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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의 인류학자 - 뇌신경과의사가 만난 일곱 명의 기묘한 환자들
올리버 색스 지음, 이은선 옮김 / 바다출판사 / 2005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어느 책에서 읽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꼬리를 무는 책읽기로 올리버 색스의 <화성의 인류학자>를 읽었습니다. ‘뇌신경과의사가 만난 일곱 명의 기묘한 환자들’이라는 부제는 원저에는 없는 것으로 적절해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냥 신경과의사하면 될 터이고, 올리버 색스가 저서에서 다루는 대부분의 환자들이 기묘한 환자라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특별난 환자들과의 만남을 맛깔나게 적은 책으로 많은 독자들에게 감명을 주어온 색스였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처음 만났던 <깨어남>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저자는 <화성의 인류학자>의 주제는 “질병의 역설적인 측면과 숨겨져 있는 ‘창의력’이다.(29쪽)”라고 하였습니다. 결함, 장애, 질병은 평상시에는 보이지 않았을 뿐 아니라 상상조차 못했던 인간의 잠재적인 능력, 성장, 진화, 삶의 형태를 발현시키는 역설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들이기 때문입니다. 이 책에서는 투렛증후군에서부터 자폐증, 기억상실, 전색맹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신경병에 걸린 일곱명의 환자들이 인간 특유의 놀라운 복원력과 적응력을 통해 180도 달라진 환경을 극복하고 생존한 과정을 기록하였습니다.
<화성의 인류학자>에서 특이한 점이 더 있습니다. 프랑스의 신경학자 프랑수와 레르미트(François Lhermite)가 환자를 진료실에서만 만난게 아니라 집으로 찾아가고, 식당이나 극장으로 초대하고, 자동차로 바래다 주는 등 최대한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려고 애쓴 바를 따랐다는 점이다. 확대된 형태의 왕진이라고 하겠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과거에는 한의학이나 의학의 전통에 따라 의사가 환자의 집으로 찾아 왕진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건강보험제도가 도입되면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첫 번째 사례는 교통사고로 뇌진탕을 일으킨 화가가 합병된 전색맹을 극복해낸 과정을 다루었습니다. 사고 이후에 시간이 지나면서 색에 관련된 기억을 상실해갔지만, 전혀 새로운 시각과 상상력과 감성의 세계를 만들어내 장애를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저자 역시 인간이 색을 인식하는 과정에 대한 그동안의 연구성과를 살펴 이 화가의 전색맹을 설명해보려 한 점이 돋보입니다. 뉴턴, 쇼펜하우어, 존 돌턴, 헬름홀츠, 괴테, 맥스웰 등 우리에게 익숙한 분들을 비롯하여 토머스 영, 헤르만 빌리브란트, 에드윈 랜드, 고든 홈스 등이 색채에 관한 다양한 이론을 세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 사례는 작사에 천부적인 감각을 가졌던 소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소년은 청소년기에 돌출된 반항아적인 기질로 인하여 마약과 환각제에 취한 생활을 하다가 다시 크리슈나의 철학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리고 시력을 잃어갔습니다. 교단에서는 ‘내면의 빛’이 자라는 증거라면서 ‘예지자’가 되었다고 추켜세웠다는 것인데 사실을 뇌하수체종양이 커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4년여 만에 아들을 찾은 부모가 병원에 데려가서야 거대한 종양을 발견하고 수술을 받았지만 손상된 뇌를 돌려놓을 수는 없었습니다. 청년은 모든 감정이 사라진 사람처럼 무표정하고 잔잔했습니다. 더하여 기억까지 잃어버렸습니다.
세 번째 이야기는 투렛증후군을 앓고 있는 외과의사가 수술은 물론 경비행기를 조종하는 등 일상에서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는 사례입니다. 투렛증후군은 특이한 행동을 강박적으로 하기 때문에 일상이 힘들 것으로 짐작하지만 1,000명당 한명꼴로 발병하는 투렛증후군 환자들은 의외로 섬세한 작업이 필요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네 번째 이야기는 어렸을 때부터 백내장과 색소성 망막염을 앓아 시력을 잃었던 중년 남성이 백내장 수술을 통하여 시력을 회복하였지만 가족들을 비롯한 주변의 인식부족으로 퇴행해버린 사례입니다. 다섯 번째 사례는 발작성 성격증후군(왁스먼-게슈빈트 증후군으로 바뀌었고 도스토예프스키 증후군이라고도 합니다)에 걸린 화가가 측두엽간질과 고향 폰티토에 집착하는 ‘추억’의 발작으로 고통을 받는 사례입니다. 작가는 이 사례에서 기억에 관하여 설명합니다. 여섯 번째 사례를 자폐증을 앓으면서도 기억력이나 표현기법이 뛰어난 소년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보니 <화성의 인류학자>에서 다룬 사례들은 화가가 많은 듯합니다.. 마지막 사례는 책의 제목인 ‘화성의 인류학가’라고 자칭하는 자폐증을 앓고 있는 여자 수의사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보니 자폐증에 관한 이야기가 많은 것도 이 책의 특징인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