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박물관 - 장소, 사람 또는 세상을 떠날 때 우리가 남기는 것은
스벤 슈틸리히 지음, 김희상 옮김 / 청미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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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났던 곳에서 시작해서 성장하면서 머물던 장소에 대한 기억을 정리해보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정기호교수님의 <경관기행>을 읽고서 시작한 일인데 생각보다는 지지부진합니다. 어느 책에서 언급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스벤 슈틸리히의 <존재의 박물관>을 읽게 된 것은 아마도 저의 경관기행에 참고가 될 듯하여 읽게 된 것 같습니다.


장소, 사람 또는 세상을 떠날 때 우리가 남기는 것은이라는 부제는 라는 존재가 세상에 태어난 뒤로 다양한 관계를 통하여 무엇을 남기게 되는가를 살펴보았다는 이야기임을 짐작하게 합니다. 흔히 인지기능의 손상 여부를 시간(time), 사람(person), 장소(place)에 대한 기억이 온전한지 확인하게 됩니다만, <존재의 박물관>에서는 역순으로 장소-사람-시간의 순서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기억이 예전 같지 않아서 3천권 가까이 되는 독후감을 찾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만, 세상을 두루 여행하고 싶었던 분이 죽은 뒤에 자신의 유골을 세계 곳곳에 보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굳이 그렇게까지 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살아가면서 지나친 장소나 만났던 사람에게 유무형의 흔적을 남길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존재의 박물관>의 저자 역시 사람이 살면서 남기는 생물학적 흔적을, 정신적인 흔적을, 문화적인 흔적을, 구체적인 흔적을 찾아 여행해보는 것이 이 책의 목표라고 적었습니다. 그 여행은 곧 역사와 미래로의 여행이 될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그러기 위하여 손이 닿는 모든 원전에서 지식을 끌어 모으려 노력했다고 하는데, 정말 다양한 자료들을 인용하고 있어 같은 맥락의 글을 쓸 때 참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미 읽은 책들도 적지는 않습니다만 정말 많은 책들을 읽어보게 될 것 같습니다. 물론 아직우리 나라에 소개되지 않아서 읽어볼 수 없는 책들도 적지 않은 듯합니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깜짝 놀라게 되는 순간들이 이어졌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 몸에서 떨어져 나오는 피부 세포들이 초당 30 의 속도로 공기의 흐름을 타고 흩어진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게 떨어져 나온 나의 흔적은 공기의 흐름을 타고 혹은 빗물에 씻겨 세상을 여행하게 된다고 생각하면 지구 곳곳에 나의 흔적이 흩어져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그렇게 흩어진 나의 흔적은 분자 수준으로 분해되어 타인의 몸을 만드는 요소로 재활용될 것이기 때문에 영원무궁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파리스의 심판의 결과로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나를 꼬여내는 바람에 트로이 전쟁이 일어나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알고 있습니다만, 파리스가 헬레나를 선택하기 전에 산의 요정 오이노네와 사랑에 빠졌다는 이야기는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헬레나로 인해 파리스로부터 버림을 받은 오이노네가 당신이 내 이름을 너도밤나무에 새겨주었군요. 낫으로 깎아 오이노네라고 선명하게 읽을 수 이네. 나무를 자라면서 내 이름도 높이 오르리라고 노래했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서로에게 남기는 것은 유형적인 것도 있지만 기억이라는 무형의 것도 있습니다. 특히 남녀가 만나 사랑하다 헤어지면 그렇게 남긴 것들이 어떻게 되는지에 관한 이야기도 흥미롭습니다. 특히 기억에 관한 이야기들이 많아서 기억을 화두로 삼고 있는 저에게도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기억은 우리 인생과 정체성의 토대를 이룬다. 우리가 무엇을 체험했는지, 이 체험을 바탕으로 우리가 미래에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정해주는 것은 기억이다라는 대목은 심리학자 줄리아 쇼가 쓴 <기만적인 기억>에 나온다고 합니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도 신박한 대목을 많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이 연설을 할 때 자신을 타나토이(Thanatoi)라고 했다는데 죽을 수밖에 없는 자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불멸의 영생을 자랑하는 신들과는 달리 죽을 수밖에 없는 자신의 처지를 겸허히 새긴다는 의미를 담았다는군요. 로베르트 제탈러의 <들판>이나 세실리아 아헌의 <PS, 아이 러브 유>, 주제 사마라구의 <죽음의 중지> 등도 읽어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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