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인 이야기 3 - 승자의 혼미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3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199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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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 제3, 승자의 혼미>는 지중해의 패권을 놓고 3차례에 걸쳐 벌인 카르타고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시점으로부터 카이사르가 등장하기 전까지의 시기의 로마 공화정을 변화를 담았습니다. 작가는 이 시기를 그라쿠스 형제 시대(기원전 133기원전 120)와 마리우스와 술라의 시대(기원전 120기원전 78) 폼페이우스 시대(기원전 78기원전 63) 등 제3장으로 나누었습니다.


카르타고는 한니발이라는 걸출한 장군이 로마의 본토를 유린하는 동안 본국의 내분에 휩싸여 지원을 제대로 해주지 못하고 멸망을 자초하고 말았습니다. 카르타고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로마 역시 승리의 달콤함에 취한 듯 내분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어쩌면 승자의 저주라는 필연적인 변화인지도 모릅니다. 리비우스가 <로마사>에 기록한 한니발의 다음과 같은 말이 예언처럼 되고 말았습니다. “강대국이라 할지라도 언제까지나 계속 평화로울 수는 없다. 국외에는 적이 없다 해도 국내에 적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외부의 적이 접근하지 못하는 건강한 육체라도, 그 육체의 성장을 따라가지 못해 생기는 내장질환에 시달리는 경우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9)”


로마인 이야기 제1권에서는 로마왕국이 어떻게 성립하여 공화정으로 발전하게 되었는가를 다루었고, 2권에서는 로마공화정이 어떻게 작동하여 카르타고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는가를 다루었다면, 3권에서는 완벽하게 작동했던 공화정 체제가 어떤 문제를 안게 되었는가를 설명합니다.


귀족들이 중심이 된 원로원과 시민들이 중심이 된 민회가 상호 협력하여 외부 세력에 대항하여 카르타고를 필두로 한 외부세력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습니다. 두 세력의 균형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정치체계를 보완해온 결과입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뒤 왕정시대에 왕의 자문기관으로 시작했던 원로원의 위상이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더하여 전쟁에서의 승리가 거듭되면서 원로원이 귀족계급과 시민계급 사이의 괴리가 심각해져 갔습니다. 로마 공화정이 발전해나갈 수 있었던 동력은 사회체제에서 드러나는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한 움직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포에니전쟁 이후에 심화된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원로원과 민회의 기울어진 힘의 균형을 바로잡으려 한 그라쿠스 형제가 등장한 것입니다.


카르타고를 말살시키는 현장에서 스키피오 아밀리아누스가 폴리비우스에게 지금 우리는 지난날 영화를 자랑했던 제국의 멸망이라는 위대한 순간을 목격하고 있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내 가슴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승리의 기쁨이 아니라, 언젠가는 우리 로마도 이와 똑같은 순간을 맞이할 거라는 비애감이라네라고 말하는 것을 마음에 새겨두었던 것은 아닐까요?


티베리우스 그라쿠스가 이 말을 들은 것은 16살 때였습니다. 평민출신으로 집정관을 지냄으로써 원로원이 일원이 된 평민귀족 가문의 떠오르는 별이었습니다. 원로원을 구성하는 귀족계급들은 전쟁의 승리를 통하여 노예와 토지를 늘려가게 되었지만 시민계급은 점차 재산을 잃고 무산계급으로 전락해가는 사회적 불균형을 바로 잡기 위해 그라쿠스는 토지개혁을 통하여 시민계급을 살리고자 하였지만, 원로원의 반발에 부딪혀 죽음을 맞았고, 티베리우스의 동생 가이우스 역시 같은 길을 걷고 말았습니다. 그라쿠스 형제의 개혁이 실패로 돌아간 이후에 들어선 마리우스와 술라 그리고 폼페이우스 등은 원로원을 장악하면서 독재관이 된 술라는 300명으로 구성된 원로원의 정원을 600명으로 확대하여 새로 부상하는 기사계급이라 할 수 있는 경제인들을 국정에 참여시키려 하였습니다. 이처럼 술라는 로마공화정의 다양한 분야에서 개혁을 이루어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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