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이 세상의 거대한 꿩이다
헤르타 뮐러 지음, 김인순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때 이미 여우는 사냥꾼이었다><저지대>의 인연이 이어진 책읽기였습니다. <그때 이미 여우는 사냥꾼이었다>가 상당히 난해하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인간은 이 세상의 거대한 꿩이다>는 읽는 호흡이 조금 수월하다는 느낌입니다.


<그때 이미 여우는 사냥꾼이었다>는 전작들처럼 차우셰스쿠 정권의 탄압에 시달리는 루마니아의 독일계 소수민족들의 애환을 그려냈습니다. 그 무렵 루마니아 사람들은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나치에 부역을 했다는 이유로 독일계 주민들을 곱지 않은 시각으로 보고 있었던 것인데, 정부에서도 나서나 탄압의 강도를 높여가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작중 화자인 빈디시가 방앗간의 야간경비원에게 이야기하는 대목입니다. “저들은 닭이고, 달걀이고 닥치는 대로 빼앗아가고 있어. 심지어는 아직 다 자라지도 않은 옥수수까지 빼앗아가는 판이야. 언젠가는 자네 집과 마당까지 빼앗아갈걸.(111)”


독재정권의 횡포에 시달리던 독일계 소수민족은 서구세계로 이주를 원했고, 독일 정부도 이주민 한 명당 많게는 팔천 마르크까지 루마니아 정부에 지불하여 이들의 이주를 지원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루마니아 정부는 지원금을 받아 챙기고도 여권을 내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이 세상의 거대한 꿩이다>는 독일계 소수민족들이 여권을 발급받기 위하여 무슨 짓을 하는지 서술해냈습니다. 작중 화자인 빈디시는 방앗간을 운영하면서 여권발급을 도와준다는 이장에서 밀가루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요구한 밀가루보다 훨씬 많이 날라다 주고 더해서 큰돈까지 건넸지만 여권을 감감 무소식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피가공사는 여권을 수월하게 받아냈다고 합니다. 누구는 되고 누구는 질척거리니 더 안달이 날 수밖에 없었겠습니다.


그러던 빈디시도 드디어 여권을 손에 넣게 됩니다. 딸 아말리에가 나서서 경찰과 신부에게 몸을 허락하는 대가가 있었습니다. 정부와 연관이 있는 직책을 가진 이들은 모두 주민들을 벗겨먹으려 드는 상황이니 주민들은 하나같이 내일이 없는 삶을 버텨내고 있는 셈입니다. 그래서 작가는 인간은 이 세상의 거대한 꿩이다라는 루마니아의 속담을 제목으로 가져왔다고 합니다. 이 말은 이야기의 앞부분에서 야간경비원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마무리하면서 빈디시의 목소리로 두 차례 언급됩니다.


우리나라의 꿩은 날렵하게 잘도 날아갑니다만, 루마니아에서는 날개가 퇴화한 꿩은 적이 나타났을 때 날아가지 못하기 때문에 쉽게 포식자의 먹이로 전락한다고 인식해왔다고 합니다. 오히려 우리나라에서는 쫓기는 꿩이 낙엽더미에 얼굴만 파묻는다고 해서 눈 가리고 아웅하는 방식으로는 목숨을 부지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합니다.


이야기의 여기저기에서 옛날 우리네 삶과 많이 닮은 구석도 있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예를 들면, 찌는 듯한 8월의 무더위 속에 사람들은 커다란 수박을 두레박에 담아 우물 아래로 내려뜨려 시원하게 만들어 먹었다는 것은 제가 어렸을 적에 여름이면 즐겼던 방식이기도 합니다.


모피가공사가 아들을 만나러 가는 장면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기차를 타고 가는데 터널을 여러 개 지나야 한다고 했습니다. 루마니아가 평원인 줄 알았더니 카르파티아 산맥이 나라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어 언덕과 저지대가 번갈아 나타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터널이 많을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승객들이 책을 읽는 모양입니다. “끊임없이 낮과 밤이 바뀌더라니까. 배겨내기 힘들더라고. 모두 자리에 앉아서 창밖은 내다보지도 않아. 밝아지면 책을 읽는데, 무릎에서 책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여간 조심하는 게 아니야.(32-33)” 저도 기차나 차를 타고 여행을 할 때는 책을 읽는데 터널에 들어가면 책에서 눈을 떼고 언제쯤 터널이 끝나는지 앞을 바라보곤 합니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늙은 올빼미는 마을 사람들의 죽음을 암시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고단한 삶을 버텨내지 못하는 사람들은 허망하게 죽음을 맞곤 하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낱낱이 까밝히기가 수월치 않은 이야기인데도 감정을 섞지 않은 담담한 필체로 이야기를 끌어가는 것을 보면서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