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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나 아닌 다른 삶
엠마뉘엘 카레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3월
평점 :
췌장암으로 진단받은 뒤에 투병과정을 다양한 시각에서 적은 프랑스 철학자 뤼방 오지앙 박사가 <나의 길고 아픈 밤>에서 인용한 <나 아닌 다른 삶>을 읽었습니다. 프랑스 작가 임마뉘엘 카레르가 직접 직접 목격한 두 사람의 쥘리에트의 죽음을 두고 주변인물들의 반응을 적은 기록문학입니다.
이야기의 전반부는 2004년 12월 26일 작가가 스리랑카를 여행하면서 만난 델핀-제롬 부부의 4살짜리 딸 쥘리에트의 죽음을 다루었습니다. 여자아이는 그날 그곳을 덮친 전대미문의 지진해일에 휩쓸려 죽음을 맞았습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주검을 찾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쥘리에트의 죽음을 두고 부모를 비롯한 주변인물들이 보여준 모습을 적었는데, 이분들의 심정을 물어서 기록했다기보다는 지켜보면서 느낀 바를 적었다고 하는 것이 옳겠습니다.
하지만 또 다른 쥘리에트의 죽음은 또 다른 방식의 기록문학입니다. 스리랑카의 여행이 계기가 되어 삶을 함께 하게 된 엘렌의 여동생이 두 사람이 파리로 돌아온 뒤 얼마 되지 않아 죽음을 맞았습니다. 어렸을 때 악성 림프종을 앓고서 다리를 절단한 엘렌은 유방암이 생겨 폐로 전이되면서 죽음을 맞은 것입니다. 작가가 쥘리에트의 죽음을 기록하게 된 것은 프랑스 남부에 있는 소도시 비엔 소법원에 근무하던 쥘리에트의 영적 동지 에티엔의 간곡한 부탁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쥘리에트를, 나는 예전엔 몰랐고, 그 슬픔은 내 슬픔도 아니기 때문에, 나는 전혀 이 얘기를 글로 쓸 입장이 아니에요.”라고 조심스럽게 거절의 의사를 밝힌 작가에게 에티엔은 “바로 그렇기 때문에 당신이 글을 쓸 수 있는 거예요. 그리고 나도, 어떤 측면에서는 당신과 같은 입장이에요. 그녀의 병이지 내 병이 아니었으니까. 나는 그녀의 앞에, 그녀의 옆에 있었지, 그녀의 자리에 있지는 않았으니까요.(331쪽)”라면서 당부를 했다고 합니다.
어린 쥘리에트은 순식간에 닥친 지진해일 때문에 목숨을 잃은 것이기 때문에 죽은 이의 이야기를 담아낼 도리가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젊은 여성 쥘리에트판사의 경우는 암으로 진단된 뒤에 죽음을 맞기까지 어느 정도는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죽음을 맞는 쥘리에트의 생각, 그리고 남편을 비롯하여 동료인 에티엔을 비롯한 주변 인물들이 어떻 모습을 보였는지 면담을 통하여 들은 이야기들이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대학병원에서 근무할 때 암환자를 치료하시던 종양내과 교수님은 심뇌혈관 질환이 생기거나 사고로 인하여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기보다는 차라리 암으로 죽는 편이 좋겠다는 말씀을 하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죽음을 맞아야 하는 이유도, 언제쯤 죽을 것이라고 예상도 할 수 있고, 그래서 죽기 전에 주변을 정리할 시간이 있을 것이라는 이유였습니다.
사실은 쥘리에트 뿐 아니라 에티엔 역시 젊은 시절 암으로 다리를 잘라내야 했던 바가 있어서 암과의 투병과정에 대한 이야기는 쥘리에트와 에티엔의 두 사례가 된 셈입니다. 다만 죽음에 대한 이야기들은 쥘리에트를 중심으로 정리가 되었습니다.
저 역시 금년 초에 전립선암이 발견되어 수술을 받고 지금은 추적관찰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암에 대하여 많은 생각들을 하고 있습니다. 쥘리에트가 자신의 삶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평범하고 소박했던 자신의 삶은 성공한 삶이었다고 얘기했다고 했다.”는 대목을 읽으면서 과연 나의 삶은 어땠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당장 답이 떠오르지는 않습니다만 앞으로 진지하게 생각해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