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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나잇 라이브러리
매트 헤이그 지음, 노진선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4월
평점 :
살아온 날들 가운데 의미 있는 날이라곤 없고,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없다는 생각에 '나는 이 우주에서 불필요한 존재'라는 생각이 드십니까? 그렇다면 매트 헤이그의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를 읽어보십시오.
일찍이 수영에 재능이 있어 올림픽 대표가 될 것이라고 했지만 아버지의 강압에 지쳐 포기하고 오빠와 악단을 조직하여 활동하면서 작곡도 해보지만 그마저도 주목받지 못하면서 시들해지고, 도서관 사서의 추천으로 해양학자의 꿈을 키워보지만 꿈에 그치고, 남친의 희망대로 카페를 함께 운영하지만 자신의 꿈이 아닌지라 시들해지는, 하는 일마다 좌절하고 마는 그녀는 키우던 고양이마저도 사고로 죽게 되자 스스로의 삶을 그만두기로 합니다.
그런데 죽음을 맞았다고 생각한 그녀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도서관입니다. 평소 체스를 함께 두던 사서 엘름 부인이 그녀를 맞이합니다. 그리고 자정에서 다음날로 넘어가는 시간의 경계에 있는 도서관은 그녀가 살아오면서 후회한 일들이 적힌 책과 그녀가 살아보지 못한 무수한 날들에 관한 책들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그녀는 엘름 부인의 권유에 따라 살아보지 못했던 날들을 살아보는데, 그러한 날 역시 의미가 없다고 느끼는 순간 한밤중의 도서관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죽음을 맞은 사람이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는 책의 원조는 단테의 신곡이 아닐까 싶습니다. 단테 엘리기에리가 베를리오스의 안내로 지옥과 연옥, 그리고 와 짝사랑했던 여인 베아트리체의 일내로 천국을 여행하는 것처럼,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는 사서 엘름부인의 안내로 살아보지 못한 삶을 살아보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삶은 땅에 떨어진 씨앗이 싹을 틔워 커다란 나무로 성장해가는 과정을 닮았다고 설명합니다. 나무의 중심이 되는 줄기가 그의 삶이지만 수많은 곁가지들은 그가 선택하지 않았지만 선택할 수도 있었던 또 다른 삶이 되었을 수도 있는 그런 삶이라고 설명합니다. 나아가서는 평행우주 이론에 따라 동시에 또 다른 우주에서 진행되고 있을 수도 있는 또 다른 삶이라는 이론도 제기됩니다.
화자인 로라는 엘름부인의 안내에 따라 후회의 책에 나오는 선택하지 않아서 후회했던 삶들을 살아봅니다. 댄과의 동업, 접었던 수영을 계속해서 올림픽 경기에서 금메달을 따기도 합니다. 하지만 성공이라 할 수도 있었던 삶들에서 큰 의미를 찾지 못하고 지구과학을 연구하여 북극권에 있는 스발바르제도에 가지만 북극곰의 습격을 받는 순간 살아야겠다는 인식을 강하게 느끼게 됩니다. 즉, 죽어야겠다던 생각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삶이 가장 의미 있는 삶이 될 것인가를 찾는 일이 중요하게 되었습니다. "만일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난다면, 나는 거기에 존재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바로 그곳은 어디일까요?
로라는 심야의 도서관에 들어와서 살아보았던 삶들은 결국 자신의 삶이 아니라 남의 삶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찾아 나섭니다. 이에 이르자 엘름부인은 "절대 사소한 것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하지 마라.(279쪽)"라고 조언합니다. 자신의 삶에서 어느 하나 사소한 일은 없습니다. 살아보고 싶은 삶을 고르기 위해 많은 삶을 살아봐야 할 이유가 없다는 사실도 깨닫게 됩니다. 그저 어딘가에 즐길 수 있는 삶이 존재한다는 사실만 포기하지 않으면 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즉,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은 결국 그것에 대한 우리의 인식일 뿐, '중요한 건 무엇을 보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보느냐'라던 소로우의 말을 가져옵니다. 그리고 로라의 원래 삶을 힘들게 만들었던 가장 큰 이유는 '사랑의 부재'였다는 사실도 깨닫게 됩니다. 그녀는 결국 사랑이 가득 찬 삶을 발견하게 됩니다만, 이번에는 그 삶에 머무르는 방법을 찾아가는 일이 수월치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녀는 사랑으로 채워진 그런 삶으로 찾아갈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