 할 수 없지만 어쨌든 흔들리지 않는 동거생활을 해온 결과로, 두 사람의 서로 다른 개성이 모두 닳아 없어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거의 완벽하게 닮은꼴을 이루게 된다는 것입니다.

너무 많이 마셔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잃고 헤매기도 하고, 술집의 한귀퉁이에 쓰러져 자는 마을 술꾼에 대한 상소의 지적은 애매한 부분이 있기도 합니다만, 그리 긍정적이지는 않은 것 같아 읽는 저로서도 뜨끔한 구석이 없지 않습니다.

뚜르 드 프랑스가 프랑스 사람들에게 주는 의미를 비롯한 다양한 프랑스문화를 소개하고 있는 점도 읽을만하단 생각이 들었습니다만, 우리네 보통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상소처럼 소개하는 글을 읽을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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