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루스트 사뮈엘 베케트 선집
사뮈엘 베케트 지음, 유예진 옮김 / 워크룸프레스(Workroom) / 2016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도를 기다리며>로 친숙한 사뮈엘 베케트의 <프루스트>는 일본근대문학기행 4일째 저녁에 읽었습니다. 얇다는 이유로 골랐지만 내용은 결코 얇지 않았습니다. 파리 고등 사범학교에서 영어강사로 일하던 1930, 그러니까 24살이 되던 해에 낸 첫 비평집입니다.


사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세 번 읽었지만 머릿속에 남아 있는 게 별로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베케트 역시 이 책의 서문에서 "프루스트 방정식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라면서, 프루스트  해석의 다중성을 깊게 살펴보기 위하여 프루스트식 논지의 내적연대를 따라갈것이며, 저주와 구원의 쌍두괴물인 시간에 대해 살펴볼 예정이라 합니다. 작품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프루스트의 삶이나 그와 관9ㅡ련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는 없다고 했습니다.


베케트는 1. 작가 프루스트가 아닌 개인 프루스트, 2. 프루스트와 관련된 주변인들의 증언,3. 시인이자 에세이 작가 프루스트, 4.  러스킨 숭배자이자 번역가 프루스트 등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 작품과 소설가  프루스트에게 집중했다고 합니다.


당시 독자들은 이 작품의 구조가 허술하고 파편적인 소재들을 나열한데 그치고 있다는 평이 많았다고 합니다. 저 역시도 몇 차례 읽어도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하지만 베케트는 이 작품 속에서 디딤돌을 보았고, 그 위에 다양한 요소들을 쌓아올리고 있음을  간파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작품이 중년 이상이 된 화자가 어느 날 프티 마들렌을 차와 함께 마시다가 어렸을 때의 기억을 떠올린데서 시작했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니까 소년의 시기로부터 장년(아마도 전쟁에 나갔다 온 어느 날일 수도 있겠습니다.)까지의 시기에 일어난 일은 기억을 회상하는, 그러니까 잃어버린 시간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군대를 다녀온 뒤에는 추억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화자와 알베르틴의 관계 역시 의문이 많이 들었습니다. 마르셀이 발베크에서 만난 한무리의 여자 중 하나이지만 마르셀의 주목을 받지 못합니다. 그런 그녀가 파리에서는 당당하게 나서고 마르셀 또한 큰 관심이 없던 그녀와 동거에 들어가는 상황이 설득력이 없다는 생각입니다.


저자는 마르셀과 알베르틴의 비극적 관계는 실패가 예고된 인간관계의 전형이라고 했습니다. 어찌 보면 신분상승을 꾀하는 알베르틴이 끊임없이 속이고, 마르셀 역시 알베르틴을 의심하고 감시하는 구조에서는 사랑이 배태되고 아름다운 사랑으로 승화되기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베케트는 기억과 습관은 시간이라는 암이 가지고 있는 종양이라고 했습니다. 기억과 습관은 프루스트 소설의 가장 단순한 에피소드를 통제하는데, 그 작용원리를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기억의 법칙은 습관의 법칙의 지배를 받는다고 합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는 식물과 관련된 은유가 많이 나오는데  프루스트가 인간을 식물에 비교하는 것은 의미심장한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처럼 식물에 관한 은유가 빈번한 것은 도덕적 가치와 인간의 정의에 대한 프루스트의 완전한 무관심과 일맥상통한다는 것입니다.


마르셀은 되찾은 시간에 이르러서야 소설가로서의 소명을 발견하게 됩니다. 과거에는 자신의 재능이 부족한 것은 관찰능력. 더 정확하게 말하면 예술적인 것과는 상관없는 관찰습관의 부재 탓으로 돌렸던 것입니다(56). 사실 이 작품을 읽다보면 프루스트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을 얼마나 면밀하게 관찰하고 있으며, 그 결과를 아주 적절하게 비유해내었는지 놀라곤 합니다. 이와 같은 변화는 광범위한 독서를 통해서 얻었다고 보입니다.


베케트 역시 젊은 시절 프루스트에 대한 비평을 쓰면서 자신의 조건과 한계를 느꼈고, 작가로서의 소명이 무엇인지 깨닫는 계기가 되었던 것은 아닐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