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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그네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31
헤르타 뮐러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평점 :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나치 독일이 운영한 수용소에서 벌어진 만행을 고발한 책들은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 소련 역시 수용소를 운영했다는 사실이나 그 수용소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관해서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헤르타 뮐러의 <숨그네>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 소련으로 끌려간 독일계 루마니아 청년이 겪은 일을 적었습니다.
헤르타 뮐러는 지난 봄에 루마니아를 여행하면서 알게 되면서 <저지대>, <그때 이미 여우는 사냥꾼이었다>, <인간은 이 세상의 거대한 꿩이다> 등을 읽게 되었습니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들어선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 독재정권으로부터 탄압받던 독일계 소수민족들의 애환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행과 책을 함께 소개하는 저의 신작의 루마니아 편에서 <그때 이미 여우는 사냥꾼이었다>를 중심으로 헤르타 뮐러의 작품들을 소개하게 되었습니다.
<숨그네>는 루마니아의 소수민족인 독일계 사람들이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 소련의 강제수용소로 끌려가 겪은 끔찍한 삶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루마니아에서 독일로 망명한 헤르타 뮐러가 그녀처럼 독일로 망명한 시인 오스카 파스티오르가 소련의 수용소에서 겪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이 작품을 썼다고 합니다. 소련이 루마니아에 살고 있던 독일 사람들을 끌어가 강제수용소에 수용한 이유는 전후 피폐해진 경제를 회복하기 위하여 강제노동에 투입하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그저 히틀러의 동족이라는 이유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루마니아의 독일계 사람들이 소련의 강제수용소로 이송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도 전인 1945년 1월이라고 합니다. 아마도 전쟁에 필요한 물자를 생산하는데 필요한 노동인력으로 차출한 것 같습니다. 모두에서 비유적으로 언급되는 것으로 보아 화자는 동성애적 성향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가족들과 겉돌던 화자는 소련으로 차출되는 명단에 포함된 것을 두고 오히려 집을 떠날 기회로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수용소에서의 생활을 끔찍했다고 합니다. 화자가 수용되었던 수용소에는 500명에서 800명으로 이루어진 노동대대 5개의 노동대대가 있었다고 합니다. 남자는 물론 여자들도 있어서 최대 4천명이 수용되어 있었다는 것이지요. 수용소에서 이들이 무슨 일을 했는지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서술되어 있는 내용을 종합해보면 석탄으로부터 코크스를 만드는 작업, 코크스로 광석을 제련하는 작업, 그렇게 만든 금속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작업 등이었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작업과정에서 나오는 폐기물을 밖으로 내보내는 작업도 있었던 모양입니다.
당연히 작업은 엄청 고되었던 반면 빵과 수프 등 배급되는 식량을 체력을 유지하기에도 부족하였다고 합니다. 식당의 쓰레기를 뒤져 감자껍질을 먹거나 수용소 밖의 러시아 마을에 구걸을 나가기도 했다는 것 같습니다. 여름철에는 명아주를 걷어다가 삶아먹기도 했습니다. ‘배고픈 천사에 대하여’라는 글은 ‘배고픔은 항상 있다’라고 시작됩니다. 배고픔이라는 상태는 배고픈 천사의 손에서 탄생한다고 하는데 힘든 삽질을 하다보면 맥박이 거칠게 뛰면서 현기증이 일기 마련입니다.
이 대목에서 제목의 의미에 대한 설명이 처음 등장합니다. “배고픈 천사가 내 뺨을 그의 턱 위에 끼워 맞춘다. 그리고 내 숨결을 그네 뛰게 한다. 숨그네(Atemschaukel)는 무엇과도 견줄 수 없을 만큼 심한 착란 상태이다.(97쪽)” 숨그네는 저자가 만들어낸 단어로, 영양부족으로 인하여 현기증이 생겼을 때 일어나는 가쁜 숨결을 마치 그네 뛰듯 오락가락하는 모양새로 비유한 것 같습니다.
화자는 수용소에서 자신이 겪은 일들을 함께 있었던 사람들 하나하나를 통하여 설명하는데 먹는 것과 관련된 일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명을 부지하기 위해서는 먹는 일이 그만큼 중요했을 터입니다. 수용소로 떠날 때 챙겼던 책들이나 입을 것들은 제 역할을 하기 보다는 먹을 것을 얻기 위하여 쓰였다는 것입니다.
수용소의 열악한 상황은 수많은 희생자를 낼 수밖에 없었지만 구체적인 규모는 확인할 수 없었던가 봅니다. 화자가 수용소에 도착해서 4년째 되던 해 3월에 이미 330명이 죽었다고 하는데 아마도 그해 들어서 죽은 숫자라기보다는 수용소가 문을 연 뒤로 4년 동안 희생된 숫자일 수도 있겠습니다.
화자가 5년의 세월을 보낸 수용소는 지금의 우크라이나에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소련의 강제수용소의 실태에 관하여 알려진 바는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