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동문선 현대신서 50
피에르 쌍소 지음, 김주경 옮김 / 동문선 / 2000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나이가 들어가는 탓인지 매사에 대응하는 것이 느려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고 있습니다. 느려지고 있다는 의미는 식사하거나 걷는 것과 같은 일상적인 일로부터 업무처리방식도 변해서 눈앞에 닥친 일을 바로 처리하지 않으면 조바심이 나던 젊은 때와는 확연하게 달라지고 있습니다.

한국 사람은 외국인들까지도 “빨리, 빨리”라는 한국말을 익숙하게 사용할 정도로 성격 급하고 바쁘게 움직인다고 알려져 있습니다만, 최근 들어 우리나라에도 슬로우 시티가 지정될 정도로 느리게 사는 것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제야 책꽂이 한 귀퉁이에 오랫동안 숨어있던 피에르 쌍소의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에 눈길이 가게 된 것은 아마도 일상이 느려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쌍소는 ‘느림’“내게는 그것이 부드럽고 우아하고 배려 깊은 삶의 방식으로 보여진다.(10쪽)”고 고백하고 “나만의 리듬에 맞추어,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내 팔자가 내게 운명지어 준 리듬에 맞추어 조용히 나의 길을 갈 수 있도록 나를 가만히 내버려두어 달라고 감히 그들에게 정중히 부탁하고 싶다.(17쪽)”고 머리말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그는 “지칠 줄 모르는 자들은 그들만의 에고이즘에 갇혀서, 느림보들에 대한 배려 따위는 눈곱만큼도 없고, 그들의 특기는 느림보들을 완전히 녹아웃시킨 뒤 문 밖으로 몰아내고 만다.(22쪽)”고 날을 세우고 있습니다. 저 또한 삶을 바쁘게 살아낼 때는 타인을 배려하는 생각은 정말 눈곱만큼도 하지 않았던 것 같아 부끄럽기까지 합니다.

요즘 세상에 타인의 시선을 무시하고 살다보면 왕따 당하기 십상이지만 나름대로의 스타일대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미국에서 공부할 적에 한국에서 오셔서 같은 동네에 사시는 분들이 자주 모여 세상사는 일을 이야기하곤 했는데 그러다 보니 개인적인 삶의 여유가 없어지는 느낌이 들어 모임에서 자연스럽게 빠진 적이 있습니다. 그래도 중요한 모임에는 불러주시곤 해서 왕따까지는 아니라고 위안삼곤 했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모임에서 빠지는 것을 견디지 못하던 분도 계셨던 것 같습니다.

쌍소는 느림의 삶을 받아들이는 태도로 한가로이 거닐기, 듣기, 권태, 꿈꾸기, 기다리기, 마음의 고향, 글쓰기, 포도주 등을 주제로 삼아 자신의 생각을 풀어내고 있습니다.

그의 주제 가운데 가장 끌리는 부분은 ‘한가로이 거닐기’입니다. “그것은 시간을 중단시키는 것이 아니라, 시간에게 쫓겨 몰리는 법 없이 오히려 시간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그것은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움을 의미한다.(41쪽)”라고 한가로이 거니는 것을 정의하고 있는 쌍소처럼 한가롭게 걷는 것은 생각을 풍성하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가끔씩 원고청탁을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주제가 정해지는 경우는 글 전체의 윤곽을 잡기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만, 주제의 범위가 커지면 글머리를 잡는 것조차도 쉽지가 않게 됩니다. 그럴 때면 양재천 산책에 나서서 평소보다 느리게 걸으면서 써야 할 글에 담아야 할 내용을 다듬어나갑니다. 하지만 저는 쌍소처럼 소설의 주인공과 함께 산책을 하는 능력까지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죽음에 대한 쌍소의 독특한 시각에도 마음이 끌립니다. “나이가 아주 많은 사람에게 있어서 기다림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죽음 이외에 무엇을 기다릴 수 있을까? (…) 깊이 살펴본 죽음이 결코 불청객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남은 생에 대한 유일한 행복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면 (…) 죽음 앞에 선 인간에게 희망을 주는 것은 오직 한 가지, 신의 은총뿐이다. 이유도 없이 우리 안에 확신으로 자리잡아 온 그 소망만이 우리를 죽음이 가져온 두려움과 낙담으로부터 해방시켜 줄 수 있을 것이다.(88쪽)” 하지만 이러한 은총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스스로 구하려는 노력을 쏟은 사람에게 분명 기회가 더 많을 것입니다. 죽음은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공통된 운명이라고 한다면 그 죽음마저도 즐길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져야 하겠습니다.

포도주에 대한 그의 생각은 정말 배워야 하겠습니다. “포도주는 때로 우리의 모든 기능을 약하게 만드는 효과도 지니고 있다. 취기가 살짝 돌면 우선 흥분을 일으키게 되고, 그 다음엔 점점 마비 상태에 이르게 된다. 진짜 술꾼은 순식간에 벌컥벌컥 마시는 법이 없다. 조금씩 그 멍한 상태에 빠져드는 것을 즐기기 때문이다. 만일 너무 급하게 마시지만 않는다면, 우리의 기능이 점차 마비 상태로 빠져드는 감각을 좀더 예민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120쪽)” 천천히 우리의 신체가 술에 의해서 지배되는 과정을 느낄 수 있는 경지, 누군가 이야기한 주신(酒神)의 경지가 이런 경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런 경지에 이르려면 제가 즐기는 단숨에 술잔비우는 버릇을 버려야 하겠습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주신(酒神)께서 제게 할당한 양의 술을 이미 초과해서 마셔왔다는 생각이 들고 있습니다. 이젠 술을 더 이상 마시면 주신(酒神)에 대한 반역이라는 생각이 들어 술을 끊어야 할 것 같습니다.

쌍소는 느린 삶의 중요한 요소를 ‘시간에 쫓기지 않기 위해서’라는 큰 제목 아래 작은 제목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과정, 유토피아와 충고’라는 제목에서는 느린 삶의 문화 사회학적 접근방법을 제시하고 있는데, 재미있는 것은 두 개의 큰 주제 사이에 ‘리듬의 교체’라는 막간의 시간을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옛날 극단에서 무대를 정리하기 위한 막간시간을 지루해할 수도 있는 관객들의 관심을 잡아두기 위한 막간극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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