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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감에 대하여 - 저항과 체념 사이에서 ㅣ 철학자의 돌 1
장 아메리 지음, 김희상 옮김 / 돌베개 / 2014년 11월
평점 :
‘우아하게 늙어가기’는 제가 쥐고 있는 화두이기도 합니다. 노화와 죽음은 생명이 있는 존재라면 피할 수 없는 숙명 같은 것입니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고 했던가요? 즐기려면 일단은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제일이지요. 장 아메리의 <늙어감에 대하여>도 늙어감을 배우기 위하여 읽었습니다.
초판 서문을 보면 저자 역시 저와 비슷한 생각을 했던 모양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문제를 곰곰이 따지며 생각해보려는 성향 덕에, 또 아마 좋은 연습이 될 수 있으리라는 믿음으로, 인간이 나이를 먹는다는 게 무얼 뜻하는지 이 글에서 밝혀보려 한다”라고 운을 떼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실증과학이 제공하는 정보를 토대로 하기보다는 자신의 경험과 사유를 바탕으로 하였다고 합니다. 이 점에 관해서는 이런 생각입니다. “의식에 직접적으로 주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인간 일반이라는 보편적 문제에 지성이 등을 돌리는 시대에, 나는 ‘살아본 구체적 경험(’levécu)만을 철두철미하게 고집했다. 나이를 먹어가는 인간이 휘말릴 수밖에 없는 상황을 근접하게나마 충실하게 그리려는 노력은 ‘성찰’이라는 방법으로만 감당할 수 있을 따름이다. 그리고 여기에 주의 깊은 관찰과 공감 능력이 덧붙여져야 한다. 그러나 과학이 요구하는 엄밀함, 심지어 철저하게 완벽한 논리를 기대하는 태도는 이 시도에서 포기될 수밖에 없다.(7쪽)”
목차를 보면 ‘살아있음과 덧없이 흐르는 시간’, ‘낯설어 보이는 자기 자신’, ‘타인의 시선’, ‘더는 알 수 없는 세상’, ‘죽어가며 살아가기’ 등 5개의 제목으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저자가 55살이 될 무렵 초판을 냈던 것 같습니다. 살아온 나날이 덧없이 흘러간 것에 대한 회한 같은 것이 느껴지는 첫 번째 글 묶음입니다. 두 번째 글묶음은 그렇게 살아오다보니 문득 자신이 낯설어 보이더라는 이야기인 듯합니다. 세 번째 묶음은 늙어가는 내 모습을 남들은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을 담았구요. 네 번째 글묶음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세상으로부터 소외되고 있구나 하는 인식 혹은 소외되지 않을까 하는 고민이 담긴 듯합니다. 그리고 마지막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이듦을 감내하고 살아야만 한다는 것이겠지요.
각가의 글묶음에는 A라고 하는 화자가 있습니다. 물론 글묶음마다 화자가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덧없이 흘러가버린 세월을 이야기하려다 보니 첫 번째 글묶음의 화자 A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쓴 마르셀 프루스트입니다. 특히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마지막편 되찾은 시간을 화두로 삼았습니다. 마침 민음사에서 새로 번역하여 출간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마지막편을 읽고 있어서 저자의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참고로 마르셀 프루스트가 루아르에셰르 주 출신이고 그곳에서는 프뤼(Pruh)라고 부른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제가 늙어감에 처음 관심을 가졌던 것은 40대 무렵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우아하게 늙어가는 길을 모색했는데 답을 찾아낸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저 열심히 살아왔는데, 젊은이들과 함께 일하는 시간이 많았기 때문에 나이 듦을 깨닫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아메리는 늙어감에 대한 저항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늙어가는 현실에 체념하게 된다는 생각을 한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긍정적 태도, 품위 있고 불평하지 않는 노년의 두 가지 특성을 이야기합니다. 그 하나 “변화와 발전의 꽁무니를 쫓아다니며, 저 자기기만의 인기 높은 주장대로, ‘젊음과 더불어 젊게 살자!’고 외쳐대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시대를 뒤쫓으며 사회의 [노인]파괴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반대로 그 숨 가쁜 행보로부터 자신은 빠져나왔다고 하면서 사회의 파괴를 부정한다. 늙는 것은 아름답고 좋은 일이다. 젊었을 때는 토론에 끼어 말을 거들었을 뿐이지만, 늙은 지금은 내 말이 진리다. 이미 오래전에 경제적으로 아무 어려움이 없게 노후를 준비해두었다. 그러니 오 세상이여, 나를 이대로 내버려다오. 노인은 아무것도 아닌 평화를 이룩해준 사회에 만족했다.”
어떻게 늙어갈 것인가에 대한 방향을 잡는데 분명 도움이 될 책읽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