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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2 - 세계신화총서 6
쑤퉁 지음, 김은신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8월
평점 :
절판
눈물의 의미를 찾고 있습니다. 이영도작가의 판타지소설 <눈물을 마시는 새> 시리즈를 통하여 눈물과 통치자의 덕목에 관한 철학(?)을 깨우치게 되었다는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http://blog.joinsmsn.com/yang412/12204049). 그리고 중국인의 심연을 그려내고 있는 쑤퉁의 작품 <눈물>에서도 민초의 눈물의 의미를 다시 깨닫게 됩니다.
출판사의 소개에 따르면 쑤퉁의 소설 <눈물>은 중국 4대 민간설화(‘견우직녀’ ‘백사전’ ‘맹강녀’ ‘양산박과 축영대’) 중 하나인 맹강녀 이야기를 소재로 하고 있다고 합니다. 설화에 따르면 진시황의 만리장성 공사에 징발된 남편을 찾아 나선 맹강녀가 남편이 이미 죽었다는 말을 듣고 성 밑에 쓰러져 울기 시작하자 열흘 만에 성이 와르르 무너지고 남편의 유골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일부함원(一婦含怨)이면 오월비상(五月飛霜)한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여인네의 한이 무섭다는 경종의 말이기도 합니다만, 맹강녀의 설화는 민초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왕은 오래갈 수 없다는 경구를 담고 있다고 보입니다. 그렇지만 한 여인이 열흘을 울어 돌로 쌓은 장성이 무너져 내리는 일이 가능할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건조한 자연과학적 호기심 때문일까요? 하지만 최근 문제가 된 강변고층건물의 떨림을 공진현상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처럼 맹강녀의 울음의 떨림이 장성에 쌓은 바위덩이들의 미세한 틈새에 생긴 떨림과 공진현상을 일으켜 무너져 내렸을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하지만 쑤퉁의 <눈물>의 주인공 비누(碧奴)가 쏟아내는 눈물 때문에 장성이 무너져 내린다는 설정은 작품전체의 맥을 완결한다는 의미는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설명력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고 우겨보고 싶은 생각입니다.
하지만 “눈물에 대하여 쓰고 싶었다. 바람으로도 무너뜨릴 수 없는 그 장성을 눈물로 무너뜨린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눈물이라는 것은 비관과 낙관의 양면을 모두 갖고 있다. 가난하고 힘든 백성들은 눈물을 갖고 있기에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는 것이다. 가진 것이라곤 오직 눈물뿐이지만, 그래도 행복하다.”고 한 작가의 속내를 듣고 보면 바람보다도 눈물의 힘에 무게를 두고 싶었던 것으로 이해가 됩니다. 금년 여름 우리는 곳곳에서 일어난 산사태를 보면서 바람보다도 무서운 물(그것이 눈물이 아니라 빗물이었지만)의 위력을 새삼 깨닫게 된 바 있습니다.
<눈물>의 스토리를 요약한 출판사의 리뷰를 인용합니다. 스포일러를 피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진나라 말, 북산에 유배 온 황제의 숙부의 억울한 죽음을 애도하며 눈물을 흘렸다는 이유로 마을사람 삼백여 명이 죽임을 당한다. 몇 십 년 후, 여전히 마음대로 울 수 없었던 북산의 마을 여인들은 눈을 제외한 신체의 다른 부위로 몰래 우는 방법을 터득한다. 머리카락으로 우는 법을 배우던 비누는 어머니가 일찍 죽는 바람에 그 비법을 제대로 전수받지 못해 울면서도 그 눈물을 감추지 못한다.
