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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빠진 영화 영화에 빠진 사랑
강유정 지음 / 민음사 / 2011년 5월
평점 :
품절
‘글쓰기’의 힘은 어디에서부터 오는가?
언젠가 생각없이 펜을 들면 글이 줄줄 써진다는 싸가지 없는(?) 고백을 한 베스트셀러 작가를 본 적이 있습니다. 자기는 타고난 글쟁이라고 자랑질하는 것 같아 밥맛이 싹 달아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 분이 엄청 부럽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제 경우는 많이는 아니지만 읽기를 좋아하고 그리고 글쓰는 연습을 나름대로 해온 덕분에 이런 저런 글을 써내고 있는 처지입니다.
마음에 새긴 상처를 글로 달래는 경우도 있습니다. 특히 사랑이 만들어낸 상처인 경우는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평론가 강유정씨가 그랬던 것 아닌가 싶습니다. ‘사랑에 베인 상처’라는 제목을 단 <사랑에 빠진 영화, 영화에 빠진 사랑>의 프롤로그를 강유정씨는 “사랑이 고통인 시절이 있었다.”라고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고통을 달래셨을까요?’라는 질문이 나올 것을 예상했다는 듯이, “그때 영화가 위안이 되었다.”고 했는데 그 이유는 사랑 때문에 고통을 받는 영화 속의 주인공들에서 나를 만났고, 그들이 자신을 닮은 듯해서 안타까웠고, 그런 그들을 위로하고 달래주려고 “그래서 글을 썼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강유정씨가 글을 쓰는 힘은 사랑에 베인 상처인 셈입니다. 씨는 <사랑에 빠진 영화, 영화에 빠진 사랑>에는 사랑을 모티브로 한 영화 서른여덟 편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다양한 사랑방정식을 풀어내고 있습니다. “나쁜 영화를 좋아하고, 나빠지고 싶은 여자. 모든 극한에는 어떤 삶의 경지가 있다고 믿는”다는 저자의 독특한 관점 때문인지 그녀가 해부해서 갈라놓은 서른여덟 편의 사랑이야기를 읽는 동안 ‘불편하다’는 찜찜한 앙금이 마음 한 구석에 차곡차곡 쌓여갔습니다. 아마도 사랑을 주제로 한 영화들 중에서 로맨틱코미디물을 즐기는 저의 영화취향과는 다소 거리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고백하건데 서른여덟편의 영화 가운데 제가 본 것은 세편에 불과합니다. 그것도 영화관에서 본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사랑에 대한 그녀의 영화해부는 거침이 없습니다. 마치 변사체를 마주한 부검의사가 사인을 밝혀내기 위해서 날카로운 메스를 거침없이 휘두르듯이 말입니다. “여자는 몸에 남은 기억을 증오한다. 하지만 또 영원히 그 기억을 사랑한다. 여자는 몸으로 배운 기억을 수치스러워한다. 하지만 수치스러운 만큼 강렬히 그 기억을 원한다. 몸은 원하고 또 원하지 않는다.” 요즈음 즐겨보고 있는 드라마 “최고의 사랑”의 여주인공처럼 나쁜 남자와 좋은 남자로부터 대시를 받으면서 고민하지만 결국은 나쁜남자 쪽으로 기우는 것도 여성의 마음은 참 독특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사랑에 대한 여자의 마음은 참 복잡해서 사랑은 남들의 판단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마음이 가는대로 따라가는 모양입니다.
‘고장난 사랑기계’라는 소제목에서 소개하는 영화 <어톤먼트>에서 강유정씨는 “사랑하는 남자를 쓰다듬던 아름다운 손길이 더 이상 그를 소유할 수 없는 순간엔 죽음의 손길로 바뀌기도 한다.”고 설명하면서 그 죽음의 손길이 자신을 향하거나 혹은 사랑하는 사람을 향할 수도 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 텐토 아라타의 <애도하는 사람>에서 남편을 살해한 나기 유키오에게 스즈토가 전하는 말이 생각납니다. “정말 사랑했다면 아무리 싫어하고 아무리 미워해도 죽여서는 안됐어요. 사랑하는 사람이 살아주길 바라야 했어요.” 그것은 자신에게도 마찬가지가 되겠지요. 라흐마니노프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을 메인 테마로 했던 영화 <사랑의 은하수>에서 다시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돌아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수 없는 자신의 운명에 좌절한 남자 주인공이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는 것도 자기파괴적인 사랑을 단죄(?)하고픈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랑에 빠진 영화, 영화에 빠진 사랑>은 영화평론가가 썼지만, 평론이 아닌 주인공들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모아모아 전하기 때문에 영화를 보지 않았어도 마치 본 것처럼 주인공의 아픈 사랑을 오롯이 전해 받는 느낌입니다.
책읽기를 마치면서도 저자는 여전히 아픈 사랑이 마음에 새긴 상채기의 아픔이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아픈 상처의 기억도 시간이 지나면 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