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의 선물 - 제1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199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마르셀 푸르스트는 홍차에 적신 마들렌 과자를 먹으면서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 잃어버린 시간들을 되찾게 됩니다. 미각이 오래된 기억을 소환하는 촉매제가 되는 셈입니다. 제 경우에는 폴 모리아 악당의 <Song for Anna>를 들으면 언제나 대학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게 되니 청각이 기억을 소환하는 촉매제임 셈입니다. <새의 선물>은 서른여덟의 중년 여성, 진희는 연인과 점심을 먹다가 쥐와 눈이 마주치자 열두살 적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흘러나옵니다. 그러니까 시각이 기억을 소환하는 촉매제입니다.


쥐와 눈이 마주치면서 혐오감과 증오, 그리고 심지어는 사랑에 이르기까지 모든 극복의 대상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언제나 그 대상을 똑바로 바라보곤 하는오랜 습관이 있다고 고백합니다. 또한 내가 내 삶과의 거리를 유지하는 것은 나 자신을 보여지는 나바라보는 나를 분리시키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나는 언제나 나를 본다.‘보여지는 나에게 내 삶을 이끌어가게 하면서 바라보는 나가 그것을 보도록 만든다. 이렇게 내 내면 속에 있는 또다른 나로 하여금 나 자신의 일거일동을 낱낱이 지켜보게 하는 것은 20년도 훨씬 더 된 습관이다.(12)”라고 적었습니다. 두 개의 나를 병립시키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제 경우는 하나의 내가 내 삶을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주인공이 일찍부터 삶의 이면을 보기 시작한데는 일찍 어머니가 죽고 아버지로부터 떨어져 외할머니 슬하에서 자랐던 것이 원인이었습니다. 저 역시 어렸을 적에 친가와 외가를 오가면서 생활한 적이 있습니다만, 어린 마음에도 눈치를 보았던 것 같습니다. 주인공 역시 내 삶이 시작부터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고 설명합니다. 눈치가 빨라지고 자신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상대를 곤경에 빠트리기를 서슴치 않는 모습을 보면서 열두살짜리가 그렇게 심한 짓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사건, 특히 이승복 소년이 집에 찾아온 공비(共匪)에게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말했다가 죽음을 맞은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은 1968년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야기 후반에 등장하는 아폴로 11호가 달착륙에 성공한 것은 1969년이었습니다. 그런데 영화 <도라 도라 도라>가 개봉한 것은 1970년이었고 지방 상영은 그보다 더 늦었을 것 같습니다. 주인공이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은 산성이 있고 읍내에서도 조금 떨어진 곳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읍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나라에 있는 읍성으로는 고창읍성, 해미읍성 그리고 낙안읍성이 있는데 성안에 주민이 살고 있는 곳은 낙안읍성이 유일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작가의 고향이 고창인 점을 고려해보면 고창읍성일 수도 있겠습니다.


1969년에 화자는 초등학교 5학년이었는데 아마도 은희경 작가가 그해 초등학교 5학년이었지 싶습니다. 그렇다면 <새의 선물>은 작가의 자전적 소설일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그해 저는 중학교 3학년이었기 때문에 이야기 속에 나오는 사건 사고, 혹은 영화, 노래, 심지어는 국민교육헌장에 이르기까지 제가 겪었던 일들이 고스라니 떠오르게 되니 이야기 속에 쉽게 빠져 들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야기의 말미에 잊고 살던 아버지가 찾아와 주인공을 데리고 가는데서 이야기가 끝이 납니다. 작가는 후기에서 세상이 내게 훨씬 단순하고 그리고 너그러웠다면 나는 소설을 쓰지 않았을 것이고, 아마 인생에 대해서 알려고도 하지 않았을 것 같다(390)”라고 적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을 살아내면서 세상의 복잡한 내막을 소상히 적어낸 것을 보면 아버지와 함께 살기 시작한 이야기도 만만치가 않았을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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