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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나쓰메 소세키 지음, 유은경 옮김 / 향연 / 200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얼마 전에 다녀온 일본근대문학기행의 일정에는 나쓰메 소세키의 산방을 방문하는 일정이 있었습니다.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 활동에 관한 다양한 자료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그의 초기작품인 <산시로>를 읽고서 산시로의 모습에서 젊은 날의 제 모습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나쓰메 소세키의 산방에서 <그 후>와 <문>이 <산시로>의 후속작이라 해서 읽기로 하였는데 <그 후>와 <문>을 순서가 바뀌어 읽게 되었습니다.
산시로의 작품소개를 보면, “나쓰메 소세키가 문학과 학문을 통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답하고자 천착한 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인간적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문제이며 이는 곰곰이 생각해볼 인생의 화두가 된다.”라고 했습니다. 소세키는 <그 후>가 산시로의 그 후의 모습이었다고 했다고 합니다.
<문>의 모두에 있는 역자의 글에서는 “<그 후>에서 도쿄대학을 졸업한 다이스케를 주인공으로 하여, 대학 시절 의협심 때문에 친구에게 양보했던 미치요라는 여성을 ‘천의’에 따라 되찾으려는 결심을 하게 되는 과정을 그렸다”라고 하였으며, “<문>에서는 ‘천의에 맞지만 사람의 도리에는 어긋나는 사랑’을 하게 된 <그 후>의 다이스케와 미치요의 바통을 이어받은 소스케와 오요네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절벽 밑의 셋집에서 쓸쓸하지만 ‘금실 좋은 부부’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5쪽)”라고 했습니다.
<산시로>의 주인공이 구마모토에서 도쿄로 올라와 대학생활을 시작하는 과정을 그려냈습니다. 구마모토에서 도쿄로 가는 기차에서 만난 여성과 여관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되는데, 두 사람은 손도 잡지 않고 밤을 보내고 말았습니다. 다음 날 아침 두 사람이 그냥 헤어졌더라면 별다른 의미가 없었을 터인데, 그녀가 산시로에게 건넨 “당신은 참 배짱이 없는 분이로군요.”라는 말을 곱씹어보게 합니다.
기차에서 처음 만난 산시로를 따라 여관에까지 쫓아온 그녀의 속셈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런 그녀는 왜 적극적으로 산시로를 유혹하지 않았을까요? 산시로는 배짱이 없는 것이 아니라 순수했다고 하는 것이 옳은 것 같고, 순수하지 않았던 그녀야 말로 배짱이 없었던 것 아닐까요?
나쓰메 소세키의 초기 3부작이라고 해서 읽게 되었습니다만, 주인공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산시로의 이야기가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3명의 젊은이들이 어떤 삶을 살게 되는지를 비교해본 작품들이라고 보아야 하지 싶습니다.
<문>은 1910년 3월부터 6월까지 도쿄 아사히신문과 오사카 아사히신문에 연재된 소설입니다. 전작이 끝날 무렵 차기 작품을 예고하게 되었는데 그 제목을 작가가 정하지 않고 문하생들이 정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제목을 의뢰받은 문하생이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들춰보고 ‘문’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와 ‘문’을 제목으로 해보라고 권했다는 것이니 작품의 얼개를 미리 생각하고 있었다면 거기에 ‘문’의 의미를 녹여냈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 같습니다.
결국 이 작품에서는 잇소암에 참선을 하러갔다가 원하는 바를 얻지 못한 소스케의 독백에 제목인 ‘문’의 의미를 새겨 넣었습니다. “나는 나의 문을 얼려고 왔다. 하지만 문지기는 문 뒤에 있으면서 아무리 두드려도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단지, ‘아무리 두드려도 소용없다. 네 힘으로 열고 들어 오너라’하는 소리가 들릴 뿐이었다. (…) 그는 그 문을 통과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문을 통과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은 아니었다. 요컨대 그는 문 앞에 우두커니 서서 날이 저물기를 기다려야 하는 불행한 사람이었다.(244-245쪽)”
문의 주인공 소스케는 우유부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아무리 어렸다고 해도 유복한 가정에서 자란 탓인지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모든 일을 숙부에게 맡기고는 내버려 둔 탓에 동생의 학업조차 돌보아줄 수 없는 상황에 몰렸습니다. 그런 성격인 소스케가 친구 야스이와 함께 살던 오요네가 여동생이라는 말만 믿고는 결혼해서 살게 된다는 설정도 애매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소세키를 존경하는 분들은 그의 문체나 이야기의 구성이 빼어나다고 합니다만, 모호한 부분이 많고 마무리 역시 모호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연재소설의 경우 회차가 끝날 무렵에 갈등구조를 키워서 독자들이 다음 회차에 관심을 키우는 경우가 많은데 전반적으로 이런 구조를 볼 수 없고, 비슷한 상황도 유야무야 정리되는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