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눌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11
헤르만 헤세 지음, 이노은 옮김 / 민음사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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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의 <크눌프>는 제가 활동하고 있는 고전독서회에서 이달에 읽기로 한 책입니다. 아직 토론 주제가 나오지 않은 탓에 주제가 될 만한 대목을 챙겨가면서 읽었습니다. <크눌프>에는 크눌프를 주인공으로 하는 세 편의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세 편의 이야기는 작가가 어떤 순서로 썼는지 모르겠지만, 발표되기로는 1908년에 크눌프에 대한 나의 회상, 1913년에 초봄, 그리고 마지막으로 1914년에 종말을 각각 발표했다고 합니다. 이 책에서는 초봄크눌프에 대한 나의 회상앞에 두었습니다.


종말에서는 크눌프가 방랑길에 오르게 된 이유와 그가 삶을 마무리하는 순간을 담았습니다. 반면에 초봄크눌프에 대한 나의 회상에서는 크눌프의 훌륭한 인간성을 보여주는 내용이라는 생각입니다. 주변의 다양한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배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의범절을 깍듯하게 지키는 신사입니다. 초봄의 도입부에 크눌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지역 어느 도시든 자신을 따뜻하게 맞아줄 곳은 쉽게 찾을 수 있을 터였다. 그 점에 대해 그가 느끼는 자부심은 특별해서, 만일 누구든 그에게 도움을 주게 된다면 그것을 일종의 영예로 여겨야 할 정도였다.(7)”


그의 성품을 제대로 보여준 초봄에서 크눌프는 레히슈테텐에 살고 있는 무두장이 에밀 로트푸스의 집을 찾아갑니다. 병원에서 퇴원하여 잠시 쉴 곳이 필요했던 상황이었습니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저녁에 찾아온 크눌프를 에밀을 쌍수를 들어 환영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에밀의 집에 머물면서 크눌프는 이웃집 하녀가 향수병으로 울적해하는 모습을 발견하고는 이웃마을에 있는 술집으로 데려가 춤을 추기로 합니다. 처음에는 내켜하지 않던 베르벨레도 한바탕 춤을 추고 나서는 엉켜있던 마음이 풀어집니다. 그리고 크눌프에 대한 감정이 생기는 듯합니다. 하지만 크눌프는 거리를 두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역시 자신에게 감정이 생긴 듯한 에밀의 부인이 부담스러워 다음날 떠나기로 다짐합니다.


꽤나 오래되었습니다만, 친구와 애인이 사랑하는 사이가 되면서 친구와 애인을 모두 잃게 된 것을 한탄하는 노래 <핑계>가 유행한 적이 있습니다만, 실제로도 그런 일들이 적지 않게 생기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친구가 크눌프라면 그런 걱정은 붙들어 매둘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 크눌프도 2살짜리 아들은 마음에 걸리는 모양입니다. 재단사 슐로터베크를 만났을 때 아이들과 아내를 건사하는 일이 힘에 벅차다고 하는 말에 아들 앞에 나타날 수 없는 자신의 처지보다는 나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크눌프가 방랑길에 올랐을 때 아이를 낳던 아내가 죽고, 아이는 입양되었기 때문에 아이 앞에 나타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삶의 막바지에 고향을 찾아가는 것도 그 아이를 마지막으로 보기 위한 것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크눌프가 얼마나 자유로운 영혼을 가졌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은 크눌프에 대한 나의 회상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크눌프와 함께 여행을 하던 화자는 친구를 불러 셋이서 멋진 음식점에서 술을 마시게 되었습니다. 식사를 하고 맥주를 마시는데 크눌프는 자기 몫의 맥주를 마시고는 술이 남은 화자를 남기로는 술집을 나서고 말았습니다. 그런 크눌프를 보면서 화자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가 나와 함께 술 한 병을 더 비우려 하지 않은 것은 유감이었지만, 그 뒷모습을 보며 나는 그래도 즐거움과 애정을 느끼면서, 그가 참 멋진 친구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87)”


종말에서 삶을 마무리하는 순간 크눌프는 하느님을 만나게 됩니다. 하느님은 크눌프가 자신을 대신하였음을 이야기합니다. “난 오직 네 모습 그대로의 널 필요로 했었다. 나를 대신하여 넌 방랑하였고, 안주하여 사는 자들에게 늘 자유에 대한 그리움을 조금씩 일깨워주어야만 했다. 나를 대신하여 너는 어리석은 일을 하였고 조롱받았다. 네 안에서 바로 내가 조롱 받았고 또 네 안에서 내가 사랑을 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너는 나의 자녀요, 형제요, 나의 일부이다. 네가 어떤 것을 누리든, 어떤 일로 고통을 받든 내가 항상 너와 함께 했었다.(134)” 크눌프 역시 그렇다고 깨닫고 있었다고 답합니다. 크눌프의 자유의지가 아니었다는 이야기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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