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과학 여행자 - 신경과 의사, 예술의 도시에서 뇌를 보다
김종성 지음, 경연미 그림 / 사이언스북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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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의대 신경과 김종성교수님의 전작 <춤추는 뇌>를 읽은 바 있기 때문에 이번에 새로운 책을 내셨다는 말씀을 듣고서 기대가 컸습니다. <춤추는 뇌>는 일반인을 위한 책이면서도 뇌에 관한 이야기를 적지 않게 다뤄야 했기 때문에 일반인이 이해하는데 다소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http://blog.joinsmsn.com/yang412/4607547). 이번 책이 <뇌과학 여행자>라는 제목을 달고 있어 아직도 밝혀지지 않는 점이 많아 여전히 신비한 세계에 속하는 우리의 뇌를 탐색해 들어가는 내용이 아닐까 추측해보았습니다.  

 

하지만 김교수님이 서문에서 밝힌 것처럼 뇌의학을 전공하다보니 해외여행을 할 기회가 많았고, 해외여행에 나설 때마다 그 곳에서 만날 수 있는 이야기 거리를 나름대로의 시각으로 정리해보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셨던 것 같습니다. “남들이 보기에 감히 여행기를 쓰겠다는 내 모습은 마치 말라빠진 조랑말 위에 올라타 기사 흉내를 내는 돈키호테 같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은 각자 자신의 시각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법이며, 나 역시 신경과 의하의 독특한 취향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다. 여행 중에도 나의 눈을 오래 붙잡은 대상은 역시 뇌질환과 관련된 것들이었으니 말이다.(6쪽)” 아무래도 관심이 많은 분야에 시선이 더 가기 마련입니다. 저 역시 해외여행을 적지 않게 다녔습니다만, 방문일정을 빠듯하게 잡고 또 방문목적에 매달리다 보면 방문한 지역을 둘러보려는 여유가 그리 많지 않은 탓인지 김교수님의 열정이 부러울 따름입니다.  

 

<뇌과학 여행자>에는 ‘아폴리네르와 미라보 다리를 걷다’는 제목으로 파리에서 만나는 예술가들의 신경질환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고, ‘풍차에 돌진하는 돈키호테’라는 제목으로는 스페인에서 만나는 신대륙발견과 관련된 사람들 그리고 예술가와 그들의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신경질환을, ‘도스토예프스키, 끝없는 이야기’에서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방문하면서 러시아의 문학가와 예술가의 신경질환을, ‘헨델의 메시아’에서는 런던을 방문했을 때 만났던 음악가들의 족적을 따라가면서, ‘히틀러가 뮌헨에 남긴 것’에서는 히틀러가 앓은 신경질환을, ‘아프리카 대륙에서’는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작가와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의 신경질환을, 북경에 초대받았을 때는 마오쩌뚱의 신경질환을 중심으로, 마지막으로 프랑스 프로방스를 방문하였을 때는 역시 이 지방출신 예술가의 신경질환에 관하여 추론하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물론 해외에 가신 목적이 단순하게 놀러간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공식활동도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춤추는 뇌>를 읽으면서도 놀랐던 바 있습니다만, <뇌과학여행자>에서도 김교수님이 문학, 음악, 미술, 영화 등등 다양한 분야에서 조예가 상당하다는 점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고, 특히 그런 지식을 적절한 자리에 잘 버무려서 읽을 수 있도록 한 글솜씨가 더욱 발전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다음 구절을 보시면 제 생각에 동의하실거라 생각합니다. “10월 초, 파리의 맑은 공기가 나뭇잎을 가을빛으로 물들인다. 밤나무와 플라타너스 나무의 잎 가장자리는 이미 진한 갈색으로 물들어 있다. 어디선가 바람이 불고 호수에는 오리들이 놀고 있다. 갑자기 가슴이 저려온다. 파리의 가을이 너무 아름다워서일까?(47쪽)” 사실 저 역시 해외출장에 나설 때면 노트북을 메고 가서 하루 일정뿐 아니라 그날 느꼈던 점들을 소상하게 기록하고는 있습니다만, 그것들이 누군가에게 읽힐만한 수준이 아니고 누군가에게 제 삶의 흔적을 남겨두는 정도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파리에서 아폴리네르, 모파상, 마네, 피카소 등 다양한 예술가들을 만나고 있는데 화두는 매독이 중심이 되고 있습니다. 19세기 유럽의 예술가들 뿐 아니라 사료계인사들을 괴롭힌 질병입니다. 이 병은 특히 뇌신경계를 침범하여 치매를 비롯한 다양한 정신질환을 일으키는 고급스러운 병이었는데, 이들에 대한 질병의 기록이 현대의학의 관점에서 얼마나 정확하게 재현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간혹 과거 유명인사의 사인을 추측하는 내용이 뉴스를 타고 전해지곤 합니다만, 그것은 단순한 가십거리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대부분의 그런 질환들은 현대의학으로 치료가 가능해졌기 때문이고 그들은 이미 역사 아니면 추억의 일부에 불과하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다만 질병이 그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당시 질병으로 고통받은 그들에 대한 사회적 시각이 어떠했는지 등에 관한 일까지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는 것 같습니다.  

 

또 한 가지는 김교수님 덕분에 그동안 원인을 찾지 못하던 제 술버릇을 고칠 수 있는 보너스까지 챙길 수 있어 감사드립니다. 돈키호테의 수면장애에 대한 설명부분입니다. “돈키호테가 한 손에 검을 쥐고 마치 적군과 싸우듯이 마구 휘두르는 와중에도 돈키호테의 눈은 계속 감겨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계속 자는 중이었고 꿈속에서 거인과 싸우고 있었기 때문이다.(81쪽)” 렘수면이 진행되는 동안 ‘렘수면 장애’환자는 팔다리를 마구 휘두르거나 소리를 지른다고 합니다. 제가 술이 조금 과한 날에는 자는 동안 심한 잠고대를 한다고 아내가 주의를 주고 있는데, 평소 무의식수준으로 눌려 있던 그 무엇인가가 음주로 인하여 억눌림이 풀리면서 의식으로 튀어 오르는 모양입니다. 최근 들어 금주를 결심한 일은 참 잘한 것 같습니다.  

 

여행을 할 때는 현지에서 볼거리를 찾아다니는 과정도 물론 중요합니다만,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찾아볼 것들을 정리하여 일정에 잘 짜 맞추도록 계획하는 일이 더 중요하고 재미있습니다. 물론 계획한 것과 현지에서 마주치는 상황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습니다만, 적지 않은 비용과 시간을 들여서 방문하는 곳에서 보다 많은 것을 보고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해외여행의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여 식견을 넓히고 그 경험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기 위하여 책으로 써내는 노력을 아끼지 않으시는 김종성교수님의 남다름에 감탄하게 됩니다. 문학과 예술에 관심이 많으신 분들에게는 색다른 면에서의 새로운 것들을 알게 되는 기회가 될 책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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