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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오르는 시간 - 여행자의 인문학
김종엽 지음 / 창비 / 2022년 10월
평점 :
‘여행자의 인문학’이라는 부제가 없었다면 제목만으로는 여행과 관련된 이야기일 것이라는 생각을 못했을 것 같습니다. <타오르는 시간>은 한신대학에서 사회학을 가르치는 김종엽교수가 진정한 여행이란 무엇인가를 정리하여 담았습니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연구년에 아내와 함께 스페인과 모로코를 3개월 넘게 여행한 결과를 간략하게 정리해서 아내에게 헌정하려던 것이 416쪽의 방대한 분량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저 역시 해외여행을 다녀오면 여행에서 보고 들은 이야기들을 정리하고 있는데, 그 시작이 스페인, 모로코 그리고 포르투갈 여행이었습니다. 여행을 함께 한 아내에게 덤으로 주는 봉사라는 생각입니다.
많은 이들이 관광과 여행의 다름을 설파합니다. 위키낱말사전을 보면, 관광은 “여가 목적으로 가는 여행”으로, 여행은 “새로운 문화를 접할 목적으로 잠시 다른 곳에 가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보면 관광은 여행의 한 범주에 속한다고 이해될 수도 있겠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관광과 여행의 차이는 호사가들의 말장난일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저자 역시 관광과 여행을 구분해보려는 시도 끝에 자크 라캉의 표기법을 차용하여 ‘관광/여행’이라고 규정했습니다. 두 용어의 사전적 해석과는 무관한 듯합니다. 그런가 하면 “여행기는 관광을 여행으로 전환하는 내적 과정이다.(27쪽)”라고 정의하였습니다.
머리말에서 관광과 여행을 정의하면서 페르디낭 드 소쉬르와 자크 라캉을 인용한 것을 읽으면서 예사롭지 않은 책읽기가 되겠다 싶었습니다. 이런 종류의 예감은 빗나가는 법이 없습니다. 저자는 ‘서론을 대신하여’라는 서론에서 뱃사공 신드바드와 짐꾼 신드바드를 예로 들어 여행기의 의미를 정리합니다. 그리고 1장에서는 여행과 관광의 의미를 본격적으로 추구했습니다. 2장은 권태에 관한 이야기인데 아마도 여행을 떠나는 이유가 권태로부터의 탈출을 이야기하고자 함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2장의 결말을 “관광/여행 속에서 우리는 시간을 죽이는 권태로운 일상에서 벗어나 시간을 활활 불사를 수 있다. 그리하여 시간은 일렁이는 불꽃으로 황홀하게 피어오를 것이다. 관광/여행은 그렇게 ‘타오르는 시간’이다(116쪽)”라고 마무리한 것을 보고, 이 책의 제목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3장은 여행의 목적지인 ‘그곳’의 장소론적 의미를 추구합니다. 4장은 관광/여행에 나선다는 것은 결국 걷기로부터 시작한다는 이야기를, 5장에서는 현대의 장거리여행에서 거의 대부분 이용하게 되는 비행기를 타러가는 길에 관한 이야기를, 그리고 6장에서는 그 비행기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었습니다. 마지막 7장에서는 목적지에 도착하여 머물게 되는 장소, 즉 숙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시작은 스페인과 모로코를 여행한 이야기를 간략하게 정리해보려 던 것이 관광/여행과 관련된 몇 가지 사안에 대한 철학적 사유로 발전한 것입니다. 쉬울 것을 예상했던 책읽기가 난이도가 높은 철학적 앎을 요구하는 단계로 발전함에 따라서 완독하는데 적지 않은 시간이 들여야 했습니다. ‘여행자의 인문학’이라는 부제처럼 문학, 역사, 철학 등 인문학 분야의 전문적인 지식에 더하여 회화, 건축 등의 분야에서도 깊이 있는 설명을 덧붙이고 있습니다.
일반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비행기 여행이 안전하다는 점을 설파한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되었지만 “인간의 발명품 중 최악의 복잡성과 연계성을 가진 것은 원자력발전소이고, 이 때문에 사고의 위험성도 매우 높다(267쪽)”라는 주장은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단지 조직이나 장치가 매우 복잡하고 운용체계들의 연계성도 높기 때문에 사고의 위험성이 높다는 것은 이론적인 설명일 뿐이 아닐까 싶습니다.
관광/여행이라는 행위에는 이 책에서 다룬 동기, 수단, 숙소, 등 이외의 요소들이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또한 이 책을 쓰게 된 배경이 스페인과 모로코 여행에 관한 이야기가 이어질 것으로 기대합니다.