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인 이야기 7 - 악명높은 황제들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7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199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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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7은 서기 14년부터 37년까지 로마제국의 황제였던 티베리우스, 서기37년부터 41년까지의 칼리굴라 황제, 41년부터 54년까지의 클라우디우스 황제, 54년부터 68년까지의 네로 황제에 이르기까지 4명의 황제가 다스리던 로마제국에서 일어난 일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사실은 로마인 이야기8에 등장하는 7명의 황제들 역시 황제의 제목이라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형편이 없었던 것과 비교하면 그래도 나은 편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여기에서 다룬 4명의 황제들은 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독특한 면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로마인 이야기7은 카프리 섬에서 시작합니다. 로마제국 시절부터 나폴리만의 진주라는 별명을 가질만큼 아름다운 섬입니다. 로마제국 시절에는 섬 전체가 황제의 사유지로 일반인은 입도를 할 수 없었습니다.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나폴리에게 이스키아 섬을 주고 얻어 별장을 지었지만 나폴리에 오면서 잠깐 들른 것이 마지막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카프리 섬을 제대로 사용한 것은 아우구스투스 황제를 이은 티베리우스 황제였습니다. 섬에 별장을 짓고 서기 27년부터 죽을 때까지 카프리 섬에 머물면서 정사를 보았다고 합니다. 2018년에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카프리 섬도 방문했지만, 그때는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별장도 티베리우스 황제의 별장에 관한 이야기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아무래도 카프리 섬에 다시 가봐야지 싶습니다.


사실 티베리우스는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그렇게도 목을 매던 혈족이 아니었습니다. 일찍이 외동딸 율리아가 낳은 가이우스와 루키우스를 양자로 삼아 황제위를 물려줄 요량이었지만 각각 23세와 18세에 요절하고 말았습니다. 결국 아내가 전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티베리우스가 55세임에도 불구하고 후계로 삼아야 했습니다. 단 조건을 붙였는데 아우구스투스의 누나 옥타비아가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와 결혼하여 낳은 딸 안토니아의 아들인 게르마니쿠스를 양자로 삼아 후계자로 삼으라는 조건을 달았던 것입니다. 티베리우스는 게르마니쿠스가 황제가 될 때까지 징검다리 역할을 맡긴 셈입니다. 당시 라인강 방위사령관을 맡고 있던 게르마니쿠스는 28세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티베리우스는 명문귀족인 클라우디우스 가문 출신이었습니다. 로마제국을 다스리는데 있어 철학이 분명했고, 해야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잘 구분하였던 것입니다. 국가의 재정을 안정시키기 위하여 신규공사의 발주를 금하였고, 라인 강의 방어선을 엘베 강으로 확대하지 않고 라인 강으로 유지한 것 등입니다. 한편 게르마니쿠스는 동방의 파르티아와의 갈등을 풀기 위하여 게르마니아로부터 오리엔트로 파병되는데, 시리아 속주의 피소총독과 갈등을 빚게 되고 마침 사막을 여행하고 돌아와서 열병에 걸려 죽음을 맞게 됩니다. 아마도 말라리아와 같은 감염병이 문제가 되었을 것이나 당대에는 피소총독에 의해 독살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난무했던가 봅니다. 결국 피소총독도 로마로 소환되어 조사를 받는 가운데 자살을 하고 말았습니다. 결국 티베리우스는 카프리 섬에 은둔하여 죽을 때까지 원격통치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점 등이 그의 악명을 높였던 듯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대에는 로마가 가졌던 가장 훌륭한 황제 가운데 한 사람으로 평가된다고 합니다.


게르마니쿠스가 죽은 뒤에 티베리우스의 뒤를 이을만한 사람은 게르마니쿠스의 동생 클라우디우스, 게르마니쿠스의 아들 칼리굴라, 그리고 티베리우스의 직계 손자인 게멜리우스 였지만, 아우구스투스의 뜻에 따라 칼리굴라가 후계가가 되었던 것입니다. 아우구수투스의 피를 제대로 받은 칼리굴라는 촉망되는 황제였는데, 젊은 혈기로 흥청망청하다가 근위대의 대대장 카시우스 카이레아에게 살해되고 말았습니다. 결국 게르마니쿠스의 동생 클라우디우스가 황제 위를 이어받게 되었지만, 소아마비를 앓아 신체적 결함을 가지고 있었고, 역사연구에 심취한 관계로 황제수업을 제대로 받지 못한 결점도 있었습니다. 해방노예 출신의 비서관들을 중용하여 국사를 처리하게 했던 것입니다. 방종한 생활을 하던 아내 메살리나를 죽음으로 몰아넣고 재혼한 아그리피나는 게르마니쿠스와 아그리피나 사이에 태어난 딸 아그리피나였습니다. 결국 그녀가 독버섯을 먹여 살해당했다는 의혹이 남아있습니다.


클라우디우스 황제가 죽음을 맞고서 네로는 근위대 병영으로 가서 근위병들로부터 임페라토르라는 환호를 받는 것으로 황제위를 취득했습니다.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유언장은 공개되지 않았는데 네로를 후계자로 삼는다고 적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네로 황제의 치세에 대한 여러 이야기들이 전해오고 있어 여기에서는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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