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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만화 ㅣ 이탈로 칼비노 전집 6
이탈로 칼비노 지음, 이현경 옮김 / 민음사 / 201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왜 고전을 읽는가>를 읽고서 감명을 받은 까닭에 이탈로 칼비노의 다른 책들도 찾아 읽게 되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도시들>까지도 감동이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반쪼가리 자작>, <존재하지 않는 기사> 등을 읽으면서, 특이한 인물들의 기이한 행적들이 현실감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읽은 <어느 겨울밤 한 여행자가>의 경우는 읽는 내내 뜬구름 잡듯 둥둥 떠다니는 느낌이었습니다. 이탈로 칼비노의 작품을 더 읽어보아야 하나 싶었던 것인데, 어느 책에선가 읽은 기억이 남아 있어서 <우주만화>를 읽게 되었습니다. 결론을 먼저 말씀드리면 지금까지 읽은 이탈로 칼비노의 작품은 그래도 이해가 가는 구석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주만화>는 하나의 흐름으로 읽힙니다만, 사실은 12편의 단편을 엮은 단편집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재와 구조, 문체 등이 유사한 까닭에 한 작품처럼 읽히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열두 편의 단편은 달에 관한 이야기가 네 편, 지구에 관한 이야기가 네 편, 태양, 별, 은하계에 관한 이야기가 네 편입니다. 이야기 속에는 우주의 탄생에 관한 이야기, 지구상에 등장한 생물체의 진화에 관한 이야기도 등장하기 때문인지 칼 세이건과 앤 드루얀이 같이 쓴 <잊혀진 조상의 그림자>를 연상케 했습니다.
칼비노는 인류의 과학적 성과를 집대성하여 이야기를 꾸몄습니다. 광년이라는 단편에서 1억 광년이 떨어지 별에서 ‘당신을 보았다’라는 전언을 받게 되었다는 내용을 다룬 것을 보면, 현재까지가 아니라 미래의 어느 순간까지 확장하고 있습니다. 칼비노는 과학 서적을 읽으면서 떠오르는 인상을 적어두었다가 <우주만화>의 이야기에 녹여냈다고 합니다. 과학을 다루면서도 전혀 과학적이지 못한 듯한 인상이 남는 것은 착상의 황당함 때문일 듯합니다. 지금은 멀리 떨어져 있는 달이 사다리를 펼치면 올라갈 수 있을 정도로 지구와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달이 지구로부터 떨어져 나간 것이라는 가설을 인용한 것 같습니다.
태양계의 행성이 운행하는 것을 보면서 행성의 한 지점을 표시하는 기호를 썼다고 하는 것을 보면, 기호학적 접근을 시도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가 하면 주인공 크프우프크 사랑하는 아일을 쫓아 사막으로 들어가는 장면은 <어린 왕자>의 사막 장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리고 보면 칼비노는 다양한 소재를 자신의 양식에 따라 가공해내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속담도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새로이 표현하는 느낌입니다. 예를 들면 ‘비늘 사이에 벼룩이 있는 물고기나 진흙에서 배로 헤엄치는 거다!’라는 표현은 ‘옴 걸린 물고기가 긁는다’와 같은 표현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네 속담으로는 ‘목마른 자가 샘을 판다’와 같은 맥락일 것 같습니다.
그런가 하면 태양계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수성, 금성, 지구 화성 가운데 어느 행성에서 대기가 형성될 것인지를 예측해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영국 지배 아래 있는 인도 반도의 인구 증가 지수를 계산해내거나 아스널과 레알마드리드 사이의 축구시합의 결과를 예측해보라고도 합니다. 그런 작업이 가능할지는 모르겠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적는 이유는 이 단편집에 나오는 이야기들이 생물학과 고생물학, 물리학과 천체물리학 등 다양한 과학분야에서 오랜 연구 끝에 밝혀낸 사실들을 인용하면서도 이 책은 전혀 과학서적 같은 느낌이 들지 않고 오히려 만화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그래서 <우주만화>라는 제목을 정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결국 이 책은 환상소설의 범주에 들어가는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