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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 가을 2021 ㅣ 소설 보다
구소현.권혜영.이주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9월
평점 :
절판
처음 만난 기획물입니다. 문학과 지성사에서 2018년에 시작한 기획물 <소설보다:>는 그 계절의 소설을 선정하여 문지상의 후보로 삼고 단행본으로 출간해왔다고 합니다. <소설보다: 가을 2024>를 못찾은 까닭에 읽게 되었습니다만, 꿩 대신 닭이 될지 아니면 닭 대신 꿩이 될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이 기획의 특징은 앞서 적은 것처럼 당해 계절에 어울리는 작품을 선정할 뿐 아니라 선정위원이 작가와 나눈 면담의 결과를 수록하여 작품의 배경 등을 소개한다는 점입니다. <소설보다: 가을 2021>은 앞선 계절인 2021년 여름에 선정된 구소현의 「시트론 호러」, 권혜영의 「당신이 기대하는 건 여기에 없다」, 이주란의 「위해」 등, 3편의 단편과 작가 면담이 담겼습니다.
첫 번째 작품은 구소현의 「시트론 호러」입니다. 우선 제목이 무슨 뜻인지 궁금했습니다. 하지만 작가와의 대담에서도 제목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없어 섭섭했습니다. 시트론은 히말라야 주변이 원산지인 귤을 닮은 운향과의 과일이라고 합니다. 향료로 사용되지만 과육이 적고 맛도 없어서 먹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과일이 어떤 의미에서 공포의 대상이 되는지 속 시원하게 설명을 해주었더라면 싶습니다.
이야기 속의 등장인물들은 대학의 소설 창작 동아리의 구성원들과 이들을 뒤쫓는 유령 공선입니다. 유령이 등장하다는 점에서 공포스럽거나 괴기한 것도 아닌 것을 보면 제목의 의미가 금세 와 닿지 않습니다. 공선이 주변의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공선은 영화 등에서 보는 것처럼 누군가의 눈에 띄거나 사물을 움직여서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능력이 없는 유령입니다. 그저 존재하지 않는 존재가 아닐까 싶습니다.
오히려 유령 10년차인 공선이 사물에 닿지 못하고, 직접 만지지 못하기 때문에 오는 우울감은 물론 사물이나 사람이 그녀를 만질 수 없음에서 오는 우울감으로 서럽고 쓸쓸하고 허무했다는 것인데, 과연 유령도 그런 감정을 느끼는지는 역시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 그녀가 창작 동아리 사람들을 쫓아다는 이유는 그녀의 취향에 맞는 이야기를 읽어줄 사람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공선이 소설을 읽는 이유는 상대방의 하자에서 고유한 사랑을 발견하고 고유한 관계를 만들어가고자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녀의 바람은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반전이 없는 이야기를 읽은 입장에서는 ‘그래서 뭔데’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두 번째 작품, 권혜영의 「당신이 기대하는 건 여기에 없다」 역시 극적인 반전이 느껴지지 않는 이야기였습니다. 며칠 전에는 잠을 자다가 갑자기 울리는 화재경보에 깬 적이 있습니다. ‘화재가 발생했으니 집밖으로 대피하라’는 방송도 나왔습니다. 하지만 동네는 고요하기만 했습니다. 이야기 속의 주인공이 화재경보와 함께 계단을 내려가는 것과는 대조적인 상황이었습니다. 화자는 저처럼 오작동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잠을 청하지 않고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합니다. 문제는 그 계단이 얼마나 되는지 끊없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작가는 지상층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분명치 않은 상황을 현대인의 삶을 끝모를 계단의 구렁텅이로 형상화한 것이라고 설명하였습니다.
세 번째 작품, 이주란의 「위해」는 “있는 듯 없는 듯” 살아가는 삶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저 역시 어렸을 때는 남들 앞에 나서서 잰 척을 하지 말라는 분위기에서 컸던 것 같습니다. 주인공 수현은 어릴 적부터 할머니에게 “조용히 살거라”란 말을 들으며 자랐기 때문에 평소 감정을 숨기고, 참고, 체념하는데 익숙해져 있습니다. 물론 말도 잘하고 똑 부러지게 생긴 요즘의 젊은이들과는 천양지차인 삶을 살아온 것입니다. 자기를 잘 보여주는 것이 대세가 된 요즈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