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이란 무엇인가 태학산문선 102
심노숭 지음, 김영진 옮김 / 태학사 / 2006년 5월
평점 :
품절


 

우리의 고문학을 다룬 책을 몇 차례 읽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한문을 제대로 공부한 적이 없기 때문에 많은 것을 얻지는 못했지만 무언가 울림을 느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것은 정민, 안대희님께서 태학산문선 발간사에서 “옛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았을까? 그때 그들이 했던 고민은 지금 우리와 무관한 것일까? 혹 그들의 글쓰기에서 지금 우리의 문제에 접근하는 실마리를 열 수는 없을까?(4쪽)”라고 지적한 것과 같은 맥락이었을 것 같습니다. 두 분은 진정한 의미의 ‘옛날’이란 언제나 살아있는 ‘지금’일 뿐이므로 옛글과의 만남이 우리의 나태해진 정신과 무뎌진 감수성을 일깨우는 가슴 설레는 만남의 자리가 되었으면 하는 결론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심노숭 산문선 <눈물이란 무엇인가>를 읽게 된 동기는 옛사람들이 슬픔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했는가를 찾아가다가 읽게 된 전송열교수님의 <옛사람들의 눈물>에서 소개하고 있는 심노숭의 ‘눈물이란 무엇인가(淚原)’라는 글의 일부를 읽고 놀랐기 때문에 그 원문을 읽어보고자 해서입니다. 심노숭은 상사(喪事)가 생겨 초빈(草殯)으로부터 시묘(侍墓)에 이르기까지 어떤 때는 한 번 곡하고도 눈물이 나다가 어떤 때는 천백 번 곡해도 눈물 한 방울 나지 않을 때가 있음을 기이하게 여겨 그 연유에 따져본 글을 짓게 되었다고 합니다.

“눈물은 눈에 있는 것인가? 아니면 마음(심장)에 있는 것인가?(51쪽)”라는 의문으로부터 글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당시 우리의 의학수준으로 해부학이나 생리학에 대한 지식이 없을 때이기 때문에 눈물을 흘리는 과정을 과학적으로 이해할 수 없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심노숭이 찾아들어가는 과정은 다분히 철학적이지만 과학적이기도 합니다. 다만 동양의학이 뇌의 기능에 대한 지식이 전무했기 때문에 정신이라고 보이는 마음이 뇌가 아니라 심장에 있다고 추정하고 논지를 전개하고 있다는 것이 차이라 하겠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마음을 비유하자면 땅이고 눈은 구름이다. 눈물은 그 사이에 있으니 비유하자면 비와 같다.”고 한 점입니다. 얼마 전에 읽은 <마르코스와 안토니우스 할아버지>에서 인용하고 있는 멕시코 설화에서 세상을 만든 신들의 꿈인 구름들 가운데 하나가 “자신들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어떻게 해서 세상을 만든 신들이 자신들로 변했는지 떠올리게 되었다. 그러자 그 구름의 고통이 눈물로 변했다. 일곱 번째 구름은 그 눈물 한 방울을 떨어뜨렸다. 최초의 신들은 일곱이었는데, 일곱 구름은 바로 땅을 위한 빛이 되려고 했던 신들의 바람이고 소망이었던 것이다.(75쪽)”는 것을 깨닫게 되었는데 그 눈물이 비가 되었다는 점에서 심노숭의 생각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심노숭은 기(氣)의 감응으로 비가 하늘에서 내리는 것이므로 “눈물은 마음으로부터 나오고 또 눈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52쪽)”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어떻습니까? 멋있는 해석이 아닙니까? 자신이 “제사에 임해서 곡(哭)을 해서 눈물을 흘리면 제를 지냈다고 여겼고 그렇지 않으면 제사를 지내지 않은 것과 같다고 여겼으며, 때때로 느꺼움이 있어 눈물이 나면 신이 내 곁에 왔구나라 여기고, 그렇지 않으면 황천길이 멀구나하고 생각했다.(53쪽)”고 하니 조금은 지나침이 있기는 하지만 자신의 마음이 고인을 생각함에 있어 진심으로 애도하면 뜻이 통하여 눈물이 나온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심노숭이 이처럼 슬픔과 눈물에 대하여 깊이 천착한 것은 “아내를 잃고 너무 슬퍼하는 자는 세상에서 비웃는 까닭에 아내를 잃은 자는 풍속을 두려워하여 그 슬픔을 숨긴다.(17쪽)”던 조선조에서 무려 26제의 시와 23편의 문을 남겨 아내를 애도하였다고 해서 참으로 독특하다고 합니다만, 그만큼 감성이 풍부하였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심노숭의 산문집을 옮긴 김영진교수님의 해제라고 할 ‘심노숭론-조선 후기 한 문인의 독왕고래(獨往孤來)’를 보면 심노숭은 역대 문인 가운데 소동파와 원진․백거이를 가장 흠모했다고 합니다. 심노숭(沈魯崇)의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태등(泰登)으로 효종 때 영의정을 지낸 심지원(沈之源)의 7대손이라고 합니다. 부친은 영·정조 연간의 문신이며 정변록(定辨錄)이란 당론서를 남긴 심낙수(沈樂洙)입니다. 1790년 진사가 되었으나 1801년부터 6년간 경상남도 기장에 유배되는 등 정치적 격랑 속에 불우한 장년기를 보냈다고 합니다.




