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내식 먹는 기분 - 정은 산문집
정은 지음 / 사계절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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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떠나는 이유도 참 다양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저의 경우는 여행을 통하여 새로운 것을 배우는데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다른 이들의 여행에 대한 생각들을 찾아 읽는 것도 무언가를 배우려는 생각 때문입니다. 다른 이들의 여행에 대한 생각을 읽다보면 가끔은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습니다. 정은 작가의 <기내식을 먹는 기분>이 그랬습니다.


작가는 서문에서 나 자신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을 때마다 비행기 표를 샀다고 했습니다. 나 자신으로부터 도망을 쳐야 했던 이유는 따로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비행기를 탄다고 나 자신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을까 의문이 생깁니다. 나 자신은 어디에 가든지 나와 함께 하는 것 아닐까요? 그래서인지 비행기가 떠오르는 순간 후회한다고도 적었습니다. 그렇게 여행을 떠나면 한두 달 머물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기를 15년이나 이어왔다고 합니다. 어딘가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부평초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비행기가 떠오르자마자 마음속으로 하차하고 싶다는 생각이 맹렬하게 일어난다고도 했습니다. 하차라는 단어가 어색하기는 합니다만 비행기에서 내린다는 의미의 사전적 단어가 없다고 합니다. 최근에 착륙중인 비행기에서 내리고 싶다는 이유로 비상구를 열어 제킨 황당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활주로에 닿기도 전에 비상구를 연다고 당장 내릴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승무원이 기내식을 제공하기 시작하면서 비행기에서 내리겠다는 충동과의 싸움이 가라앉는다고 했습니다. 기내식이 맛있다고 느낀 적은 없지만 기내식을 여는 순간 경건해진다고 했습니다. 기내식을 먹는 기분은 이것이 마지막 식사일 수 있다는 불안감에서 비롯된다고도 했습니다. 지상의 어느 식당에서도 느낄 수 없는 독특한 느낌이라고 했지만, 배위에서 먹는 식사도 마찬가지일 수 있을 것입니다. 배위에서는 승무원이 식사를 나누어주지 않는다는 차이는 있겠습니다.


기내식을 먹고 나면 죽음에 대한 생각이 사라지고 살아있다는 안도감과 함께 잠이 온다고 했습니다만, 비행기 사고는 확률적으로 하늘에 떠있을 때보다 이륙할 때보다 착륙할 때 더 많이 발생했던 것 같습니다.


서문을 읽으면서 저자가 이런 생각을 해본 사람 있어요?’라고 말하고 싶은 것 아니었을까 싶었습니다. 다른 이들의 여행 산문과는 다른 무엇을 담아내보려는 작가적 의도가 느껴지더라는 것입니다. 이런 느낌은 본문 곳곳에서 느껴졌습니다. <기내식을 먹는 기분>4부로 구성되었습니다. ‘1부 길의 뒷모습은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을 여행하면서, ‘2부 빛의 도시는 인도를 여행하면서, ‘3부 도시의 지문은 미국을 여행하면서, ‘4부 사랑의 방은 국내에 머물면서 느낀 단상들을 적었습니다.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을 여행하게 된 것은 순례자의 길을 걷고 나면 작가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추천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하기는 예스24의 검색창에 산티아고를 넣으면 무려 420개나 되는 책이 튀어나오는 것을 보면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을 여행이 작가의 길로 가는 지름길일 수도 있겠습니다.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을 여행한 것이 소망하던 작가의 길로 안내하게 된 것 아닐까 싶습니다. 그나저나 작가가 되기 위하여 15년이나 해외여행에 투자를 해야 했던 것을 보면 집념과 인내심이 대단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연인이라는 단어가 거울을 들고 있는 사람에서 비롯되었다는 설명이 자신이 만들어낸 것이라는 대목에서 산티아고에서 불교신자라더니 인도에서는 무신론자에 가깝다는 고백을 보면 수미일관하지 못한 글쓰기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내시경을 하러 동네 내과에 갔을 때 원장선생님께서 그걸 꼭 눈으로 확인할 필요가 있을까요?’라고 했다는 이야기도 순례자의 길이 끝나는 산티아고 대성당에서 피스테라까지 걸어가서 대서양으로 지는 해를 꼭 보아야 했다는 설명에 필요했기 때문에 만든 이야기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여행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화보에 담은 많은 흑백사진과 색조사진들이 예사롭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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