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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타이트 제국의 역사 - 점토판 속으로 홀연히 사라진 철의 제국. 3000년 만에 그 역사적 봉인이 풀리다! ㅣ 더숲히스토리
쓰모토 히데토시 지음, 노경아 옮김, 이희철 감수 / 더숲 / 2024년 11월
평점 :
‘히타이트제국’하면 인류 최초의 철기문명을 열었다고 배운 기억이 있습니다. 근동 혹은 중동지역(유럽인의 시각에서 본)은 인류 4대문명 발상지인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데스 강 유역의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나일 강 유역의 이집트문명이 만나는 장소였습니다. 이집트를 여행하면서 생긴 4대문명에 대한 관심은 이제 메소포타미아 지역으로 넓혀가고 있습니다. <히타이트 제국의 역사>는 그런 관심에서 나온 책읽기였습니다.
제국(帝國)이라하면 국가, 즉 왕국을 휘하에 둔 상위국가의 개념입니다. 즉 문화와 민족이 전혀 다른 영역과 구성원에게까지 통치권을 행사하는 국가를 말하는 것입니다. 동양에서는 시황제의 진나라, 서양에서는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로마를 최초의 제국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제국의 정의에 따라 주나라와 페르시아와 같이 이들보다 앞선 국가들도 제국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최초의 제국은 어느 나라인가. 지금의 바그다드 인근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아카드를 중심으로 한 아카드제국을 메소포타미아 최초의 제국이라 인류 최초의 제국이라고 합니다. 기원전 6천년에서 5천년 사이에 수메르 사람들이 메소포타미아 유역에 등장하여 동기시대와 초기 청동기 시대의 문명을 열었는데, 아카드의 사르곤왕이 기원전 2334년 무렵 수메르의 도시국가들을 차례로 정복하여 통일국가를 형성하여 제국의 위치에 오른 것입니다. 아카드제국은 약 200년 정도 지속이 되었지만 피지배국을 강압 통치하여 반란이 끊임없이 일어나 기원전 2150년 무렵 이란고원에서 온 구티족에게 멸망당했습니다.
나일강 유역에 등장한 이집트는 대략 기원전 3600년 무렵 상이집트와 하이집트 왕국이 성립했으며, 두 왕국이 통합된 기원전 3200년부터 왕국이 혼란에 빠지는 기원전 22세기까지를 고왕국 시대, 이어서 힉소스인에게 정복당한 기원전 1800년까지를 중왕국 시대라고 하고, 독립된 뒤 기원전 16세기로부터 기원전 11세기까지를 신왕조라고 구분하는데 신왕조시대에 이르러 이집트가 제국의 정체를 갖추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히타이트는 구약성경에 나오는 헷족을 이르는데 기원전 18세기 무렵 아나톨리아 북중부의 하투샤를 중심으로 왕국을 이루었고, 기원전 14세기 무렵 아나톨리아의 대부분과 시리아 북서부을 거쳐 레바논까지 그리고 동쪽으로는 메소포타미아 북부까지 영토를 확장하면서 제국을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이 무렵의 히타이트 제국은 이집트, 아시리아제국과 함께 근동지역의 3대 제국을 이루었습니다. 히타이트제국은 기원전 1180년경 와해되면서 여러 개의 도시 국가로 나뉘어 8세기 무렵까지 존속하였습니다.
<히타이트 제국의 역사>에서는 우리에게 생소한 히타이트 제국에 관하여 고고학적 성과를 바탕으로 상세하게 소개하였습니다. 히타이트 왕국의 등장으로부터 제국의 형성 그리고 멸망에 이르기까지의 서사를 고고학적 성과를 바탕으로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히타이트제국이 튀르키예의 카파도키아에서 발흥하였다고했는데, 10년전에 튀르키예를 여행할 때는 히타이트 제국과 관련된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히타이트제국의 주요 유적이 주로 튀르키예의 중, 동부지역에 집중되어 있는데, 여행은 주로 중부에서 서부 해안을 갔기 때문입니다.
히타이트제국이 붕괴하게 된 원인으로 해양민족의 내습으로 보는 견해가 있는데, 이집트의 사료를 바탕으로 한 가설이라고 합니다. 언급된 해양민족으로는 루카(Lukka), 카르키야(Karkiya), 펠레셋(Peleset), 세켈레쉬(Shekelesh), 셰르든(Sherden), 웨셰쉬(Weshesh), 에크웨쉬(Ekwesh)와 데이엔(Denyen), 테르커(Tjerker) 등이 알려져 있습니다. 이들은 고대 그리스 혹은 에게해 심지어는 시칠리아에 근거들 둔 부족들이라고 합니다. 아마도 이들 부족의 내습만으로 막강했던 히타이트제국이 무너졌을 것으로 보기는 힘들 것이고 가뭄과 같은 기상재해와 함께 역내 부족들 사이의 갈등으로 제국이 피폐해졌기 때문이 으들의 내습을 막아내지 못했을 것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