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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각사
미시마 유키오 지음, 허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2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 전에 다녀온 일본근대문학기행의 첫날 일본근대문학관을 찾았습니다. 도쿄 메구로구의 고마바 공원에 있는 일본근대문학관은 패전을 딛고 경제성장을 이루어가던 과정에서 문학자료의 분산을 막기 위해 1967년에 개관하였습니다. 150명 이상의 현대 일본 작가와 관련된 수십만점의 도서, 서신, 잡지, 일기, 육필원고, 동영상 등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펀트래블의 일본근대문학기행의 일정에 따라 방문한 일본근대문학관에서는 미시마 유키오 탄생 100주면 기념전이 열리고 있었습니다. 전시회에 나와 있는 자료들은 대부분 일본어로 되어 있어 해독할 수 없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미시마 유키오는 이번 여행의 일정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일본의 근대작가의 한 명으로 당시 노벨문학상 후보로 꼽히던 인물이기도 합니다. 필자가 고등학교에 다니던 1970년 할복자살을 했다는 소식이 전해져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짧은 생애였지만 단편소설 156편, 장편소설 36편, 희곡 및 시나리오 73편, 수필 비평, 대담 등 400편 이상을 남겼다고 하는데, 그의 작품은 우리나라에 많이 소개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전시회에서 만난 인연으로 그의 작품 중 수작으로 꼽히는 <금각사>를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금각사>는 1950년 교토에 있는 금각사를 불태운 승려에 초점을 맞추어 범행과정의 심리상태를 그려낸 작품입니다. 킨가쿠지(金閣寺)라고 하는 교토의 로쿠온지(鹿園寺)는 오사카에서 학회가 열렸을 때 가본 적이 있습니다. 벽을 온통 금빛으로 칠한 사찰건물이 연못에 비쳐 보이는 특이한 풍광으로 기억합니다. 이 절은 무로마치 막부의 쇼군 아시카가 요시미츠가 부처의 사리를 모시기 위해 건립하였는데 1950년의 화재로 불탔던 것을 1955년에 복원했다고 합니다.
방화범 하야시 쇼켄은 조그만 절간의 주지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병약하고 말을 더듬어 주위로부터 놀림을 당하였지만, 태연했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 금각사 주지의 도제로 들어갔다고 하는데 외톨이로 지내면서 성격이 괴팍해져 다른 도제들과 다툼이 잦았다고 합니다. 조서에 따르면 ‘장로는 친절한 듯하면서도, 솔직하지 못한 데가 있고, 나만을 따돌렸다.’고 했습니다. 방화사건 이후의 정신감정에 따르면 ‘가볍기는 하지만 정신이상증세가 있기에, 분열병질로 진단하여야 할 상태에 있었다고 추정된다. 따라서 본 범행은 동증병질에 의 부분현상인 병적 우월 관념에 의한 것’이라는 결론이 내려졌습니다.
동 사건을 소재로 삼아 쓴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는 주인공 미조구치의 고백으로 일관되는 1인칭 소설입니다. 어려서부터 아버지로부터 들어온 금각사에 유별난 관심과 애정, 심지어는 일체감마저 갖게된 미조구치입니다. 금각사에 대한 이런 감정들은 성장하면서 불가피하게 마주하는 현실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감정을 방해하게 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금각사를 불태우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미조우치가 작은 아버지 집에 맡겨져 중학에 다닐 무렵 같은 동네에 우이코라는 소녀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학교를 졸업하고 해군병원의 간호사가 된 우이코 앞에 나섰지만 말을 더듬는 바람에 곤혹을 치루고 말았습니다. 얼마 후 해군기지에서 병사가 탈영한 사건과 관련된 우이코가 탈영병과 함께 사살되고 말았습니다. 이 사건은 미조구치에게 커다란 충격으로 남았습니다.
미조구치가 아버지로부터 말로 듣던 금각사를 처음 보았을 때 “아무런 감동도 일지 않았다. 그것은 낡고 거무튀튀하며 초라한 3층 건물에 지나지 않았다. 꼭대기의 봉황도, 까마귀가 앉아 있는 것처럼 보일 뿐이었다. 아름답기는커녕 부조화하고 불안정한 느낌마저 들었다. 미라는 것은 이토록 아름답지 않은 것일까, 하고 나는 생각했다.(29쪽)”라고 적었습니다. 그런데 그토록 실망을 주었던 금각이 야스오카에서 돌아온 후 나날이 미조구치의 마음속에서 다시 아름다움을 되살렸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미조구치는 교토의 금각사로 가서 도제가 되었고, 득도하였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득도(得度)는 불교의 오묘한 이치를 깨닫는 득도(得道)가 아니라 불교에서 승려가 되기 위한 출가의식을 이야기합니다.
교토의 중학교로 전학을 하고 학교에 다니게 되면서 쓰루가와라고 하는 동료 도제와 함께 지내게 됩니다. 그 무렵 태평양전쟁이 막바지에 달했고 금각사가 불에 타게 될 것이라고 미조구치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이와 같은 생각이 훗날 금각사를 불태울 생각으로 전이된 것 같습니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심한 안짱다리를 가진 가시와기와 친구가 되는데 그 이후로 미조구치의 행동에 변화가 생깁니다. 수업을 빼먹고 여자들과 어울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자와의 관계를 통하여 자신의 인생을 찾아보겠다고 시도할 때마다 금각이 나타나 관계를 방해하게 됩니다. 그리고 가시와기의 꽃꽂이 선생과 관계를 시도할 때 역시 금각이 나타나 방해받게 되면서 금각사를 불태우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된 것입니다. 금각사 주지의 일탈을 목격한 것이 계기가 되어 후계자 구도에서 밀려난 것도 결심을 실행에 옮기는데 힘을 더한 것으로 보입니다.
작가는 금각사를 사랑하던 미조구치가 금각사를 불태우겠다는 결심을 하고 실행에 옮기기까지의 심리상태를 치밀하게 그려내고 있어 미주구치의 행동이 이해되기도 하면서, 과연 그토록 대담한 생각을 행동에 옮길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결국은 미조구치의 정신상태에 문제가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미조구치의 치명적인 생각을 되돌려 놓을 수 있는 묘안은 없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