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
존 그린 지음, 김지원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파킨슨 병으로 진단받고 22년을 투병해온 정신의학과 전문의 김혜남 작가의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https://blog.naver.com/neuro412/223663539509>에서 인용한 존 그린의 소설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를 읽었습니다. 미국의 인디애나에 살고 있는 헤이즐 그레이스 랭카스터는 16살에 갑상선암이 폐로 전이되어 4기로 진단되어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17살이 된 그녀는 외부활동에 나서라는 부모의 간절한 요청에 따라 암환우회 모임에 참석하고는 있지만 그리 적극적인 편은 아닙니다.
그러나 어느 날 망막아세포종으로 한 눈을 잃은 아이작의 소개로 참석한 동갑 나이의 어거스터스 워터스를 만나게 됩니다. 그는 골육종으로 다리를 절단한 상황입니다. 매주 수요일 만나는 암환우회는 성공회 교회의 석조 지하실의 십자가 모양이 만나는 장소, 즉 예수의 심장이고 말하는 위치에 둥그렇게 모여앉아 투병과정을 교환하고 있습니다. 서로의 아픔을 달래고 용기를 잃지 않도록 격려하는 그런 모임입니다. 모임을 주관하는 패트릭은 모임을 마칠 때마다 ’최선을 다해서 오늘을 살자‘라는 다짐을 외웁니다.
처음 만나는 날 두 사람은 최애도서를 각각 서로에게 추천합니다. 헤이즐은 <장엄한 고뇌>를, 어거스터스는 <새벽의 대가>였습니다. 두 사람은 피터 반 호텐의 <장엄한 고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데 소설의 주인공 안나는 혈액암으로 투병하면서 암치료를 위한 자선단체가 아니라 암에 걸렸지만 콜레라를 치료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위한 자선단체를 설립합니다. 그녀의 활동은 암에 걸린 주인공의 내면에 있는 인간의 선량함을 일깨우고, 암치료라는 유산을 남겼다는 점에서 독자들의 사랑과 격려를 받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문제는 안나의 엄마가 네덜란드 사람과 결혼을 앞둔 시점에서 안나가 개밀과 소량의 비소를 투약하는 말도 안되는(?) 새로운 치료를 막 받으려는 시점에서 갑자기 ’그런‘이라면서 문장 중간에 이야기가 끝난다는 것입니다. 피터 반 호텐은 소설을 이렇게 마무리한 이유에 대하여 한 마디 언급도 없이 미국에서 네덜란드로 이주하여 잠행에 들어갔습니다.
헤이즐은 <장엄한 고뇌>에 관한 의문을 풀기 위하여 출판사를 통하여 작가에게 질문을 보내지만 답변이 오지 않습니다. 그러던 중에 어거스터스가 보낸 메일에 답장이 오고 두 사람을 네덜란드로 초청하게 됩니다. 호텐는 어거스터스에게 보내온 답장에서 두 사람이 처한 비극적 상황을 위로하면서 셰익스피어가 카시우스의 편지에 쓴 “친애하는 브루투스여, 잘못은 우리 별에 있는 것이 아닐세. / 우리 자신에게 있다네.”라는 말이 틀렸다고 지적합니다. ‘우리의 별에는 잘못이 수도 없이 많습니다.(120쪽)’라고 고쳐 말합니다. 이 대목에서 이야기의 제목이 나온 것으로 보입니다.
후원단체의 도움을 받을 기회를 이미 사용한 헤이즐을 위하여 어거스터스는 자신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헤이즐을 위하여 사용하기로 합니다. 그리하여 헤이즐과 그녀의 어머니 그리고 어거스터스는 네덜란드로 가서 <장엄한 고뇌>의 작가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헤이즐은 자신이 궁금해했던 <장엄한 고뇌>의 등장인물들의 뒷이야기를 작가에게 캐묻습니다. 하지만 작가는 등장인물들은 모두 가공의 인물이고, 그들에겐ㄴ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고 답합니다. 이야기 속의 인물들은 소설이 끝나는 순간 존재하기를 멈춰버리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크니스토프 보르트베르크와 만프레트 타이젠이 <책들의 유령>에서 이야기한 것과는 전혀 다른 생각입니다. <책들의 유령>에서는 모든 책들의 등장인물들은 책들의 세계에서 실존하는 존재이며 현실의 세계로 이동해올 수도 있다고 했던 것입니다. 어거스트스는 실망한 헤이즐에게 자신이 <장엄한 고뇌>의 뒷이야기를 써주겠다고 약속합니다. 호텐의 집에서 나온 두 사람은 안네의 박물관을 찾아갑니다. 그곳에서 안내 프랑크가 남긴 유물들을 살펴보고는 두 사람이 해야 할 일을 정합니다. 세상을 향해 돌진해서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약자를 보호하고 위험에 빠진 사람을 지켜주는 2인조 장애자 자경단원이 되자는 것입니다. 하지만 숙소에 돌아온 뒤에 어거스터스는 자신의 암이 재발하였음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네덜란드에서 돌아온 뒤에 병세가 악화되면서 죽음을 맞게 됩니다. 죽음을 맞기 전에 병세가 약간 회복되는 순간에 어거스터스는 아이작과 헤이즐에게 자신의 장례식에서 낭독해주기를 부탁하고 장례식의 예행연습도 합니다. 어거스터스의 장례식에 반 호텐도 참석합니다. 그 역시 딸이 어린 나이에 암으로 죽어 힘든 시기를 보내야 했던 것입니다. 반 호텐은 헤이즐이 궁금해 하던 것에 대한 답이라면서 옴니스 셀룰라 에 셀룰라(Omis cellula e cellula), 즉 ‘모든 세포는 세포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생명의 윤회를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흔히는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남은 사람이 죽은 이에 대한 추억을 달래가면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암으로 투병하는 남녀 가운데 한쪽이 죽음을 맞았을 때 남아 있는 사람이 받게 될 충격은 정상인 사람이 겪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아직도 ‘잘못이 우리별에 있다’는 화두의 의미가 어디에 있는지 고민을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