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쿠비얀 빌딩 을유세계문학전집 43
알라 알아스와니 지음, 김능우 옮김 / 을유문화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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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에 관해서는 1990년 8월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이 계기가 된 걸프전쟁, 2003년 이라크전쟁 등이 기억나는 정도입니다. 1990년대 초반 미국에서 공부할 때 같은 실험실에 팔레스타인출신 친구가 있어 조금 소개를 받은 적도 있습니다만, 아무래도 수박 겉핥기가 되고 말았던 것은 그들에 관한 이야기를 읽거나 들을 기회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알라 알아스와니의 <야쿠비안 빌딩>을 통하여 근대 이집트 사회의 단면을 요약해서 들여다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역자의 해설대로 저자는 야쿠비안 빌딩에 이집트사회의 상층으로부터 하층을 구성하는 다양한 군상들을 담아놓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야쿠비안 빌딩에 살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이들 사이에 혹은 이들이 부딪히는 사람들과의 사이에 벌어지는 관계는 곧 이집트 사회의 단면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으로 보이는데, 어쩌면 그리 멀지 않던 과거의 우리 모습이 아니었던가 싶기도 합니다.

역자가 해제에서 밝혀둔 것처럼 이 소설은 1990년 제1차 걸프전 시기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등장인물들의 개인사를 쫓아 1952년 가말 압델 나세르가 이끈 군사혁명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면서 사회상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서술하고 있습니다. 야쿠비안 빌딩에 거주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과 엮인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갈등이 이야기의 큰 줄기를 이루고 있습니다만, 특히 자키 베 알두수키, 타하 알샤들리, 부사이나 알사이드, 야바스카룬과 말라크 형제 등이 이야기의 흐름을 엮어내고 있습니다.

상류층 사람들은 혁명으로 몰락해가는 과정에 있고, 하층 사람들은 보다 나은 기회를 붙들려 애를 쓰지만 결국은 붙잡을 밧줄은 없더라는 절망감에 대부분 희망을 포기한 삶에 머물기 마련입니다만, 그래도 곪아가는 곳에는 과감하게 메스를 넣어 도려내야 한다는 깨어있는 젊은이들도 있기 마련입니다. 우리가 그랬듯이....

당연히 이런 젊은이들이 변화를 요구하는 궁극적인 타겟은 부패한 상층부가 되어야 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처한 상황이 여의치않았던지 1991년 이라크를 타격한 미국의 개입을 비난하면서 지하드를 외치는 모습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형제여러분, 오늘 우리는 형제국 이라크의 무슬림들이 죽임을 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 모였습니다. (…) 우리가 지금 말하고 있는 동안에도 불신자들의 미사일은 형제국 이라크를 파괴하고 있습니다. (…) 형제여러분, 지금 매 순간 수천명의 이라크 무슬림들이 미국의 폭탄에 살점이 뜯어져 나간 채 순교하고 있습니다. 우리 통치자들이 미국과 이스라엘의 명령에 순종했을 때 이미 비극은 일어났습니다. 무슬림 군대가 팔레스타인을 유린하고 알아크사원을 더럽힌 시온주의자들에게 무기를 겨누는 대신, 우리 통치자들은 이집트 군인들에게 이라크의 무슬림 형제들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208쪽)“ 하지만 이들이 지하드를 통하여 지켜야 한다는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은 단지 이슬람의 불신자일 따름이라고 의미를 축소하고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여 이라크에 통합한 행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 것을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자가 진심으로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나라가 몰락하는 것은 민주주의가 부재하기 때문이야. 만약 진정한 민주주의 정권이 들어선다면 이집트는 강국이 될거야. 이집트이 폐해는 독재 정부야. 독재는 결국 가난과 부패 그리고 모든 분야의 실패로 끝나게 되어 있어.(290쪽)”라고 자키 베가 부사이나에게 하는 이야기에 담겨있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동시에 정작 민주주의를 꽃 피우기 위해서는 민초들의 결집된 힘이 바탕이 되어야 함에도 그렇지 못한 현실을 안타까워 하는 저자의 마음을 부사이나의 대답에 담아둔 것으로 보여집니다. “거창한 말이네요. 전 제 분수에 맞는 꿈을 꿔요. 가족과 함께 편안하게 살고 싶어요. 남편이 저와 아이들을 사랑하고, 제가 아이들을 돌보는 거요. 옥탑이 아닌 작고 예쁜 안락한 집에서요.(290쪽)”

한편 자키 베와 누이 다울라트의 다툼을 그리는 과정에서 나이든 형제 사이에 일어날 수도 있는 갈등에 대하여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두 노인 사이에는 노년과 더불어 생기는 짜증과 인내심 부족, 외고집이 있고, 게다가 두 사람이 필요 이상으로 서로 가까이 있는 데서 늘 생겨나는 긴장감이 있게 마련이었다.(104쪽)”

독특한 아랍사람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조금 아쉬웠던 것은 이집트 문화에 관한 용어가 후주로 처리되어 있어 쉽게 눈에 띄지 않아 놓칠 수 있다는 말씀과 뒤쪽에 있는 후주를 먼저 읽으신 다음에 본문을 읽으시는 것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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