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잃기 안내서 - 더 멀리 나아가려는 당신을 위한 지도들
리베카 솔닛 지음, 김명남 옮김 / 반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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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별렀던 리베카 솔닛의 <길 잃기 안내서>를 읽었습니다. ‘더 멀리 나아가려는 당신을 위한 지도들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는 이 책에서 솔닛은 개인사를 비롯하여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경계를 허물고 나아가려면 길을 잃을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는 점을 일깨웁니다. 생각해보면 우물 안의 개구리는 길을 잃을 염려가 없습니다. 다만 세상이 넓은 것을 모를 따름입니다.


개인적으로는 틀 안에 갇혀 마음을 다치는 쪽보다는 새로운 곳으로 향하는 쪽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것은 없습니다만, 새로운 것에 익숙해져 안주하기보다는 그것조차도 새롭게 하려다보니 갈등을 유발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솔닛이 들려주는 길을 잃는 상황에 대비하여 길을 찾아낼 수 있는 방법을 익혀두면 좋을 것 같습니다. 길 잃기는 두렵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새로운 무언가를 만나는 기대감에 떨기도 하는 순간입니다.


저자는 도시에서 길을 찾지 못하는 것은 흥미로운 면이라고는 없는 따분한 일이다. 그 일에 필요한 것은 무지뿐, 그 이상 아무 것도 필요 없다. () 그러나 숲에서 길을 잃을 때처럼 도시에서 길을 잃는 것에는 상당히 다른 훈련이 필요하다.’라는 발터 벤야민의 말을 인용합니다. 물론 숲에서 길을 잃었을 때와 도시에서 길을 잃었을 때 바른 길을 찾아가는 방법은 크게 다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방향감각을 키우는 일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녀의 생각에서 많이 배우는 책읽기였지만,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예를 들면, 어린 시절의 기억은 세월이 흐르면서 대부분 희미해졌고, 하나의 글로 적을 때마다 그 기억은 버려지는 셈이었다고 합니다. 글로 적는 순간 기억은 그림자처럼 흐릿한 추억으로서의 생을 마감하고 활자로 고정되면서 더 이상 내 것이 아니게 된다고 했습니다. 물론 어렸을 적의 기억은 세월이 흐르면서 희미해지는데 글로 적기 위하여든 아니든 그것을 떠올리는 순간 기억이 강화되고, 특히 글로 남기게 되면 훗날 읽어서 흐려진 기억을 보완할 수 있습니다. 기억을 고정시키는 방법인데 문제는 기억이 늘 정확한 것은 아니라서 끄집어내면서 기억이 왜곡되기도 한다는 점입니다.


저자의 다른 작품 <걷기의 인문학>을 보면 저자가 샌프란시스코에 살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길잃기 안내서>에서도 같은 생각이 드는 대목이 있습니다. ‘나는 가끔 샌프란시스코의 집은 겨울 야영지일 뿐이고 진짜 내 집은 일 년에 두어 차례 서부를 한 바퀴 순회하는 여정 그 자체이며 나는 일종의 유목민이라고 생각했다라는 대목입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노마드라는 용어에 대한 제대로 된 해석에 공감합니다. 진정한 유목민은 고정된 여정을 따라 이동하면서 장소들과 안정된 관계를 맺는 것이지 요즘 이해하는 것처럼 정처 없이 떠돌거나 종교적 부랑자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두 개의 화살촉이라는 제목의 글에서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영화 <현기증>과 원작인 프랑스 소설, 그리고 솔닛이 쓴 슬립이라는 이야기가 등장하고, 제가 관심을 두고 있는 오이디푸스 신화에 등장하는 테이레시아스의 실체에 관한 이야기도 나옵니다. 테이레시아스에 관한 이야기는 <세 길이 만나는 곳>에도 등장합니다만. 솔닛이 전한 이야기는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보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들은 중의적인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길 잃기 안내서>를 읽다보면 솔닛의 글이 자유분방하다고 느끼게 됩니다. 이야기는 분명 다양한 공간에서 길을 잃는 것과 관련된 이야기에서 출발했는데, 어느새 잃는다는 것으로 확대됩니다. 상실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들은 길 잃기와는 달리 슬픈 감정이 곁들여지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네 개나 되는 먼 곳의 푸름이라는 글 제목이 사실을 길을 잃었을 때 길잡이가 되는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주목해서 읽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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