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 기행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2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폴란드, 체코, 슬로바키아, 헝가리 등의 동유럽 국가들을 여행한 적이 있어 고른 책읽기였던 것 같습니다. <동유럽 기행><백년동안의 고독>으로 1982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동유럽 기행문입니다. 당시 마르케스는 콜롬비아의 수도 보고타에 있는 <엘 에스펙타도르> 신문사의 편집기자였는데 19557월에 제네바에서 열린 서유럽 4대 강국 회의를 취재하기 위하여 파견되었다가 신문이 폐간되면서 그냥 유럽에 눌러앉은 상황이었습니다.


마르케스의 동유럽기행은 상당히 충동적으로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마르케스와 밀라노 잡지사의 자유기고 통신원인 프랑코는 진보주의 성향에 사회주의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었는데다가 1956년에 소련이 헝가리를 침공하는 등 격변이 일고 있는 동유럽 국가들을 가보고 싶어 했던 것입니다. 그런 와중에 프랑코가 자동차를 새로 산 것이 계기가 되어 인도차이나 출신으로 파리의 잡지가 편집설계사인 자클린과 함께 세 명이 차를 몰고 동독을 경유해서 베를린에 가보기로 하였습니다.


엄격하게 통제되는 동독을 차를 몰고 통과하는 행위는 위험천만하다고들 인식하고 있을 때라서 무모하기까지 했던 시도였습니다. 하지만 동독 군인들을 비롯하여 세관원의 꼼꼼한 검토를 지루하게 기다려야 했던 것을 말고는 큰 사고 없이 동독을 지나 서베를린에 도착할 수 있었고, 전쟁으로 인하여 파괴된 터전이 아직도 복구되지 않은 상황을 그대로 볼 수 있었습니다.


마르케스의 여행은 체코의 프라하를 거쳐 폴란드의 바르샤바로 이어졌습니다. 년 전에 동유럽을 여행할 때 본 체코와 폴란드는 개방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는데, 전후에 소련의 주도로 공산당이 집권하고 있을 때도 그리 강압적이거나 폐쇄적이지는 않았던 것 같고, 오히려 문제 없이 잘 살고 있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한 행동들을 볼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행은 동독에서 체코로, 이어서 폴란드로 갔다가 다시 체코로 돌아와서는 소련으로 넘어가 요즈음 전쟁이 한창인 우크라이나를 거쳐 모스크바로 향합니다. 모스크바에서 열린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초청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모스크바에서 체류한 시간이 길었던 탓인지 소련 여행기가 분량이 제법 많습니다. 소련에서의 일정을 마치고는 헝가리의 초청을 받아 부다페스트를 방문하게 되는데, 당시 헝가리는 외국과의 통행을 차단하고 있어서 어렵게 성사된 방문길이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헝가리 측에서는 초청 인사들을 미리 준비한 일정 외의 일탈을 엄격하게 감시하는 바람에 보여주는 것 말고는 헝가리의 일반 시민들과 접촉할 기회는 없었다는 것입니다.


마르케스는 당시만 해도 무명작가라서 대중적인 인지도가 높지 않아 행동이 자율웠던 것 같습니다. 마르케스는 당시의 여행기를 철의 장막에서 보낸 90이라는 제목으로 콜롬비아의 시사 주간지 <크로모스>와 베네주웰라의 시사주간지 <순간>에 연재하였습니다. 이 글은 1978년에 <사회주의 국가 여행: 철의 장막에서 보낸 90>이라는 제목을 달아 책으로 묶어냈습니다. 원본에는 체코 여행기가 있다고 했는데, 우리나라의 번역본에서는 체코 여행기가 빠진 것인지는 분명치가 않습니다.


철의 장막은 장막도 아니고 철로 돼 있지도 않다. 그것은 빨간색과 흰색으로 칠한 나무 방책인데, 꼭 이발소 간판 같다. 그 장막 안에 석 달 동안 머무르고서, 나는 철의 장막이 정말로 철의 장막이기를 바라는 건 일반 상식이 모자란 결과라는 걸 깨달았다.”로 시작되는 여행기의 첫 부분은 당시 국제사회의 인식과는 차별화된 것이라 하겠습니다

.

책을 읽다보면 전후 동유럽 각국 사람들의 기질이나 형편을 알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체코의 프라하는 생동감 있고 밝으며 명랑한 도시였고, 프라하 사람들은 모든 자본주의국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반응한다고 했습니다. 바르샤바에서의 인상은 오랫동안 궁핍하게 생활하고 전쟁으로 괴멸되고 복구를 강요받고 정부 관리들의 실수로 숨통이 끊겼지만, 계속해서 고결하고 숭고하게 살아남으로 노력하는 것으로 비쳤다고 합니다. 모스크바 사람들은 순박하고 친절하며 솔직했다고 합니다. 부다페스트 사람들에 관해서는 형편없는 옷을 입고 슬픈 표정을 지으며 모여 있는 군중은 생필품을 사려고 끝도 없는 줄을 선다고 하였습니다.


벌써 65년 전의 이야기라서 요즈음을 동유럽 국가들의 사정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생각입니다만, 사람들의 기질은 여전하지 싶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