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시간 - 느리게 사는 지혜에 관하여
토마스 기르스트 지음, 이덕임 옮김 / 을유문화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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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목으로 유추해보면 시간과 관련된 이야기일 것 같습니다. 그리고 느리게 사는 지혜에 관하여라는 부제를 보면 조급하게 사는 삶의 폐해를 지적하는 내용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하지만 책을 읽고서는 정말 세상의 모든 시간을 이야기하고, 느리게 사는 지혜를 이야기한 것인지 헷갈리게 됩니다.


오히려 서문을 마무리하는 부분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글이 이 책의 기획의도라고 보았습니다. “나의 주된 관심사는 문화사와 과학사에서 이룬 위대한 업적을 한번 뒤돌아보고 인간이 성취할 수 있는 노력과 범주가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것, 우리에게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를 생각해보는 것이다.(10)” 처음 시작하는 우체부 슈발에서부터 마지막 이야기 미완성에 이르기까지 모두 28꼭지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그런데 28꼭지의 이야기 가운데 타임캡슐할버슈타트의 존 케이지’, ‘휴식과 게으름’, ‘천 년이 하루정도의 이야기가 시간, 혹은 느리게 살기와 구체적인 연관이 있는 듯하였고, 나머지 대부분의 이야기들은 시간이나 느리게 살기와 어떻게 연관이 되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다만 저자가 서문에서 밝힌 것처럼 문화사 혹은 과학사에 나오는 이야기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하나의 주제에서도 다양한 자료들을 인용하여 이야기를 풀어 가는데 간혹은 연결이 분명치 않아 보이는 대목도 없지 않은 느낌입니다. 특히 진시황이 백방으로 불로장생의 약을 구하려 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서복이라는 신하로 하여금 동남동녀 3천을 데리고 우리나라와 일본으로 보냈으나 돌아오지 않고 그곳에서 왕이 되었다는 근거 없는 이야기를 마치 서복이 일본을 세운 인물이라고 적고 있는 것을 보고는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개인적으로 관심이 많은 마르셀 푸르스트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서두름의 시대에서도 분명치 않은 인용을 볼 수 있는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나오는 회상에 관한 유명한 대목 여시 원전과 다른 점이 있습니다. “주인공은 그의 어머니가 내주곤 했던, 보리수 꽃차에 마들렌을 적셔서 먹던 기억을 다섯 페이지에 걸쳐 묘사했다는 대목입니다. 원전에는 어느 쌀쌀한 날 어머니께서 마들렌을 곁들여 홍차를 내주셨는데, 마들렌 조각이 녹아든 홍차 한 숟가락을 입에 넣는 순간, 콩브레에서 레오니 아주머니가 내주던 보리수차에 적신 마들렌 조각의 맛을 떠올리면서 어릴 적의 기억을 되살아나더라는 이야기입니다. 옛기억을 되살린 계기는 어머니가 내준 마들렌 조각이 녹아든 홍차였지만, 어린 시절 보리수 꽃차를 내준 이는 어머니가 아니라 레이니 아주머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루스트의 가정부인 셀레스트 알바레가 <나의 프루스트 씨>라는 책을 냈다는 사실을 비롯하여 마르셀 프루스트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집필하는 과정에 관한 이야기는 처음 듣는 내용이라서 참신했습니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블랙스완이론에 관한 이야기에서도 블랙스완 이론이 나오게 된 배경이 생략되어 있어 흑고니를 알지 못하는 독자는 글 내용을 쉽게 이해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스텐 나돌리의 <느림의 발견>이나 밀란 쿤데라의 <느림>을 인용하여 느긋하고 신중한 성격은 잠시 멈춤과 기억이라는 요소로부터 힘을 얻는다 이 힘은 결국 어떤 속도보다 더 뛰어난 것이다.(106)”라는 대목 역시 두 소설의 내용은 전혀 언급하지 않아서 두 소설로부터 도출해낸 명제가 얼마나 타당한지 가늠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래도 마지막 주제 미완성에 적은 “‘글은 누가 쓰건 남는다는 말이 있다. 그리고 책은 더 오래 살아남는다(218)”라는 대목은 큰 울림으로 남게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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