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맡기는 보관가게 2
오야마 준코 지음, 이소담 옮김 / 모모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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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긴 설 연휴에 읽을 책을 고르다가 눈에 띈 책입니다. 일본근대문학기행을 하면서 도쿄의 롯폰기, 진보초 등 도심에서 자유 시간을 즐겼는데, 그때 만난 거리의 어느 구석에서 본 듯한 느낌이 들어서 읽게 되었습니다.


책을 고를 때는 몰랐습니다만, 이 책을 쓴 오야마 준코(大山淳子)남다른 시선과 감각적인 서술로 일상을 어루만지는 일본의 소설가이자 연속극 각본 작가라고 합니다. 전업주부이다가 43세에 시나리오 학교에 입학하였고, 45, 47살에 각각 각본상을 수상하였지만, 무명에게 작업을 맡길 수 없다고 하여 각본의 바탕이 되는 소설을 쓰게 되었다고 합니다. 50살이 되던 해에 <고양이 변호사>가 원작 대상을 받게 된 것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게 되었는데, 2013년에 발표된 <마음을 맡기는 보관가게>는 지금까지 5권의 연작을 발표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는 3권까지 옮겨져 있습니다. 저는 1권도 미처 읽지 않은 상태에서 2권을 읽게 되었습니다.


서문은 중학생 시절 국어를 가르친 선생님께 보낸 누군가의 편지에서 시작합니다. 편지를 쓴 이가 중학교 1학년 때 첫 수업에서 하루에 100엔으로 어떤 물건이든 맡아준다는 가게 이야기를 듣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물건을 맡기고 싶은지 적어보라는 숙제를 내주었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처음 만난 친구들이니 자기소개를 하라는 뜻이었던 모양입니다.


<마음을 맡기는 보관가게2>에는 모두 4꼭지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기소(木曾)라는 곳에서 뛰어난 장인이 만들었다고 하는 후주쿠에가 주인공입니다. 좌식책상인데 고물상에 오래 보관되다가 작가가 되겠다는 아쿠류가 찾아와 샀습니다. 아쿠류는 후주쿠에게 아니라 분주쿠에라고 부릅니다. 한 때 피카소를 꿈꾸었던 아쿠류가 이번에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를 꿈꾸기 시작한 것입니다. 결국 엄마가 찾아와 다시 집으로 돌아가면서 그의 분주쿠에는 보관가게에 맡겨지게 된 것입니다. 엄마로부터 받은 돈 2만엔을 모두 주고 맡겼으니 200일을 맡기게 된 셈입니다.


그런데 이 가게에는 몇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1. 보관료는 하루 100, 2. 정해진 기간 안에 물건을 찾으러 와도 보관료는 돌려주지 않는다, 3, 정해진 기간이 되면 보관물품은 주인의 것이 된다. 4. 맡긴 사람의 이름은 꼭 밝힌다. 등입니다. 결국 아쿠류는 분주쿠에를 찾아가지 않았기 때문에 좌식책상은 가게의 주인의 소유가 되어 점자책을 올려놓게 되었습니다.


두 번 째로 등장하는 물건은 푸른 연필입니다. 마사미는 할머니가 사시던 가마쿠라 해변의 바다를 닮은 푸른색 2B연필을 새학기에 친구가 된 유리에를 위하여 새로 전학 온 오다의 필통에서 훔쳤습니다. 동생 나오키가 입에 넣고 깨무는 바람에 상처가 생긴 연필을 돌려주지 못하고 보관가게에 3일간 맡기게 되지만, 결국은 오다에서 연필을 훔쳤다는 사실을 고백합니다. 그런데 오다는 이 연필을 유리에로부터 훔쳤다고 했습니다


오다는 다시 전학을 가면서 마사미에게 프랑스판 <어린왕자>를 맡기고 푸른 연필을 유리에에게 돌려줍니다. 20년이 흐른 뒤에 마사미는 가마쿠라의 할머니 집에 살면서 가맹 식당에서 점장으로 일하게 됩니다. 어렸을 적에는 언제나 아름다운 푸른빛이었던 태평양이 초록일 때도 있고 물빛일 때도 있고 회색일 때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필자가 가마쿠라 해변에 갔을 때는 바람이 세게 불고 파도가 높았던 탓에 바다 빛을 유념해서 보지 못했습니다만, 회색에 가까웠던 것 같습니다.


세 번째 물건은 시계의 나라 스위스에서 제무스라는 장인이 만든 오르골입니다. 피아노를 연주하는 아내가 아이를 가졌을 때 슈만의 트로이메라이를 얹어 만들었습니다. 오르골은 짧은 곡만 연주한다. 반복만 할 수 있다. 속도가 느려진다.’는 세 가지 결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제무스의 아내는 짧은 소절을 반복하는 것과 서서히 느려지면서 자연스럽게 멈추는 것이 좋은 점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음악을 반복해서 들으면 몸에 새겨지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치기에 좋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작아서 휴대하기에 간편하다는 점도 좋은 점에 더해집니다. 하지만 아내가 아이를 낳다가 잘못되어 목숨을 잃었습니다. 결국 제무스가 만든 오르골은 파란만장한 과정을 거쳐서 오스트리아의 골동품 가게에 맡겨졌다가 일본에서 여행 온 신혼부부의 손에 넘겨져 일본까지 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나이 들어 죽음에 이른 부부는 오르골을 50년 동안 보관가게에 맡기게 된 것입니다.


마지막 이야기는 도오루 기리시마가 보관가게의 주인이 된 사연을 소개합니다. 그러니까 이 이야기에는 보관가게에 맡겨지는 물건이 나오지 않는다. 대신 도오루가 다니던 학교에 전학 온 이시가마와 함께 가마쿠라의 유이가하마 해변을 찾아가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리고 보면 가마쿠라는 일본작가들에게는 중요한 소재가 되는 모양입니다. 눈이 보이지 않거나 약시인 두 사람이 전철을 타고 해변에 이르는 과정은 가능할까?’ 라고 생각하는 독자의 편견을 버리게 만듭니다. 두 사람은 다리가 푹푹 빠지는 모래사장을 지나 파도에 다리를 적시기도 했는데, 저는 파도에 발을 담가보지는 못했습니다. 겨울해변에서는 물에 들어갔다 나와서 수습할 방도가 마땅치 않았던 것입니다.


파도에 발을 적신 두 사람이 동반자살하려는 것으로 오해하고 쫓아온 아주머니에게 지금 바다는 어떤 색인가요?’라고 묻는 이시가마에게 아주머니는 아름다운 색이라고 말합니다. 두 사람은 바다가 분명 아름다울 것이라고 믿고, 파도소리가 가슴을 기분 좋게 울린다고 느낍니다. 그리고 한동안 바다의 색을 상상하며 파도 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도오루는 가마쿠라 해변에서 이노우에 야스시의 <북쪽 바다>를 연상하지만 이 책은 아직 우리나라에 소개되지 않았습니다. 여기에서 인용한 <시로밤바><이노우에 야스시의 여행 이야기>를 읽어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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