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 피, 열
단시엘 W. 모니즈 지음, 박경선 옮김 / 모모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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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신진 작가 단시엘 W. 모니즈의 <우유, , >을 고른 것은 강렬한 느낌의 표지 때문이었습니다. 흉곽을 이루는 갈비뼈와 흉골에서 쏟아진 피가 우유에 섞여드는 듯한 그림은 무슨 의미를 담았을까요? <우유, , >11편의 단편을 담은 작가의 등단 작품집이라고 합니다.


표제작 우유, , 을 맨 처음에 두었습니다. “분홍이야말로 여자 색이다.”라고 도발적으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8학년이 되면서 친해진 키라와 에바가 혈맹을 맺으면서 시작합니다. 각자의 피를 술에 섞은 뒤에 나누어 마시면서 혈맹을 다졌다는 이야기를 <열국지>에서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옛 이야기에 나오는 행동을 요즘의 청소년이 한다는 착상이 놀랍습니다. 나이를 고려한 탓인지 술이 아니라 우유에 피를 섞어서 다행이라고나 할까요?


혈맹 이후에 두 아이는 많은 시간을 함께하는데 같은 반 첼시의 생일축하연에도 함께 갑니다. 한창 때의 아이들은 무한한 상상의 날개를 펼치곤 합니다. 그런데 요즈음 아이들이 상상하는 세계는 이해되지 않는 대목입니다. ‘고기 분쇄기에 갈리게 되면 어떨까?’, ‘옥상에서 떨어지면 어떻게 될까?’ 이런 상상을 해본다는 것도 끔찍한데 실제로 행동으로 옮길 수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미국이니까 이런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생각해보니 우리나라에서도 있을 수 있는 이야기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책에 실려 있는 11편의 이야기들은 다양한 주인공들의 삶을 다루었습니다. 하나하나의 이야기가 별개의 것임에도 마치 한 사람의 주인공을 다루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작가가 거주하는 플로리다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나 주인공들이 모두 여성이라는 점 때문인 듯합니다. 이야기들을 관통하는 분홍이라는 색조는 표제작에 등장하는 하얀 우유와 붉은 피가 섞여 만들어내는 색조인데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고 옮긴이는 작품해설에서 짚었습니다.


우유, , 에서는 뜨거운 우정을, ‘천국을 잃다에서는 임박한 죽음을, ‘뼈들의 연감에서는 자유로운 개인의 삶 혹은 생명을, ‘향연에서는 사산된 아이를, ‘스노우뼈들의 연감에서는 시작하는 사랑의 감정을 상징한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의미 없이 틀에 박힌 듯 사는 삶을 bloodless라고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여성들이 보이는 생각이나 행동이 쉽게 이해되지 않는 것이 처음에는 문화적 차이일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등장인물들의 모습들을 우리 사회에서도 본 듯하여 문화적 차이라기보다는 남성의 시각에서 볼 때 이해하기 어려운 성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옮긴이는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주인공들을 이상한 여자들로 규정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열한 편의 단편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연령도, 피부색도, 직업도, 성격도, 경험도, 상황도 모두 제각각이고, 심지어 살아남은 여자도, 죽어가는 여자도, 죽은 여자도 있는데, 번역 내내 그들이 모두 동시에 나인 것처럼 느껴지는 특별한 경험을 했다(343)” 저야 남성이라서 그렇게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물보다 진한이라는 작품에서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골을 생전에 좋아하던 산타페에 뿌리러 가는 남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밤마다 딸의 이불을 덮어주고는 딸의 귀에 대고 폴라 상그레(Por la sangre, 피는 진하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위키백과에는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속담에 대한 설명이 있습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Blut ist dicker als Wasser) 독일어 속담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하인리히가 쓴 12세기 중세 독일의 동물 우화집에 등장하는 여우 라인하르트(Reinhart Fuchs)에서는 ‘uch hoer ich sagen, das sippe blůt von wazzere niht verdirbet(혈육의 피는 물로 인해 흐려지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라는 대목이 나옵니다.’ 그런데 물보다 진한이라는 단편에 나오는 것처럼 아랍에서는 물이 아니라 모유와 비교한다고 합니다. 아랍에서는 피는 우유, 특히 모유보다 진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같은 젖을 먹고 자란 형제를 모유형제 혹은 포유형제라고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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