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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에 대하여 - 고대 스토아 철학의 대가 세네카가 들려주는 화에 대한 철학적 사색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 지음, 김경숙 옮김 / 사이 / 2013년 1월
평점 :
나이가 들어가면서 화를 낼 일이 많아집니다. 예를 들면 산책길에서 다들 우측통행을 하는데 굳이 좌측 통행을 하면서 마치 비키라는 듯이 돌진해오는 사람을 보면 속으로 부글부글 끓곤 합니다. 앞에 오는 사람이 알아서 피해갈 것이라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남에게 불편을 끼치면서도 아무 생각이 없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한번은 개를 끌고 오면서 비켜가지 않는다고 대놓고 투덜거리는 중년 아줌마를 만난 적도 있습니다. 아내와 함께 산책을 하다가 이런 사람을 만나 투덜거리면 나이 들면서 화가 늘었다고 핀잔을 듣기 일쑤입니다. 아내는 공연히 화를 끓이면 나만 손해라고 다독이곤 합니다만, 꼭 한 마디 투덜거리곤 합니다. X가 무서워서 피하는 것이 아니라 더러워서 피한다고 했던가요? 정신건강을 위해서라도 대충 살면 되겠습니다만, 세상을 살아가면서 남을 배려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몸으로 알려주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우측통행을 고집하곤 합니다.
사소한 일에 화를 끓이곤 하는 저에게 안성맞춤한 책을 만났습니다. 고대 스토아 철학의 대가 세네카가 쓴 <화에 대하여>입니다. 인간의 ‘화’라는 감정에 대하여 서술한 첫 번째 책이라고 합니다. 세네카는 평소 화를 잘 내는 동생 노바투스의 부탁으로 집필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세네카는 화란 도대체 무엇이며, 우리는 도대체 왜 화를 내는지, 화는 우리 인생에서 과연 필요한 것인지, 화는 인간의 본성인지, 화를 낼 떼 우리의 모습은 어떻게 변해가는 지, 화의 대한 해악은 어느 정도인지, 화는 애초부터 싹을 자를 수 있는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과연 화는 어떻게 억제하고 다스릴 수 있는지 등에 관하여 다양한 사례를 들어가며 설명합니다.
스페인 여행에서 찾은 코로도바에서 세네카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세네카는 로마제국 직할이었던 에스파냐에서 태어나 어렸을 적에 부모님을 따라 로마로 이주했습니다. 아버지의 권유로 정치에 뜻을 두었지만, 폐결핵, 우울증 등 건강문제로 34살에 이르러서야 뜻을 이루었습니다. 그마저도 메살리나 여제의 음모와 연루되어 클라우디우스황제에 의하여 코르시카로 유배되었습니다. <화에 대하여>는 유배생활을 하는 동안 저술하였습니다.
고대 로마제국 시절 사람들은 현대인들보더 더 화를 잘 냈다고 합니다. 세상을 지배한 로마제국이니만큼 돈이 많고 호화롭게 살아 삶이 편안하고 아무런 걱정이 없어 보이지만, 내막을 보면 반대였다는 것입니다. 화는 기대치의 수준에 따라 비례하기 때문에 고대 로마제국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남들이 가진 것에 눈을 돌리는 사람은 자신의 것에 만족하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자기 뒤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있는지는 생각하지 dksgr 다른 사람이 자기보다 앞서 있다고 혹은 자기보다 많이 가졌다고 해서 신들에게도 화를 낸다.(25쪽)”는 대목이 화의 근본을 제대로 짚은 것이라 하겠습니다.
당시 의술에 관하여 주목할 만한 대목도 있습니다. 가벼운 질환을 치료할 때는 간단한 식이요법으로 시작하는데, 환자의 생활방식을 바로 잡아 몸을 튼튼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차도가 없으면 단식으로 몸의 부담을 덜기도 하는데, 이도 듣지 않는 경우에는 사혈요법을 하고, 필요하다면 절제술을 적용하기도 하였습니다.
토마스 모어가 유토피아에서 인용한 것으로 보이는 대목도 눈길을 끌었습니다. “건강을 찾기 위해 질병의 힘을 빌려야 한다면 그것은 형편없는 치료법이다.(57쪽)” 그런가 하면 “병중에 자제심을 잃어버린 것을 경험했던 사람은 자신의 상태가 안 좋을 때 하는 말을 들어주지 말라고 사람들에게 당부한다(187쪽)”라는 대목은 저도 역시 새겨두기로 했습니다.
나날이 늘어가기만 하는 화를 어떻게 조절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었던 책읽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