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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는 왜 다른 곳이 아닌 머릿속에 있을까 - 뇌과학자에게 묻고 싶은 오만 가지 질문들
마이크 트랜터 지음, 정지인 옮김 / 아몬드 / 2022년 12월
평점 :
당연한 질문을 받으면 답변이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뇌는 왜 다른 곳이 아닌 머릿속에 있을까?’라는 질문이 튀어나온 배경이야 그렇다고 쳐도, 정답은 무엇일까 궁금해집니다. 이 책의 원래 제목은 부제로 붙인 ‘뇌과학자에게 묻고 싶은 오만 가지 질문들’에 가까운 <Million Things To Ask A Neuroscientist>입니다. 오만가지가 아니라 백만 가지나 될 수 있는 질문을 받아보겠다는 호기를 부린 셈입니다. 저자 역시 ‘내가 허풍을 좀 쳤다’고 꼬리를 내렸습니다. 영국인 답지 않은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허풍은 이것만이 아닌 듯합니다. 저자는 “처음에 책을 쓰기로 마음먹었을 때, 사람들의 경이감에 제대로 불꽃을 당길 수 있는 개념들을 찾아내 길잡이로 삼고 싶었다. 그래서 전 세계 사람들에게 뇌에 관해 가장 흥미롭다고 여기는 질문, 늘 알고 싶었지만 답을 알아볼 기회가 없었던 질문을 보대달라고 요청했다.”고 적었습니다만, 저는 그런 연락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따라서 전 세계 사람들로부터 질문을 받은 것은 아닌 듯합니다.
질문에 답하는 방식도 분명치가 않습니다. 책에 담기 적합한 질문을 추리는 과정이 상당히 어려웠다고 고백하면서, 어떤 질문은 독립적인 항목으로, 어떤 질문은 본문 중에 끼워 넣었다고 했습니다. 당연히 어느 분이 어떤 질문을 보냈는지 표시도 없습니다. 이는 저자의 요청에 따라 질문을 보낸 분들에 대한 예의가 아닐 듯도 싶습니다. 저자와 같은 방식으로 책을 꾸민다면 이런 점들을 고려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질문들은 1. 뇌과학자에게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2. 뇌과학 X파일, 3. 뇌과학의 미래, 4. 과학의 토끼굴 등, 모두 4개의 영역으로 구분하였습니다. 5. 과학 기술 공학 수학하는 여자들이라는 부분은 런던에서 뇌과학을 공부하는 박사과정의 여학생에게 부탁한 원고라고 합니다. 영국에서는 박사과정에 있는 학생을 뇌과학자라고 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래도 박사과정을 일단 마치고 자신만의 연구 주제를 가지고 있어야 뇌과학자라고 할 수 있지 싶습니다.
질문들 가운데 지나치게 피상적인 것도 있지만 상당한 전문가가 내놓은 듯한 것도 있습니다. 제가 관심을 두고 있는 기억에 관한 것으로는, 1. 머리를 맞으면 정말로 기억을 잃을까?, 2. 기억은 어떻게 뇌에 새겨질까?, 3. 과잉 기억증후군: 생의 모든 것을 완벽하게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까? 등 세 가지였습니다. 기억이 뇌에 새겨지는 방식에 대한 질문은 답이 쉽지 않은 것이지만, 나머지는 앞서 말씀드린 대로 피상적인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과연 기억이란 무엇인가?’라는 세부질문에 들어가보면 답변이 지나치게 두루뭉술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기억 하나하나는 여러 신경세포에 함께 새겨진다.’라고 하였는데 어디에 어떻게 새겨진다는 것인지 구체적인 설명이 없습니다. 기억이 부호화되는 방식을 설명하면서 비욘세의 연주회에 가는 길을 비유하고 있는데, 기억이 저장되는 과정은 연주회에 가는 길이 다양한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일 것 같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사실과 다른 내용도 있었습니다. 혈-뇌장벽을 설명하면서 ‘몸의 나머지 부분으로 공급되는 혈액과 특별히 뇌로만 들어가는 혈액 사이에 장벽이 설치되어 있다’라고 설명하였습니다. 심장에서 출발한 혈액이 어느 지점에서 장벽을 만나게 되는지 분명하게 밝히지 않았습니다. 정확하게 설명하자면 혈뇌장벽은 뇌에 분포하는 동맥혈관의 구조적 특징에 따라 일정한 크기 이상의 분자량을 가지는 물질이 동맥혈관을 떠나 뇌실질로 침투할 수 없는 구조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일부 항목들의 경우는 흥미롭게 읽었습니다만, 적지 않은 내용이 지나치게 피상적이라는 느낌이 드는 책읽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