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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37
장 자크 루소 지음, 문경자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3월
평점 :
스위스를 여행하면서 읽었던 우석영과 소병철의 <걸으면 해결된다>에서 추천한 장자크 루소의 <고독한 산책자의 꿈>을 호주와 뉴질랜드를 여행하면서 읽었습니다. 최근에 다시 걷기에 관심이 생기면서 관련된 책들을 집중적으로 읽게 될 것 같습니다.
<고독한 산책자의 꿈>은 <고백록>과 <대화: 루소, 장자크를 심판하다>와 함께 자서전의 삼부작을 완성한 셈입니다. 교육에 관한 <에밀>을 집필하였으면서도 자신의 아이들을 고아원에 버렸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루소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비난과 조소를 받아야 했습니다. 급기야 사교계를 등지게 되면서 사태가 악화되었고, 프랑스와 고국 스위스에서도 체포령이 내려졌습니다. 이로서 루소는 자신을 둘러싼 모든 사람들이 공모하여 자신을 겁박하고 있다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히고 말았습니다.
자서전 <고백록>과 <대화: 루소, 장자크를 심판하다>는 자신이 진실을 밝히면 사람들의 오해가 풀릴 것이라는 기대를 안고 집필한 것이었지만 사태는 그리 녹록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고독한 산책자의 꿈>은 자신의 절박한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고 자신이 세상 사람들로부터 완전히 외톨이가 되었음을 깨닫게 된 뒤로 쓴 것이라고 합니다.
<고독한 산책자의 꿈>은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을 이해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헛된 희망을 버리고 오직 자신만을 위해, 자신을 탐구하고 자아를 향유하는 고독의 글쓰기였던 셈입니다. 왜 산책이었을까? 루소는 요로결석을 오래 앓은 탓에 건강을 위해 일찍부터 산책을 즐겼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산책할 기운이 있는 한 나는 삶의 즐거움을 발견할 것이고 그것은 사람들이 내게서 빼앗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그에게 있어 산책은 당대의 사교계에서 유행하던 의례적이고 사치스러운 산책이 아니었습니다. 걸어가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영혼이 육체에서 벗어나 자신을 둘러싼 자연과 일체감을 느끼고 그 즐거움을 통해 심신이 회복되는 것을 느끼는 일종의 치유였다는 것입니다.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은 산책하면서 얻은 사유의 결과를 모두 열 꼭지의 글로 정리한 것입니다. 이 책이 자유를 향유하는 고독한 글쓰기였다고는 하지만, 앞 부분은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아니 사람들의 버림을 받은 외톨이 신세를 한탄하고 스스로를 변명하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그는 이 책을 써내기 전에도 산책을 하면서 명상을 즐겼다고 하는데, 그 내용을 기억하지 못함을 안타까워합니다. 이 책에 담긴 내용으로부터 명상의 내용을 기록하고, 다시 읽어보면서 기쁨을 돌려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였습니다.
그가 산책 중에 하는 명상에 대한 그의 생각이 흥미롭습니다. “나의 고독한 산책과, 머릿속을 완전히 자유롭게 두어 그 어떤 저항이나 구속 없이 생각이 마음껏 제 흐름을 따르게 할 때 그 산책을 가득 채우는 몽상을 충실히 기록하는 것보다 더 단순하면서도 확실한 방법을 알지 못했다.(19쪽)”라고 했습니다.
이야기가 중반에 접어들면서 스스로에 대하여 깨닫는 바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네 번째 산책을 보면, “나 자신을 더욱 세심하고 검토하면서, 내가 기억하기에 진실이라고 말했던 많은 일들이 나의 창작물이라는 사실에 매우 놀랐다.(55쪽)” 뿐만 아니라 진정으로 뉘우치지도 않았음을 고백합니다.
다섯 번째 산책에 이르면 베른 주와 뇌샤텔 주의 경계에 있는 비엘 호수에서 자연을 향유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반짝이는 꽃들이며 울긋불긋한 초원, 시원한 그늘, 시냇물, 덤불들, 그리고 푸른 초목이여, 내게로 와 저 온갖 흉측한 대상들로 오염된 내 상상을 정화해주기를.(119쪽)”를 소워하였습니다. 저도 기회가 된다면 크지 않은 호숫가에 살면서 유유자적하는 삶을 즐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열 번째 산책은 세쪽을 겨우 넘기는 짧은 분량입니다. 각주에 따르면 루소는 1776년부터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의 집필을 시작하였지만 완성을 보지 못하고 1778년에 사망하였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