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의 눈물 - 서경식의 독서 편력과 영혼의 성장기
서경식 지음, 이목 옮김 / 돌베개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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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 생각해보면 어릴 적에 눈물이 많은 편이었던 것 같습니다. 부모님이나 선생님한테 야단을 맞을라치면 금새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흐르기 일쑤이고, 책을 읽다가, 혹은 영화를 보다가 감동이 이는 장면에 이르면 마음이 절로 눈물이 흐르곤 했습니다. 그런 이유로 읽게 된 서경식교수님의 <소년의 눈물>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린아이의 눈물’이라는 제목을 단 글들에서는 어린 시절 저자가 눈물을 흘리게 되는 사연이 특별히 남다르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조금은 실망스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첫 번째 이야기에 나오는 집에 오는 아저씨의 아들을 하지 않겠냐면서 놀리는 아저씨와 슬그머니 동조하시는 부모님 때문에 울상이 되곤 했다는 서교수님의 말씀대로 저 역시 다리 밑에서 주워왔는데, 그 다리에 다시 데려다 주어야 하겠다는 어르신들 말씀을 들으면 눈물바람을 하곤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에리히 케스트너의 <하늘을 나는 교실>의 서문에 나오는 “어째서 어른들은 자기가 어렸을 때의 일들을 그렇게도 새까맣게 잊어버릴 수 있는 것일까요? 그리고 아이들도 때로는 지극히 애처로운, 가엾고 불행한 존재라는 사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어른으로 변해버리는 것일까요> (…) 아이들의 눈물은 결코 어른들의 눈물보다 가볍지 않으며, 오히려 그보다 무거울 수도 있다는 말은 새삼스럽지 않습니다.”는 구절을 인용하면서 “어른의 눈물을 아는 자가 아이의 눈물을 안다. 아이의 눈물을 이해하는 자가 어른의 눈물까지 이해하는 것이다.(85쪽)”라고 설명을 덧붙이고 있습니다.

사실 서교수님께서 인용하신 에리히 케스트너는 저 역시 처음 세상에 내보낸 책 <치매 바로 알면 잡는다>에서 케스트너의 시 “마지막 플랫폼”을 인용한 적이 있어 반가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사람의 생애란 길게 보여도 조금 전에 시작했는데 이미 종착역입니다.”라는 싯귀를 읽으면서 마음이 먹먹해졌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하지만 서경식교수님은 정말 대단한 소년이었구나 싶습니다. 저도 책읽기를 꽤나 좋아했던 축에 들었던 것 같습니다. 읽을거리만 있으면 사람들 눈에서 사라지곤 했고, 학기 초에 새로 교과서를 받기라고 하면 그날 모두 읽어치우고 말았던 기억도 있습니다. 선친께서 교편을 잡고 계실 때는 학교 도서실에서 책을 빌려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동화책이나 위인전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초등학교시절의 서경식교수님의 독서편력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욱 대단한 것은 그 어린 시절에 읽었던 책에 대한 기억에서부터 책을 읽고 가졌던 생각을 어른이 되어 되살려 글로 옮길 수 있다는 점입니다.

한편으로는 막연하게 생각해온 재일 동포들이 일본사회에서 받아온 편견이 얼마나 심했는가 하는 점입니다. 영어수업 시간에 “아이 아무 아 쟈빠니-즈”라고 따라 읽을 수 없었던 서교수님에게 조선인이 Korean이라는 단어를 가르쳐주지도 않으면서 시키는 대로 하지 않는다고 불쾌해하던 선생님을 보면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세워나가셨다는 말씀이 감동적이었습니다.

또한 한국에 유학하던 두 형님이 1971년 유학생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오랫동안 옥고를 치루었다는 이야기를 담담하게 소개하고 있어 그 내막이 어땠는가보다는 시간이 많이 지났다고는 해도 당국에 대한 별다른 언급이 없어 놀랐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시를 읽고 암송하기 시작했다는 서교수님의 회고에 또 한번 놀라게 됩니다. 이시카와 다쿠보쿠가 시 ‘코코아 한 숟갈’에 표현한 “나는 알겠네, 테러리스트의 슬프고도 애처로운 그 마음을”에서 인용한 테러리스트가 안중근의사였다는 설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도 놀라웠습니다. 20세기 초반에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동아시아 제국을 침략하면서 일본이 이들 국가에 저질렀던 비윤리적 만행에 대한 일본인들의 생각이 다양하다는 말을 들어왔습니다. 최근에는 극우파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이를 우려하는 일본사람들의 양심 또한 목소리가 커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린 시절에 겪었던 혹은 생각했던 일들을 그저 추억에 묻어두고 살아가는 편인 듯합니다만, 서교수님은 “좋건 싫건 어린 시절 각인되어버린 그 무엇을 짊어진 채, 사람들은 수많은 괴로움과 얼마 되지 않는 잔다란 기쁨으로 수놓인, 인생이라는 긴긴 시간을 인내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그 인생을 인내할 수 있게 하는 힘의 원천은 어린 시절 몸과 마음에 깊숙이 아로새겨진 그 무엇이다.(236쪽)”라고 하시면서 지난날의 향수만을 되살려기 위하여 이 책을 쓴 것이 아니라 어린 시절에 스스로에게 각인된 무엇 때문에 여전히 변하지 않고 걸어갈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사실 저도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의 세월을 제가 기억하는 시점부터 정리를 해보겠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습니다만, 아직도 실천에 옮기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하여 나름대로 행적을 요약하게 정리해두고 있기는 합니다. 언젠가 글로 옮길 때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하기에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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