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방의 빛 : 시인이 말하는 호퍼 (리커버)
마크 스트랜드 지음, 박상미 옮김 / 한길사 / 201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서울 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에드워드 호퍼 전시회를 관람하기 전에 공부하려고 산 책입니다. 캐나다 출신의 시인이자 미술가인 마크 스트랜드가 쓴 책으로 미술을 공부한 번역가 박상미님이 우리말로 옮겨 소개하였습니다. 미국에서 나온 개정판을 다시 우리말로 옮겼다고 하는데 미술관련 책의 개정판을 우리말로 소개할 정도라면 대단한 것 아닐까 싶습니다.


작품에서 느끼는 묘한 분위기 때문에 호퍼의 작품에 관심을 두고 있던 차에 우리나라에서 그의 작품을 볼 기회가 있다고 해서 기뻤습니다. 초기구매자들을 위한 관람이 먼저 이루어졌지만, 예매가 시작되자마자 매진사태를 빚어 일찍 볼 기회가 없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호퍼에 관심을 두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의미 같습니다. 전시에는 호퍼의 대표작을 모두 볼 수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작품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그린 습작들을 함께 전시하고 있어서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호퍼의 노력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작가는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에 관한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서, 그리고 비평가들이 낳은 오해를 바로 잡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흔히 호퍼의 그림들은 20세기 초 미국인들이 겪은 삶의 변화에서 비롯한 만족감과 불안감을 보여준다고들 하지만 저자는 호퍼의 그림은 현실이 드러내는 모습을 넘어서는 것으로, 어떤 감각이 지배하는 가상공간에 관객을 위치시키기 때문에 그 공간을 읽어내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저자는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이 마치 자신의 과거에서 온 장면처럼 느껴진다고 했습니다. 1940년대 저자가 어렸을 때 경험했던 세상을 호퍼의 그림 속에서 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시립미술관에서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들을 보고, 오후에는 성곡미술관에서 열리는 원계홍 전시회를 관람하였습니다. 서울의 뒷골목을 담은 원계홍의 작품들에서 이 책의 저자와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젊었을 적에 살았던 동네의 풍경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원계홍 화백의 골목길을 붉은 색 혹은 회색 일변도였는데, 당시 시멘트 벽돌 혹은 붉은 벽돌이 주로 사용하던 건축자재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호퍼의 전시에서는 작품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시각에서 그려낸 소묘들이 같이 걸려있었습니다. 소묘들은 아주 세밀하게 그려졌는데 유화작품들은 붓질이 상당히 거칠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스트랜드는 호퍼의 그림은 즉흥적이라기보다는 조심스럽게 꼼꼼하게 계획된 것(59)’이라고 한 것 같습니다. 반면 원계홍 화백의 작품들은 붓질이 아주 섬세하다는 느낌이 들었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시립미술관 전시에서는 다양한 책들에서 이미 만나보았던 호퍼의 대표적인 그림들 가운데 빠진 것들이 있는가 하면 이번에 처음 만난 작품들도 있었습니다. <빈방의 빛>에서는 모두 30점의 호퍼의 작품들을 싣고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빈방의 빛>에서 다룬 작품들의 설명을 읽다보면 저자가 시인이라는 사실을 절감하게 됩니다. 호퍼의 작품들을 보면 자연광을 최대한 잘 살리고 있는데 이런 점에 대하여 스트랜드는 호퍼의 빛은 이상하게도 공기를 채우고 있는 것 같지 않다고 했다. 대신 그의 빛은 벽이나 물건에 달라붙어 있는 듯하다. 마치 그곳에서 조심스럽게 잉태되어 고른 색자로 우러나오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이다(58)’


작가는 절제된 언어로 초현실적인 인상의 시를 써왔다고 합니다. 그런 까닭에 언어로 인상을 그려내는 그의 시는 종종 호퍼의 그림과 비교되어 왔다고 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호퍼의- 빛에 관하여 설명하는 대목에서 이런 느낌이 완연하게 느껴집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