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미엘의 일기
앙리 프레데릭 아미엘 지음, 김욱 옮김 / 바움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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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앙리 프레데릭 아미엘은 1821927일 주네브에서 출생한 스위스의 프랑스계 문학가이자 철학자입니다. 38세 편지를 통하여 만나게 된 여성과 애정을 나누게 되었지만, 50세가 되던 해에 헤어진 뒤로는 독신으로 지냈다고 합니다. 기관지염을 오래 앓아 병약했으며 고요함과 고독을 즐기는 성격이었습니다. 26살에 쓰기 시작한 일기는 60세에 사망할 때까지 이어져 17천 여 쪽에 이른다고 합니다.


그는 일기에 대하여, ‘남에게 읽히기 위해 쓴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을 진정시키고 추억의 실마리로 삼기 위해 쓴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의 일기에는 인간과 역사, 구원과 심판이라는 전통적인 화두에 대한 처절한 고민과 내면의 갈등에 마주하는 생각을 담았습니다. 또한 19세기 중후반의 사회, 문명, 풍속에 대한 관찰과 당대의 작가들 혹은 철학자들에 관한 비평도 담겨 있습니다.


<아미엘의 일기>에서는 그가 쓴 방대한 분량의 일기 가운데 17개의 주제에 해당하는 글들을 뽑아 편집한 일기모음집입니다. 그의 치열했던 정신세계와 가치관, 그 자신과 주변 사람들이 겪는 일상의 변화를 엿볼 수 있으며, 인간, 사랑, 고독, 비애, 행복, 죽음에 관한 그의 깊이 있는 사고를 읽을 수 있습니다. 특히 자신을 추슬리는 듯한 대목을 자주 만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아무런 계획 없이 세월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 무언가 다시 시작해야 한다.(55)”와 같은 대목입니다.


그의 글을 읽다보면 의식의 흐름을 그대로 옮겼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글을 따라가다 보면 전후가 일치하는지 의문이 드는 대목도 없지 않습니다. 어쩌면 문맥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자신을 무리하게 학대하지 말자. 네 속의 감정이 동요되는 대로 움직이자. 그것이 너의 인생이며, 네가 누릴 본성이다. 너보다 현명한 자들이 너의 고뇌를 대신할 것이다. 본능과 의지를 믿지 말라. 본능은 마녀이며, 의지는 폭군이다. 너의 순각적인 감동이 너를 삶의 포로로 만들고 있음을 명심하라.(26)”와 같은 대목입니다.


평소에 병약했던 까닭인지 의사에 관한 내용도 눈에 띕니다. 제가 의학을 전공하고 있어서인지 눈길을 끌었습니다만, 세월과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한계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 내 마음에 합당한 의사란 생명과 영혼을 인식하고, 인간의 부조리와 고통까지도 직관으로 감지하는 사람이다. 그런 의사가 전혀 없지는 않다. 그러나 대부분의 의사들은 환자들이 아파하는 내면의 환부를 투시하지 못한다. 병은 육신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온다. 그것을 치유해야 할 의사들은 오히려 마음을 멀리하고 육신만 본다. 나는 이런 의사들을 천박하고 속된, 그리고 하나님과는 연분이 없는, 직관도 공감도 갖고 있지 않는 위인들이라고 생각한다. 진정한 의사는 천재여야 한다. 그는 성자인 동시에 신의 대리여야 한다.”


중세를 건너온 근대 유럽사회의 근간을 흐르는 기독교 전통이 느껴졌습니다만, 이런 사조는 현대에 들어서 많이 달라졌음을 고려하여 읽어야 하겠습니다. 그 가운데 파스칼에 관한 비평이 눈길을 끌어습니다. 그는 파스칼이 가톨릭적 운명론을 주어졌다고 본 것이 약점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즉 가톨릭은 그에게 하나의 신성한 덩어리일 뿐 그것을 분석하지도, 설명하지도 않았다는 것입니다. 파스칼은 기하학적 인물인데 이런 인물은 흑과 백, 참과 거짓의 논리만 인정한다는 한계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종교라는 살아있는 생명체를 판단함에 있어 이와 같은 초보적인 논리로는 불가능하다고 하였습니다.


지병으로 고통을 받는 심정을 적은 환자로서의 생활은 마치 지루한 서사시를 읽는 듯하다. 벌써 5~6주째 나를 인내하고 달래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 만사가 다 싫증이 난다.(135)”는 대목을 읽으면서 전립선암으로 수술을 받고 회복 중인 제 처지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또한 생활이 단조로울 때는 일기 역시 단조로웠다. 같은 감정이 지속될 때면 일기 역시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그러나 이 작은 페이지들이 나에게 뮤즈의 음성이며, 내 삶의 유일한 동반자다.(161)”라는 대목에도 전적으로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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