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홀한 사람
아리요시 사와코 지음, 김욱 옮김 / 청미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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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미출판사 블로그의 주인장 청미지기님의 추천으로 읽게 된 책입니다. <황홀한 사람>의 작가 아리요시 사와코의 이름이 낯익은 듯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막상 첫줄을 읽자마자 이미 읽은 내용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가 1995년에 쓴 첫 번째 책 <치매 바로 알면 잡는다>에서 소개한 바 있는 <은색의 황홀>이었습니다. <은색의 황홀>1995년에 가나다라 출판사에서 번역하여 소개한 책이었습니다. 아리요시 사와코가 1972년에 발표한 <恍惚>을 번역하여 소개한 것으로 보입니다. 2006년에는 <꿈꾸는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출판사 지훈에서 다시 소개됐고, 2021년 청미출판사에서 원저의 제목을 살려 <황홀한 사람>으로 다시 번역하여 소개한 것입니다.


오늘날의 일본은 고령인구비중이 가장 높은 나라이며 치매노인에 대한 복지체계가 잘 잡혀 있는 나라입니다만, 작가가 <恍惚>을 발표하던 1972년 무렵 만해도 치매가 나이 들면 그저 생길 수도 있는 것이라고 알고 있었고, 질병이라고는 생각지도 않던 시절입니다. 또한 치매환자에 대한 돌봄도 주로 가족들에게 맡겨져 있는 형편이었습니다. <恍惚>이 발표되면서 치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졌고, 치매노인에 대한 사회적 대응이 체계적으로 갖추어지게 되었다고 평가를 받는다고 합니다.


제가 <치매 바로 알면 잡는다>를 발표하던 1996년 만해도 치매에 대한 우리나라의 인식은 1970년대의 일본 수준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책을 내고는 방송과 대중강연을 통하여 치매가 나이 들면 생기는 망령이 아니라 질병임을 강조하고 진단, 치료, 간병 등에 대한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방송과 대중강연을 통하여 설파하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저는 <치매 바로 알면 잡는다>에서 <은색의 황홀>을 소개하면서 치매에 걸린 시게조 할아버지의 대표적인 치매증상, 식탐과 배회 증상에 대하여 설명하였고, 치매에 걸린 시아버지 시게조의 간병을 전담해야만 하는 아키코처럼 치매환자의 주간병인의 어려움을 서로 도와 나누어야 한다는 말씀을 드렸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1996년에 발표한 <치매 바로 알면 잡는다>2003년에는 <치매 나도 고칠 수 있다>, 2017년에는 <치매 당신도 고칠 수 있다>에 이어 2022년에는 <치매 고칠 수 있다>에 이르기까지 4반세기에 걸쳐 세 차례의 개정작업을 해왔습니다. 처음에는 치매를 가장 많이 일으키는 알츠하이머병의 경우는 특별한 치료법이 없어 간병에 주안점을 맞추고 잃어가는 기억력을 보완하는 방법을 소개하는데 그쳤지만, 증상이 악화되는 것을 완화시키는 약제가 개발되면서 치매 치료에 전환을 맞게 된 점, 그리고 치매의 원인이 조금씩 밝혀지면서 치료와 병행하여 예방할 수 있는 방안들을 소개하게 된 것입니다.


<황홀한 사람>에서는 치매환자는 가정 혹은 사회에 짐이 되는 존재로만 그려지고 있습니다만, 영국의 치매환자 웬디 미첼은 <내가 알던 그 사람>, <치매의 거의 모든 기록>, <생의 마지막 당부> 등에 이르기까지 치매로 인한 장애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치매 환자를 치료와 간병 중심의 책에 더하여 치매환자 스스로 치매로 인하여 제약받고 있는 삶을 어떻게 극복해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책들도 소개되고 있는 것입니다.


호주 내무부의 제1차관보를 역임하던 중 치매증상이 나타나면서 퇴임하여 치매치료에 전념하던 크리스틴 브라이든의 투병기 <치매와 함께 떠나는 여행>은 우리나라에서도 소개되어 있습니다만, 그녀의 두 번째 책은 아직 우리나라에 소개되지 않고 있어 아쉽습니다. 우리나라의 치매환자도 적극적인 투병 과정을 책으로 소개하게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황홀한 사람>은 지금으로부터 반세기 전의 사연이라서 요양원 혹은 요양병원에서 치료와 간병을 맡길 수 있는 요즈음의 분위기와는 많이 차이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요즘에도 아키코와 같이 치매에 걸린 시아버지의 간병을 전담하는 분들이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런 분들이 간병에서 오는 피로와 좌절을 겪지 않도록 가족은 물론 사회에서도 책임을 나누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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