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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엄마 ㅣ 오늘의 젊은 작가 25
강진아 지음 / 민음사 / 2020년 3월
평점 :
아내가 친구로부터 받은 강진아 작가의 소설 <오늘의 엄마>를 읽었습니다. 책을 읽는 것도 인연에 따라가는 듯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몸이 아프다보니 가족들을 비롯하여 주변에 있는 분들의 생각에도 관심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오늘의 엄마>는 상실의 고통을 기록한 이야기입니다. 눈 내린 위에 서리 내린다고, 힘든 일은 왜 쌍으로 붙어다니는 지 모르겠습니다. <오늘의 엄마>는 일찍이 남편과 사별하고 어린 자매를 키워낸 엄마가 살만하니 폐암이 들어선 것입니다. 대학교수인 언니 정미와 프리랜서 삽화가인 동생 정아가 함께 어머니를 간병을 맡게 됩니다.
특히 동생 정아는 3년 전에 갑작스러운 사고로 애인과 사별하고 여전히 상실의 시간 속을 헤매고 있는 상황에서 어머니의 죽음이 예고된 셈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일은 남아있는 사람에게 커다란 정신적 충격입니다. 특히 사고와 급성 중증질환으로 갑자기 사별하게 되는 경우에는 상실감이 클 수밖에 없고, 때로는 그 아픔을 견디지 못하고 세상을 하직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반면에 암 질환처럼 일정 확진을 받고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일정한 과정을 거치기 마련이고, 남아있을 사람들 역시 이별의 고통을 삭이는 여유가 있습니다. 종양내과를 담당하셨던 교수님은 암으로 죽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입버릇처럼 하셨던 것을 기억합니다.
말기의 암 환자의 간병은 만만한 일이 아닙니다. 1차 의료기관에서 암이 의심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면 일단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요즈음에는 누리망에서 의료와 관련된 정보를 많이 얻을 수가 있습니다만, 그런 정보가 얼마나 정확한가를 판단해서 도움을 줄 수 있는 누군가가 없는 경우에는 그저 막막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옛말에도 ‘돈은 숨기고 병은 소문을 내라’고 했습니다.
수전 손택은 <은유로서의 질병>에서 결핵이나 에이즈와 같은 전염병 환자를 마뜩치 않게 바라보는 시선에 대하여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혹자는 자신의 병을 숨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한 자신의 상병을 주변에서 어떻게 볼까 하는 의구심 때문에 감추는 경향이 있지만 결국은 투병 중임을 알리는 것이 다양한 관점에서 좋을 수가 있다고 했습니다. 예를 들면 치료와 관련된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은 투병과정에 도움이 될 수 있으며,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작고 큰 사회에 여전히 속해있다는 소속감을 느낄 수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고 합니다.
사실 환자의 병명을 가족이 먼저 알게 되는 경우, 환자에게 어떻게 알리는가도 큰 문제입니다. 저도 그런 역할을 맡은 적이 있습니다만, 환자가 병에 대한 인식이 충분하게 치료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는 성격인 경우에는 있는 그대로 설명을 해주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지만 쉽게 좌절하고 투병에 힘을 내기 어려운 성격인 경우에는 병명을 감추고 치료 방향에 대하여는 우회적으로 설명을 하는 편이 나을 수도 있습니다. 자신이 앓고 있는 치명적인 질병의 정체를 알게 되는 순간 삶을 포기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간병이 길어지면서 각자 맡은 일의 과중을 따지게 되는 것이 갈등을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만, 두 자매가 어머니의 간병을 나누어 맡는 것도 좋아보였습니다. ‘긴병에 효자 없다’는 우리네 옛말도 있습니다만, 서로 분담하여 어려움을 슬기롭게 이겨나가는 현명함이 필요합니다. 두 자매의 간절함이 통했던지 여명이 3~4개월 남았을 것이라는 어머니는 1년을 넘게 삶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두 자매는 어머니와의 긴 이별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입원이 길어지면서 환자에게 생기는 변화를 실감나게 적었습니다. “어설픈 치장이 끝나면 엄마는 다시 잔다. 누적된 피로 때문인지 병원의 음기 때문인지 엄마는 부쩍 잠이 늘었다.(63쪽)” “없던 병이 생겨서 환자가 된 게 아니다. 낯선 사람들이 자신을 들여다보고 만지고 옮기는 것에, 다시 말해 종양 자체로 다루는 것에 익숙해졌다는 뜻이다. 링거 줄을 정리한다고 간호사가 앞섶을 펼쳐 젖이 다 드러나려고 하는데도 당황하지 않는다. 놀란 건 정아뿐이다. 다급하게 흘러내린 환자복을 끌어 올리며 보니 엄마의 눈은 긴장감이 없이 풀려 있다.(8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