김영진교수님은 한문으로 쓰여진 심노숭의 산문들 가운데 47편을 골라 우리말로 옮기고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원문에서 인용하고 있는 고사 혹은 옛문인에 대한 설명도 각주로 달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또한 책의 말미에는 원문을 붙여 대조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습니다.

47편의 글은 제1부 도망문, 제2부 인물전과 일화, 제3부 산해필희, 제4부 문예론으로 나누고 있습니다. <옛사람들의 눈물>에서도 소개드렸습니다만, 도망문(悼亡文)은 돌아가신 분을 애도하는 글입니다. 때로는 형식적으로 짓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고 합니다만, 조선 후기로 내려오면서는 도망문이 문예문으로의 완성도를 갖추어 갔다고 하는데, 심노숭의 도망문이 주목을 받는 이유는 ‘눈물이란 무엇인가’에서 토로하고 있는 것처럼 제사 때나 죽은 이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 가지고 있는 죽은 이에 대한 절절한 마음을 담아 진실한 감정으로 죽은 이를 기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그의 도망문에 담겨있기 때문이라 하겠습니다. 죽은 아내에 대한 심노숭의 절절함은 아내와 이별한 지 24년이 지나 55세라는 만년에 아내의 무덤을 찾아 ‘현감 부임 길에 다시 아내 무덤 앞에 서서’라는 글에서 여전히 나타나고 있습니다.

제2부 인물전과 일화에서는 당시의 사회상을 엿볼 수 있는 사람에 대한 기록문으로 들은 이야기에 자신의 생각을 짧게 담아내고 있습니다. 제3부 산해필희(山海筆戱)는 “평생 바둑, 장기 잡희(雜戱) 등을 알지 못하더니 궁하게 지냄에 할 일도 없고 근심으로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 두려워 몸을 움츠리기도 하여 이러한 것을 잊기 위해 한결같이 붓에다 부치미 이 또한 희(戱)일 뿐이다. 산과 바다 사이에 거처가 있어 기록한 것을 ‘산해필희(山海筆戱)’라 이름한다”고 적은 서두처럼 요샛말로 하면 꽁트에 해당하는 글도 있고, 신변잡기에 해당하는 글도 있습니다만, 앞서 2부에서처럼 인물을 평하는데 있어 자신과 견해가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다소 감정이 실린 듯한 느낌도 없지 않습니다. 하지만 정치적 대립이 심각하던 시절에 권력의 중심에 있으면서도 ‘근래 벼슬길의 병폐’라는 제목의 글에서는 벼슬자리가 특정집단에 의하여 장악되고 있는 점을 과감하게 지적한 것은 대단하다 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제4부는 요샛말로 평론이 될 것 같습니다. 시, 문학, 미술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적고 있는데, 예를 들면 “나는 또 시는 마땅히 심력(心力)을 써야지 기력(氣力)을 써서는 안된다고 생각하였다. 기력을 쓰면 자취가 남고, 자취가 남으면 중정화평의 도에서 멀어지게 된다.”고 시작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고 있는데 재미있는 것은 상반되는 견해를 가진 아우 태첨과 논쟁을 즐긴 것 같습니다. 단원의 속화에 대한 그의 견해도 재미있습니다. “속화(俗畵)는 화가의 화재(畵材) 가운데 가장 하류의 것이다. 이런 까닭에 비록 빼어난 가량을 발휘해도 사람들이 다 천시한다. 하지만 진실로 묘(妙)의 경지에 나갔다면 산수화이든 속화이든 가릴게 무엇이 있는가?”라고 하였으니 예술에 대하여 열려있는 그의 생각을 읽을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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