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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서양미술 순례 ㅣ 창비교양문고 20
서경식 지음, 박이엽 옮김 / 창비 / 2002년 2월
평점 :
펀트래블 여행사의 일본근대문학기행에서 좋은 강의를 해주신 로쟈선생님의 추천으로 읽게 된 서경식 교수의 <나의 서양미술 순례>입니다. 정리하고 있는 일본여행기를 격려해주는 차원에서 읽어보기를 권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나의 서양미술 순례>는 1983년10월에서 12월에 이르는 2개월 동안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에서 시작하여 벨기에,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독일 그리고 영국에 있는 여러 미술관을 돌아보는 여정을 담았습니다. 에필로그를 제외한 11꼭지의 글 가운데 10꼭지의 글을 최초의 유럽여행길에 본 것들을 정리했다고 합니다.
그의 유럽여행의 목적이 미술관 순례에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 옛날에 미술관을 돌아보기 위하여 유럽 여러 나라를 2달 동안 돌아보는 여정을 기획하였다는 것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2달동안의 여행에서 미술관들을 관람하였지만, 각각의 이야기들은 독립적으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글은 미술관 순례이면서도 여행기처럼 정리되어 있습니다. 여정에서 있었던 일을 미술관 관람과 아주 자연스럽게 녹여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주제가 되고 있는 그림과 관련하여 다른 미술관에 있는 다른 그림들도 끌어와 비교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주제가 되고 있는 그림들 가운데는 필자도 이미 직접 본 그림도 있고, 미학관련 서적에서 본 그림도 있지만, 전혀 생소한 그림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림 설명을 읽으면서 가끔은 의문이 생기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첫 번째 이야기 ‘캄비세스왕의 재판’에서 다룬 헤랄드 다비드의 <캄비세스왕의 재판>에서는 가열찬 사실정신에 압도당했다면서, ‘나의 시선은 화면 오른쪽의 사나이, 나이프를 입에 물고 사뭇 익숙한 손놀림으로 왼쪽 발목에서 뒤꿈치 언저리의 날가죽을 벅시고 있는 사나이에 붙박인 채 움직일 줄 모른다.(12쪽)’라고 느낌을 적은 부분입니다. 가죽벗김을 당하는 형벌이 가해지는 현장을 그린 것이라 하는데, 그렇다면 산자의 껍질을 칼로 벗기는 형벌일 것입니다. 그런데 형리가 껍질을 벗기는데 쓰고 있는 칼을 입에 물고 있을 수 있었을까요? 보통은 그런 일에 사용하던 칼은 다른 일을 하는 동안 잠시 옆에 내려놓았을 것입니다.
읽어가는 동안 수구세력에 대한 저자의 노골적인 저항이 느껴졌습니다. 진보와 민중은 무조건 옳다는 시각으로 바라보는 듯했습니다. 재일 한국인으로 살면서 서울에 유학 중이던 두 형님이 사상범으로 무기징역형을 받아 수감생활을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형님들의 구명을 위하여 미국, 유럽 등지의 인권운동가들을 찾아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어쩌면 그런 사정 때문이거나 아니면 원래부터 그와 같은 철학을 가지고 있었던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마드리드의 군사박물관에서는 500여년에 걸친 에스파냐 왕국이 수집한 군사장비들을 관람하면서 “이 박물관은 4,5세기 이상에 걸쳐 그들이 전개해온 수백만명에 이르는 선주 아메리카인, 아프리카인, 아시아인들에 대한 피로 물들여진 침략과 살육의 기념관이다.”라고 비판하면서도 ‘일본이야 어떻든...’이라고 적은 것을 보면서 비슷한 사안을 바라보는 작가의 이중적 시각이 느껴졌습니다.
읽어가면서 느꼈던 어려움은 고유명사를 일본식으로 적었기 때문에 현지발음을 중심으로 표기하고 있는 최근의 경향에 따른 고유명사와 연결하는 것이 어려웠던 점이라 하겠습니다. 일본에서 이 책이 출간된 것이 1991년이고 우리나라에 번역 소개된 것이 1992년이라면 당시의 기준에 따라 현지의 고유명사를 적는 표기방식으로 번역을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작가의 두 형이 수감생활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만 단편적으로 나올 뿐 그들이 받은 혐의에 대한 구체적 소명은 없이 구명운동을 전개했다고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어떻든 그들의 이야기가 작가가 이 책을 통하여 이야기하고자 하는 주제와 녹여지는 부분이 있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