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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조종자들 - 당신의 의사결정을 설계하는 위험한 집단
엘리 프레이저 지음, 이현숙.이정태 옮김 / 알키 / 2011년 8월
평점 :
절판
“우리는 도구를 만든다. 그리고 도구가 우리를 만든다.”는 마셜 매클루언의 말은 우리가 만든 도구를 사용하다보면 우리가 진화한다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하지만 인간이 만들어낸 도구가 인공지능을 가지게 되면서 도구 스스로가 진화하는 단계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을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생각조종자들>의 저자 엘리 프레이저는 인간이 창조한 인터넷세상이 통제불가능한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 예로 인터넷에 넘치는 정보를 모두 살펴보기 어려운 현실을 감안하여 인터넷정보를 개별화하는 방법이 개발된 것입니다. 구굴의 CEO 에릭 슈미트가 “내가 늘 만들고자 했던 것은 내가 뭘 보고 싶어 하는지 예측하는 프로그램”이라는 예언이 현실화되었다는 것인데, 이처럼 정보를 개별화하는 방식은 당신이 실제로 무슨 일을 했는지, 당신과 같은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살펴보고 추론하는 예측엔진은 끊임없이 당신이 누구인지, 이제 무엇을 하려고 하고 또 할 것인지에 대한 이론을 만들어내고 다듬고 있다고 합니다. 이처럼 우리가 온라인에서 정보와 아이디어를 맞닥뜨리는 방법 자체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현상을 저자는 “필터 버블”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혹시 비누방울 풍선을 아십니까? 어렸을 적에 비눗물을 찍어 숨을 불어넣어 무지개 빛이 영롱한 방울을 만들어내던 기억이 있으실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비눗방울 풍선도 사람이 들어갈 정도로 커다랗게 만들어내기에 이르렀습니다. 저자는 필터 버블이 가져오는 사회적 현상 세 가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첫째, ‘외톨이 현상’입니다. 비눗방울 풍성에 갇힌 것처럼 정보를 공유하던 시대에는 작은 커뮤니티 안에서 다른 사람을 만나게 되던 것이 개별화된 정보만 추구하는 순간 필터 버블 안에 스스로를 밀어넣게 된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오리무중 헤매기’라고 합니다. 개별화된 정보가 추출되는 과정은 누구도 모르게 이루어다보니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찾아내는 일이 어려운 상황에 돌입하게 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셋째는 ‘떠밀리기’인데 오프라인에서는 모든 일을 스스로 선택하게 되는데 반하여 필터버블에서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반대의 증거가 있는데도 우리는 자기가 보는 대로 세상을 믿으려는 경향이 있다.(109쪽)”고 정보분석가 리처드 호이어의 지적이 틀림이 없다는 것을 우리는 2008년 제2차 광우병파동을 통하여 절절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보고 싶은 것을 보기 위해 기존의 견해를 강화한 것을 믿는 경향을 심리학에서는 ‘확증편향’이라고 합니다. 인간의 이런 특성 때문에 필터 버블로 인하여 야기될 상황은 분명 우려할 만하기에 적절한 대책마련이 시급하다는 경고의 메시지를 이 책에 담아내려한 것으로 보입니다.
구굴의 검색 시스템이 정교해지고 지능화되면서 시스템코드를 만들어낸 프로그래머조차도 결과물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수준에 이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시스템 자체는 코드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생명을 가졌다고는 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검색엔진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왜 그런지 알지 못하고 결과만을 볼 뿐이라는 것(279쪽)”입니다. 이러한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은 프로그래머의 정신세계가 독특하다는 점을 알아야 할 것 같습니다. “프로그래머란 자신이 규칙을 만드는 한편 그것이 어떤 간섭도 없이 운영되기를 바란다. 운영하는 데 관리인이 필요하다면 그건 좋은 프로그램이 아니다. 프로그램은 그대로 두어도 그냥 돌아가야 한다.(227쪽)”는 더글러스 러시코프의 주장을 들으면 프로그램을 짜는 사람들이 때로는 신이 되고 싶은 충동에 빠지는데 프로그램을 통하여 사회를 혁신하려는 야심을 가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요즘 들어 개인정보의 보안이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만,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삶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가 도처에서 노출되고 있는 것도 현실입니다. 드물지 않게 인터넷을 통하여 개인의 신상털기가 사회적 이슈가 되기도 합니다만, 나도 모르는 내 사진이 인터넷에 떠돌아다닐 수 있다는 것은 소름끼치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자는 독재정권은 물론 민주적 정부조차도 국민의 온라인 행동양태를 감시하고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개별화, 즉 필터 버블로 온라인 세상은 소수의 사람에 의하여 통제되고 있다고 경고하면서 개인과 기업 그리고 정부가 힘을 모아 새로운 방향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주문하고 있습니다. 즉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을 그대로 비추기보다는 우리가 원하는 것들을 선택할 수 있는 인터넷 환경이 지켜져야 할 것입니다. 저자는 개인이 필터 버블에 갇히지 않으려면 새로운 방향으로 관심사를 넓혀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 ‘걸어 다니는 시계’라는 별명을 들은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를 인용해야 하겠습니다. 그는 매일 같은 시각, 같은 길을, 같은 속도로 산책을 하는 습관이 있어 마을사람들은 칸트를 보면 시간을 알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인터넷 세상을 칸트처럼 살게 되면 필터 버블에서 헤어날 수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습관을 깨뜨리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평소와 다른 길을 걷게 되면 새로운 것들에 눈을 뜨게 되는 것처럼 온라인에서도 새로운 길에 나서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게 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