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수 사용 설명서
전석순 지음 / 민음사 / 2011년 7월
평점 :
품절


 

<철수 사용설명서>가 나왔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그럼 <영희 사용설명서>도 같이 나왔어야 하는 것 아닐까요?”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늘에 실 따라간다.’고 철수하면 반사적으로 영희가 떠오르는 것은 아마도 초등학교 때부터 철수-영희 이야기를 들어온 탓이 아닐까 싶습니다. 혹은 모 케이블 TV방송의 인기프로그램 <남녀탐구생활>에서처럼 같은 사안에 대한 남녀의 시각에 얼마나 차이가 있는지를 재미있게 보여주는 작품으로 기대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첫 장을 펼쳐 읽으면서 영희 사용 설명서가 필요할 것 같지는 않겠다는 결론에 도달하였습니다. 오늘의 작가상을 선정한 심사위원들이 만장일치로 “루저 문학의 최고 극단”, “루저를 다룬 새로운 작품이 더 이상 나올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란 평과 함께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으로 결정했다는 전언처럼 우리시대의 젊은이들이 당면하고 있는 문제의 심각성을 독특한 구성으로 전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한편으로는 장편소설이라는 분류를 달고 있지만, 마치 가전제품 박스를 풀었을 때 발견되는 제품사용설명서-사실은 사용후기까지 친절하게 덧붙이는 사용설명서는 본적이 없습니다만-의 구조를 차용한 철수의 시각에서 바라본 상황을 기록하고 있는 구성을 소설류에 포함시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요즘 젊은이들의 트렌드와 동떨어진 보수적인 생각으로 똘똘 뭉쳐 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리고는 주인공 철수와 동갑내기인 큰 아이는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살고 있는지 머릿속에서 비교해가면서 읽게 되었습니다. 결혼적령기에 접어들고 있는 큰 아이는 제짝을 찾는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궁금하면서도 결국은 중매라는 절차를 통한 결혼시장에서 짝을 얻게 되는 상황을 예상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보니 저 역시 중매로 결혼을 했으니 세상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큰 틀에서는 벗어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고 있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의 생각이 럭비공 튀듯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기성세대의 시각대로 철수는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면서 자신이 처한 상태를 분석하고 있습니다. 분석결과를 토대로 자신을 업그레이드하려는 의지가 별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은 분명 아쉬운 점입니다. 이것도 요즘 젊은 세대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분명 시간과 돈을 투자해서 자신의 스펙을 업그레이드해서 시장에 내놓는 적극적인 젊은이들이 적지 않은 것도 요즘의 트렌드라고 한다면 철수의 대응은 자신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설명서를 업그레이드해보겠다는 정도의 지극히 소심함의 극치라고 보여지는 것은 기성세대의 안타까움일까요?

다시 부모의 입장으로 돌아가 보면 철수의 부모나 누나는 철수 사용설명서를 제대로 읽기나 했는지 의심되는 대목은, 팔랑귀처럼 누군가의 꼬임에 따라 학원, 개인교습 등등을 시켜보고는 느려터진 철수의 학업성취도에 조기실망하고 집어치우는 행태에서 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성장할 때 여러 차례 해주었던 말이 있습니다. “네가 세상에 태어난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다.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필요한 공부를-학교공부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열심히 해야 한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아이들은 칭찬과 격려를 먹고 쑥쑥 자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어느날 보니 훌쩍 커져있더라는 느낌을 받는 것처럼 자라는 패턴은 아이들마다 다르기 때문에 단순하게 비교하는 것을 옳지 않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마도 철수아버님이 “쓸모없이 태어난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어(46쪽)”라고 소심하게 말한 것과 일맥상통하지만 조금은 압박하는 수준에서 차이가 있었다고 보여집니다.

전석순 작가님은 우선은 상품설명서를 치밀하게 쪼개보았음이 틀림없습니다. “사용하기 전에”에서 “먼저 철수를 선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로 글머리를 열고 있는데, 이 말은 <철수사용설명서>를 읽기로 한 것에 감사드린다는 말씀으로도 읽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느닷없이 주인공이 처한 상황으로 독자를 몰아가는 다른 소설과는 달리 “제품 규격 및 사양”을 통하여 우리의 주인공 철수를 소개하는 특별한 친절을 베풀고 있다는 점도 눈에 띄는 대목입니다. 뿐만 아니라 상품 Q&A, 사용후기 등을 모드에 따라서 적절하게 배치하고 있는 점도 독특합니다. 철수라는 제품을 사용하는데 있어 주의해야 할 점들을 준비하기, 사용하기, 관리하기, 주의하기 등으로 나누어 두었는데, 우리의 삶 자체가 지나치게 기계화 상품화되어가고 있는 것에 대한 작가의 문제제기로 읽혀집니다.

어떻든 사용설명서를 업그레이드해가면 자신이 어떤 제품인지 명료해질 것이라는 철수의 생각은 잘못된 것 같습니다(210쪽). 즉 사용설명서란 제품에 따라서 결정되는 것인데 철수라는 제품은 본인도 어떤 기능을 가진 제품인지 확신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다만 오작동으로 인하여 몸에 열이 나는 동안 철수는 추웠는데 설명서가 업그레이드되면서 몸 안이 따듯해지는 느낌이 들게 되었다는 것으로 보아 희망이 보인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요즈음 봇물처럼 터지고 있는 청년실업, 대학등록금 등등의 문제는 과거에 대학정원을 마구 늘릴 때부터 예측했어야 하는 문제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청년실업이 사회적 문제가 되는 와중에 소위 3D업종에서는 일할 사람을 구하지 못해서 외국으로부터 인력을 수입하고 있는 것이 현실임을 볼 때 무언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떻든 철수 부모와는 다른 시각에서 아이들을 봐야되는구나 하는 결론을 쉽게 얻을 수 있었다는 말로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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