가난하지만 성실한 고아 청년 완치량과 혼인하고 한창 달콤한 신혼을 즐기던 어느 날, 남편 치량이 옷도 제대로 갖춰 입지 못한 채 만리장성 노역으로 끌려간다. 마을 여자들은 물론, 무당까지도 그녀가 남편에게 도착하기도 전에 길에서 죽고 말 거라고 말리지만 남편에 대한 사랑과 걱정만으로 비누는 천 리 길을 나선다.“ 소설 <눈물>은 장성공사에 끌려간 남편 완치량이 겨울옷도 챙기지 못한 것을 걱정한 비누가 생계를 이어갈 뽕나무를 처분한 돈으로 겨울옷과 노자를 마련해서 북쪽땅 대연령까지 가는 여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 여정은 황제의 폭압정치를 통하여 사람의 성품을 잃은 세상사람들의 면모를 엿볼 수 있게 합니다. 읽으면서 가장 마음 아팠던 점은 아이들의 변한 모습이었습니다. 특히 백춘대에서 만나 무덤파기에서부터, 죽은 백춘대 문객 진쑤의 관을 고향으로 호송하는 길까지 동행하게 되는 사슴인간 사내아이가 비누에게 보이는 인간성을 상실한 포악함을 읽다보면 연민을 느끼다가도 세상의 종말이 있다면 바로 이런 세상일 것 같다는 느낌에 소름이 돋기까지 합니다.
눈물 이야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쑤퉁의 상상력은 눈물이 눈에서만 흐른다는 생리학적 당연성을 뛰어넘고 있습니다. 마을사람들이 황제에 반역한 자의 죽음을 애도했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한 뒤, 감시받는 상황이 되면서 심지어 어린 아기까지도 울음과 눈물을 삼키는 방법을 체득하게 되는데 가슴에 담아둘 수 없을 정도로 넘쳐흐르는 눈물을 귀, 이마, 유방과 같은 다른 신체를 통해서 흘릴 수 있다는 독특한 생리학의 장을 열고 있는 것입니다. 아마도 눈물이 단순한 눈물이 아닌 감정의 흐름이라고 읽고 있음이 틀림없습니다. 또한 눈물의 맛도 그려내고 있는데, 보통은 눈물에 담겨 있는 무기염 때문에 조금은 짭짤한 맛을 내는 눈물이 달고 쓰기도 한 다양한 맛을 가진다는 설정도 사실은 그리 틀린 말이 아닙니다. 감정에 북바쳐 우는 눈물과 양파나 최루액과 같은 화학적 자극에 의해서 나오는 눈물의 맛은 다소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눈물>에서 작가의 관심은 오로지 비누에게 집중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시촌에서 대연령에 이르기까지 천리길을 가면서 만났다가 헤어지는 다양한 군상들의 뒷이야기는 없습니다. 오로지 비누와 같이 한 시간동안만 등장하는 존재로 그려지고 있어 조금은 아쉽고 미련이 남는 느낌입니다. 앞서 말한 사슴아이, 청개구리, 자객 샤오치 등이 어떻게 되었는지 황제가 죽은 다음 폭동을 일으킨 오곡성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쑤퉁의 이런 절차탁마는 비누가 도패 일곱 개를 가지고 천리 길을 가능동안 먹고 입고 자는 일을 어떻게 해결했는지는 전혀 언급이 없는 데서도 궁금증을 더하게 한다.
끝으로 독일의 아마존 독자가 남긴 평에 “냉혹한 자본주의와 이기주의, 인간소외 등 오늘날의 세태를 풍자하는 데도 성공하고 있다.”고 느낌을 남겼다고 하고, 또한 “진실한 삶의 가치를 모독하는 인간유형으로 등장하는 사슴인간과 말인간을 둘러싼 기발한 이야기들은 오늘날의 물질주의를 풍자한다. 고위 관리에게 끌려가 ‘눈물탕약’을 제조하는 장면 역시 인간의 순수한 감정을 착취하는 현대사회의 크로키다.”라고 설명하고 있는 출판사의 설명도 소설 <눈물>이 중국의 설화를 오늘의 언어로 옮긴 것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지나친 확대해석이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