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후의 삶
압둘라자크 구르나 지음, 강동혁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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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노벨상을 수상한 압둘라자크 구르나의 최신작이라고 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작가는 1948년 영국 보호령 잔지바르 섬에서 케냐와 예맨 출신의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잔지바르는 포르투갈의 식민지배를 받다가 오만 제국의 속국을 거쳐 영국 보호령이 되었습니다. 1963년에는 술탄이 다스리는 독립군주국이 되었지만, 한 달 만에 혁명이 일어났고 혁명세력은 탕가니카와 합병을 주도해서 탄생하 탄자니아에 편입되었습니다. 새로운 국가체제에서는 아랍계 무슬림이 박해를 받았고, 이에 작가는 잔지바르를 떠나 영국으로 이주하여 캔터베리 크라이스트처치 대학에 입학하였습니다. 대학시절 영어로 소설을 쓰기 시작하였습니다.


작품은 영어를 주로 사용하지만 모국어인 스와힐리어, 아랍어, 독일어 등을 섞어 쓰기도 합니다. 작품의 무대는 동아프리카 해안지방입니다. <그후의 삶>은 역시 탄자니아의 해안이 무대이며 시대적 배경은 1910년을 전후한 시점에서 시작하여 제2차 세계대전이 임박한 1930년대 말에 끝이 납니다.


4부로 구성된 <그후의 삶>의 독특한 점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서술의 대상이 달라진다는 점입니다. 주인공 함자가 살아내는 삶에 영향을 역사의 흐름을 설명하기 위하여 주변인물 가운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칼리파의 젊은 시절을 미리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1부는 19세기 말 인도계인 칼리파가 아무르 비아사라의 고용인이 되고, 그의 조카딸 아샤와 결혼하고 주인공 함자의 아내가 되는 이사야의 오빠 일리아스와 친교를 맺기까지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2부는 독일제국이 현지인들로 구성한 아스카리 군대인 슈추트루페에 입대하여 보낸 시절의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신병훈련을 받는 과정에서 중위의 당번병으로 뽑혔는데, 중위는 그에게 독일어를 가르치기 시작합니다. 이어서 슈츠투르페가 이 지역을 점령하기 위하여 밀고 들어오는 영국군과 전투가 시작됩니다. 초반에는 영국군을 밀어내는 전과를 올리기도 했지만 종국에는 영국군이 상륙하여 독일군을 밀어내고 말았습니다. 부대 운영이 어려운 지경에 빠지면서 탈영병이 생기고 부대는 지리멸렬한 지경에 이릅니다. 그 와중에 평소 중위가 관심을 쏟는 함자를 아니꼽게 생각하던 소위 펠트베벨이 휘두르는 칼을 맞은 함자는 엉덩이를 베여 사경을 헤매게 됩니다. 다행히 생명을 구하고 선교지에 맡겨진 함자는 몸을 추스른 뒤에 어릴 적 살던 마을로 돌아오게 됩니다.


3부에서는 고향에 돌아온 함자가 아무르 비아사라의 아들 나소르와 조우하여 일자리를 구하고 역시 나소르와 관계를 맺던 칼리파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칼리파가 거두었던 일리아스의 여동생 아피야와 결혼에 이르게 됩니다. 4부는 함자와 아피아 칼리파와 아샤의 평온한 삶이 전개됩니다. 그리고 아피야의 오빠 일리아스의 행적이 드러나는 단계에서 이야기가 마무리됩니다.


등장인물이 서로 엮어 사는 모습을 담담하게 서술한 것처럼 마무리 역시 밋밋한 느낌입니다. 나치가 들어선 1933년에 아피야의 오빠 일리아스는 독일인 여자와 결혼하여 베를린에 살고 있었으며 1938년 다른 독일인 여성과 불륜을 저질러 체포되어 베를린 외곽에 있는 작센하우젠 수용소로 보내졌다가 자진 입소한 아들 파울과 함께 1942년 사망했습니다. 일리아스가 체포된 것은 1935년 통과된 나치의 인종법에 따라 아리아인 여성을 모독한 죄였습니다.


작품을 통하여 20세기 초반 동아프리카 해안에 살던 사람들의 삶이 어땠는지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이 지역을 지배하기 위하여 유럽 사람들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도 알 수 있습니다. 아직은 작가가 겪은 무슬림에 대한 탄압이 시작되기 이전이라서인지 이슬람교를 신봉하는 주민들의 평범한 일상이 그려졌습니다. 이야기가 더 진행이 되었다면 등장인물들이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에 겪었을 신산한 삶과 전후에 들어선 탄자니아 정부의 무슬림 탄압이 어땠는지도 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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