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사라지다 - 삶과 죽음으로 보는 우리 미술
임희숙 지음 / 아트북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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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시를 만나다>로 만났던 임희숙 시인의 신간 <살다 사라지다>를 읽었습니다. ‘삶과 죽음으로 보는 우리 미술이라는 부제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시인 역시 필자처럼 죽음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시인은 어린 시절부터였다고 하니 저와는 다소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미술사를 공부하면서 우리 미술에 담겨 있는 삶과 죽음에 대한 사유에 공감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특히 죽음에 대하여는 저항하기보다는 초월하는 길을 택한 것으로 보았습니다. 주어진 삶을 살아내면서 죽음을 초월해보려는 생각에서 도원을 만들고 요지를 만들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예술분야에서는 더욱 그러했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시인은 예술을 통하여 사람들이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고통을 극복해왔다는 점에서 우리 미술을 삶과 죽음의 시선으로 바라보았다고 했습니다. 그리하여 이 책의 1탄생에서 죽음으로에서는 태어남과 사라짐 그리고 떠난 이의 부활을 기원하는 마음과 죽음을 초월하려는 의지가 예술 행위로 드러났음을 이야기했고, 2소멸에서 영원으로에는 죽음이 있어서 오히려 우리의 인생이 더 아름답고 살 만하다는 생각을 담았다고 했습니다.


1부는 탄생과 죽음에 관하여 우리 선조들이 남긴 유물을 살폈습니다. 탄생에 관한 극적인 유물로는 아기의 출산에 덤으로 나오는 태를 어찌했는지를 다루었습니다. 특히 왕실에서는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면 그 태를 거두어 태실에 묻고, 태실의 위치를 기록으로 남겼다고 합니다. 동물의 경우는 새끼의 출산과 함께 반출되는 태를 먹어치우는 경우도 있지만, 우리 선조는 태를 거두어 묻어주었던 것입니다. 두 번째 주제는 죽음입니다. 특히 범종과 꽃 그리고 주검과 함께 묻은 부장품으로서의 청자 등을 소개합니다. 세 번째 주제는 부활입니다. 사자를 묻은 묘택에 관한 것들을 다루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죽음을 초월하기 위한 고통스러운 노력을 다루었습니다. 이상향이라는 도원, 수련 끝에 불사의 경지에 이른 신선, 그리고 천년의 세월이 지나면 도래한다는 미륵 세상에 대한 염원 등을 주제로 합니다.


2부에서는 피할 수 없는 죽음은 인정하되, 죽음으로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을 추구했던 예술인들의 노력을 다루었습니다. 심신수련을 겸하여 경계가 좋은 산천을 두루 주유하는 풍조를 다루었고, 후세 사람들의 기억에 남을 만한 행동을 하거나 예술작품을 남기려 했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죽음을 초개처럼 여기고 죽음과 벗하듯 유유자적한 예술인, 문인들의 족적을 뒤쫓기도 합니다. 그리고 시공간을 뛰어넘듯 홀연히 사라진 사람들 이야기도 빠트리지 않았습니다.


책을 읽다 의문이 들었던 대목은 신선과 관련된 그림 요지연도에 대한 해설이었습니다. 동양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세밀하게 묘사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수십명이나 되는 등장인물이 각각 누군인지 어떻게 알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일단 요지에서 연회를 연 서왕모나 그녀를 찾아온 목왕은 그렇다 쳐도, 신선들과 심지어는 시인 이태백이나 노자, 동방삭 등은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나이들어 여행을 즐기고 있습니다만, 조선시대 문인들의 산수유람에 대한 설명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성리학이 지배하던 시대에 군자로서 행하던 수양의 한 방법이었다는 것입니다. 특히 논어술이편에 나오는 유어예(遊於藝에 주자가 유자완물적정지위(遊者琓物適情之爲)라고 하여, ‘노닌다는 것은 사물을 좋아하여 마음을 주는 일이라고 했다는 대목을 소개하였습니다. 노닌다는 것은 물상과의 대면에서 이치를 깨닫는다는 뜻에서 여가(餘暇)와 연관되고 문인들의 예술활동과 연결되는 개념이라고 했습니다. 예에 노니는 것은 수양의 한 방편이며 산수유람 역시 이러한 예의 한 가지였다는 것입니다.


책읽기를 좋아하는 필자에게 귀감이 될 만한 대목이 더 있었습니다. ‘허목은 독실하게 옛글을 좋아하고 늙어서도 게으르지 않았다.(穆 篤好古書 老而不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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