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노년을 말하다
김윤식.김미현 엮음 / 황금가지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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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우리사회가 급변하고 있습니다. OECD가입을 기점으로 하여 선진국에 진입한 우리나라는 경제수준 뿐 아니라 의료수준이 빠르게 높아지면서 국민들의 기대여명 또한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그 효과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초고령사회로 이행하는 결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몇 차례의 경제위기를 건너오면서 청년실업이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만, 직장에서 조기퇴직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노후생활이 불안정해지는 부작용 또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2004년에 출간된 <소설, 노년을 말하다>는 당시 고령화사회로 진입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사회구조의 변화를 반영하여 문학, 특히 소설이 노인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에 주목한 기획으로 보여집니다. 문학평론가 김미현교수와 서울대학교 김윤식교수의 기획으로 만들어진 단편소설집 <소설, 노년을 말하다>에는 하성란, 한승원, 이순원, 이명랑, 이청해, 홍상화, 한정희, 한수영 등 30대에서 60대까지 전 세대를 아우르는 한국의 대표작가 여덟 분의 신작 단편 소설들을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들 단편소설들은 급변하는 한국사회에서 노인들이 어떤 모습으로 서 있는가를 예리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또한 김윤식교수의 글 ‘노인성문학의 개념 정리를 위한 시론’이라는 부제를 단 ‘한국문학 속의 노인성문학’을 같이 실었고, 김미현교수는 ‘웬 아임 올드’라는 제목으로 여덟 개의 단편소설에서의 노인성을 논하고 있습니다. 김미현교수님의 글을 읽으면서 저의 선생님에 관한 에피소드를 하나 소개할까 합니다. 거의 20년이 다 되어갑니다만, 제가 미국으로 연수를 받으러 갔을 때 모셨던 선생님은 당시 60대이셨지만, 맡으신 일은 손수 하시면서 제자교육에도 소홀함이 없으셨습니다.


그때 환자사례를 가지고 교육을 하곤 했는데, 그 사례집은 대체적으로 "A 75-years-
old caucasian male patient had been suffered from...(75세된 백인 남성이 ...로 고통을 받아왔습니다)로 시작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선생님께서는 꼭 "A 75-years-young caucasian male..."이라고 읽으시곤 하셨습니다. 선생님 생각에는 75세도 젊다는 생각을 내비치면서 좌중을 웃기는 유머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김윤식, 김미현교수님이 제시하신 ‘노인성 문학’이란 개념은, “생물학적인 나이를 기준으로 노인들이 지닌 문제 자체에 주목한 것이 아니라 존재론적인 양상으로서의 노인성, 문학의 소재가 아닌 본질로서의 약자(弱者)나 타자(他者) 문제를 다루는 문학(282쪽)”이라고 이해되었습니다.

수록된 순서대로 요약을 해보면, 한승원작가의 ‘태양의 집’은 할아버지로부터 각별한 관심을 받고 성장한 작가의 눈에 비친 조손(祖孫)관계를 통하여 사회로부터 이탈된 손자가 제대로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할아버지의 내리사랑을 그리고 있습니다. 홍상화작가의 ‘동백꽃’은 어쩌면 우리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관계설정의 미숙함을 고스란히 담아낸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재혼한 남성이 암으로 먼저 세상을 뜨면서 남겨진 아내와 전처 소생의 자식들 간에 일어나는 재산문제의 갈등은 아직 우리사회가 준비하지 못하고 있는 부분을 날카롭게 후벼내고 있다고 보입니다.

이순원작가의 ‘거미의 집’은 나이 드신 어머니를 누가 모실 것인가 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고려장의 고사까지 끌어오고 있지만, 곧 자신이 당면할 문제임을 애써 외면하려는 큰며느리의 잔재주가 밉살스럽기도 하지만 자녀에게 모든 것을 물려주고 노후를 자녀에게 의지하려는 전통적인 노후대책방식이 바뀌어야 할 때가 되었음을 시사한다고 보입니다. 한정희작가의 ‘산수유 열매’에서는 나이듦을 순순히 받아들이기를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초로의 여인이 주름제거시술을 받는 과정에서 시술자와의 인생경로를 교차시키면서 변하고 있는 남녀관계를 조명하고 있습니다.

이청해작가의 ‘웬 아임 식스티포’는 치매에 걸려 요양시설에 계신 할머니를 만나러 가는 손녀의 이야기입니다. 아무래도 치매는 여전히 두려운 존재인 것 같습니다. 하성란작가의 ‘712호 환자’는 “어느 날 일어나보니 남자는 벌레가 아니라 노인으로 변해 있었다.”는 문장이 처음에는 낯설게 느껴지는데 맹장수술을 받는 과정에서 의료과오가 발생하여 21년을 식물인간으로 지내던 남자가 어느 날 갑자기 깨어나게 되는데, 청년인줄 알았더니 갑자기 초로길에 접어들게 되었다는 다소 황망한 상황입니다. 21년간을 식물인간으로 지내기도 어렵겠습니다만, 식물인간상태에서 깨어났다는 사실은 의학적으로 불가해한 해외토픽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명랑작가의 ‘엄마의 무릎’과 한수영작가의 ‘벽’은 각기 어떻게 보면 우리사회에서 전통적으로 보아온 어머니와 아버지의 모습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떻든, 삶의 주역으로 활동하던 현장에서 물러나게 되면 생에 대한 적극성이 줄어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마지막 숨을 멈추는 순간까지 이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은퇴를 기점으로 하여 삶의 적극성을 거둘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삶의 나머지를 가치있게 보내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라는 확신(65쪽)”이 들었다는 동백꽃의 이숙진 여사의 삶에 대한 철학은 남편이 죽기 전에 보여주었던 전실자식들의 가식이 남편의 유언장을 공개하는 순간 벗겨져 폭력으로 드러났을 때도 얄팍한 유산을 내버릴 수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특히 나이든 부모를 홀대하거나 나이든 부모에게 여전히 의지하려는 자녀들의 모습을 그려낸 작품들을 읽으면서 초고령화사회로 접어들고 있는 이 시점에서는 부모의 입장에서 자녀들과의 관계를 새롭게 정의하는 작품들이 나와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기대를 해봅니다.

단편소설이다 보니 전개된 이야기들을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조금 더 끌고가 설명을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작품도 있습니다만, 단편소설 특유의 압축된 상황묘사도 즐길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한수영 작가의 ‘벽’에서 “붉은 빛이 나는 툇마루는 아름다웠다. 바람 부는 날이면 마른 댓잎들이 송장메뚜기 떼처럼 날아와 마루를 덮었다.(236쪽)”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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